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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은 6주차, 수업일지는 5번째. 4주차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는 이유로 수업일지 패쓰, 5주차 수업은 일지를 쓰지 못한 채로 6주차 수업에 들어갔다. 애초에 수업일지는 빼먹을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HJ이 자신들의 토론이 마음에 안들어 수업일지를 쓰지 않는 거냐고 물어오니, 왜 안쓰고 있었는지 새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분명하진 않지만, 어떤 무거운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무거움은 차차 풀어갈 수 있을 거라 믿고.

너무 화창한 봄날 오후, 오히려 바깥보다 더 차가운 기운의, 오래된 건물 교실. 6주차 수업 주제는 [젠더]였다. EBS 다큐 프라임 <아이의 사생활1: 남과 여>,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 1부 중 일부, <교육저널>에 기고한 루이스의 글이 이번 수업의 교재. '젠더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쓴 논평문들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있었고, 수업 시작 전에 이미 서로의 논평문에 대해 코멘트를 하고,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돌이켜 보니 수업을 준비하면서 조금 들떴던 것 같다. 하고 싶은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고, 논평문을 읽으면서 떠오른 아이디어들도 많았다.

다큐 <아이의 사생활1: 남과 여>를 비판적으로 읽으면, 기존의 성차에 대한 논의들이 무엇을 전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건 JHEE가 발견하고서 스스로도 막 웃었는데,ㅋ) 그것은 성(sex, gender)이 남과 여, 이렇게 2개라는 명제이다. 이 여기서부터 토론이 시작되었다. "성은 정말 2개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우선은 그렇지 않은 예들을 찾았다. 간성(intersexual), 혹은 트랜스젠더를 보면, 성은 결코 2개 일 수 없다. 그런데 학생들은 좀처럼, 이렇게 여성 혹은 남성이라는 범주에 담길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성이 2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았다. 몇몇은 성이라는 개념도 사회적 합의니까 70% 정도의 사람들은 성이 2개 라는 사실에 합의한다 치고, 나머지 30%는 그것에 합의하지 않는다 정도로 논의를 접고 싶어했다. 무엇보다 SW은 젠더 논의를 지루해했고, JH 등은 이 논의를 피곤해했다.

내가 느끼기에, JHEEDY은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이야기를 했던 것 같고, 스스로 게이 그리고/혹은 트랜스젠더라 밝힌 JOOH은 생각보다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아끼는 것 같았다. KH도 침묵을 지키는 편이었고, 몇 남학생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고수하고 싶어서 조심하는 듯 했다. 수업이 중반 쯤 흘렀을 때, 나는 교실에서의 논의가 약간 겉돌고 있다고 느꼈다. PC(political correctness)주의를 버리고,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라, 하고 주문했을 때, SH가 솔직한 이야기를 꺼냈다. "성을 2개로 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2개 이외의 성이 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이야기 덕분에 논의의 진전이 있었다. 성이 2개라는 것이 왜 자연스러운 것인지, 성이 2개라고 생각하면서도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할 수 있는 것인지, 등의 논의가 오갔다. 그러면서도 이 논의는 KH의 지적대로 (혹은 SW의 고백대로), 학생들 스스로의 문제가 되지 못했다. 이원론적 젠더 체계 안에서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 나름 용기를 내어 커밍아웃을 한 JOOH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지만, 질문하지 못했다.

스스로 페미니스트 강사라고 여기고 있는 나에게, 교육사회학 수업 시간에 페미니즘의 관점을 다룬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고 한편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나에게 이 문제는 이미 자연스럽고 흥미롭지만, 학생들에겐 낯설고 새로운 것임을 종종 잊곤 한다. [젠더] 개념을 해체적으로 읽는 일, 그래서 이원론적 젠더 체계가 갖는 한계와 위험성을 아는 일이 여전히 수업 시간에 다루기에는 벅찬 주제인가 싶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더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으로 다룰 수 있을까. 수업을 마치고 JOOH과 다른 일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때 나는 수업에 다룬 이야기들을 꺼내지 않았다. 시간을 조금 보내고 나면 생각의 정리가 되겠지,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일까.

HJ이 수업 말미에, 성이 2개냐 아니냐 하는 질문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질문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고 고민해보라는 것이 담당 강사의 의도가 아니겠냐,고 질문했는데. 지금 분명히 답하자면, 아니다. 성이 2개다, 라는 명제는 거짓 명제다. 이 거짓 명제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믿고있는 스스로를 해체해보라, 이것이 이번 수업 나의 주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걸 더 뜨겁게, 더 철저하게 해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성이 2개라고 믿기 때문에 성차가 있다고 믿게 되고, 성차에 대한 담론 자체가 차별을 만든다는 것. 그 차별은 단순히 여성에게만, 성소수자에게만 경험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걸 같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겁더라. 학생들에게 이 주제는 지겹기도 피곤하기도 부담스럽기도 했을텐데, 선생은 여전히 '성은 2개인가?'하는 질문을 맴맴맴맴 돌고 있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