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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전공 후배의 와이프를 다른 후배의 결혼식에서 마주쳤는데, 대뜸 이렇게 물었다, 내게.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웃으며) "...애는... 안낳을 꺼야?"
나, 피식 웃으며 자리를 피했다. 그녀의 그 질문, 그 태도가 조금 당황스러웠거든.

그녀는 나의 초등학교 동창이다.
우연히 우리 전공 후배와 결혼을 했고, 가끔 마주칠 때가 있었지만, 뭐 별로 말 섞는 사이는 아니었다.
예전에도 안친했고, 시간이 훌쩍 지나 만난 그녀와도 친해지지 않더라구.
너무 극과 극의 성격, 스타일... 뭐 이런 것들 때문이었을까. 암튼, 별로 관심 없었다, 그녀에게.
그래서 마주쳐도 안녕, 정도의 가벼운 인사가 전부였다.
그러니 " 애는 안낳을 꺼야?"라는 질문은 그녀가 나에게 건낸 가장 길고 가장 구체적인 문장인 셈.
당연하게도 무척 뜬금없고 난데없기 이를 데 없음.ㅋ

당황스러움 속에서도 내 머릿 속에 또렷하게 남는 건,
그녀 표정에 드러난 의기양양함이었다.

"意揚: 뜻한 바를 이루어 만족한 마음 얼굴 나타난 모양"

사전을 찾아보니 의기양양,의 뜻이 이런 거군아. 그랬다, 그녀의 얼굴.
만족한 마음이 얼굴에 당당히 드러나 있더라구.

그러고보니 그녀, 얼마 전에 둘째를 낳았다.
둘째를 임신해서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에게 생긴 즉각적인 생각은,
"야, 진짜 용기있다. 어떻게 그렇게들 하나 둘 낳고 사는 걸까?"였고,
그 후론 그것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본 적 없다.
그런데 그녀에겐 혹시, 아이를 둘이나 낳아 기르는 엄마로서의 만족감,
그걸 (나처럼 하나도 안친한 사람에게까지) 드러내고 싶은 마음 같은 게 있었던 걸까.

그 의기양양한 태도는 좀 익숙하다.

"일단 하나만 낳아봐! 그래야지 인생을 제대로 안다니까."
"아이 안낳으면 아직 여자가 아니지.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애송이야."

이런 문장들을 아무렇지 않게 구사하던 그 아줌마들의 표정에도
의기양양함이 묻어있곤 했지.

그런데, 그녀들은 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을 통해 의기양양해지는 걸까.
궁금하다. 난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참, 이해가 안된다.

의기양양한 사람은 타인에게 무례하기 쉽다.
그녀의 그 질문도 예의없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에 프라이버시에 속하는 일을 물었던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임신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임신할 수 없는 몸도 있고, 경제적인 상황 상 낳지 못할 수도 있고,
유전되면 안되는 병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종교적 혹은 철학적으로 아이 낳지 않음을 선택해서 살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이성애 결혼을 하지 않는 것처럼,
이성애 결혼을 한 모든 사람이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다,
라는 당연한 명제를 그녀는, 혹은 그녀들은, 그들은 알지 못한다.
왜 일까. 궁금하다. 정말 이해가 안된다.

정말 이해 안되는, 그들의 의기양양함과 무지가,
나를 점점 더 아이 낳지 않고 살고 싶도록 만들고 있다.
(이건 왠 반골기질?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