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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입양의 날’ 대 ‘싱글맘의 날’ / 김도현
입양의 날을 대신한 싱글맘의 날은
우리 사회의 우선적인 역량을 모아
결별의 위기에 몰린 미혼모 가족을
함께 보듬자는 대항담론이다
한겨레
김도현 목사·해외입양인센터 뿌리의집 원장

오는 5월11일은 ‘입양의 날’이다. 그런데 귀환 입양인 단체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TRACK)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고, ‘뿌리의 집’이 뒤따르고, ‘한국미혼모가족협회’와 ‘한국한부모연합’이 거들면서 5월11일을 ‘싱글맘의 날’로 기념하기로 하고, 국제 컨퍼런스와 기념행사를 준비중이다. 국제 컨퍼런스는 이날 하루 종일 서울 중구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강당에서, 기념행사는 낮 12시 광화문 교보문고의 선큰가든에서 열기로 했다.

입양의 날에 맞추어서 싱글맘의 날을 지키겠다는 것은 일종의 대항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입양의 뿌리에는 가족 해체가 있고, 특히 미혼모 가족의 결별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우선적인 역량을 모아 결별의 위기에 내몰린 미혼모 가족을 보듬자는 것이다. 입양을 통해 문제를 풀고자 하기 전에, 미혼모들에게 입양이 아닌 다른 선택지, 즉 양육이란 선택지를 제공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대항담론은 종종 한 사회 내부에 이미 강고히 자리잡고 있는 관념들에 균열을 내기도 하고 그 사회를 재구성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대항담론은 그 대항의 목소리에 맞서야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항담론에 깃든 지혜에 귀를 기울여 미래를 재구성하는 일에 동참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 매년 10월 둘째 주 월요일은 연방공휴일 ‘콜럼버스의 날’이다. 그러나 사우스다코타 주정부는 여태 이날을 거부하고 대신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의 날’로 지킨다. 콜럼버스의 날이 그들에게는 유럽인의 아메리카 대륙 침탈을 미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항담론은 힘을 얻어 하와이를 비롯한 미국의 다른 주들과 도시들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비슷한 방식으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미국의 최대 명절 ‘추수감사절’을 ‘국가 애도의 날’로 명명하여 지킨다. 백인 이주자들의 첫 추수감사절 이후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대대적인 침탈과 학살이 시작되었다는 점을 상기하기 위해서이다. 대항담론이란 이와 같이 일종의 기억 투쟁이자 역사 해석을 교정하는 일인 동시에 자기 사회의 미래를 다른 방식으로 구성하겠다는 열정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서부오스트레일리아주에서 1970년대에 정부 주도 아래 이루어진 미혼모와 아동의 강제 격리와 입양 조처에 대해서 오늘의 정부가 당시의 미혼모들에게 사죄하고, 동시에 친가족과 결별해야 했던 입양인들의 마음에 위로를 보내는 뜻에서 의회 뜰에 장미 꽃다발을 놓은 일은 입양에 관한 대항담론이 일궈낸 성과물이라 할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입양의 날’을 제정하고 기리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 사회에서도 미혼모와 싱글맘의 단위가족 형성에 관한 권리를 보장하고, 이들이 친자녀와 결별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배려를 진작하기 위한 대항담론으로서 ‘싱글맘의 날’의 등장은 환영받아야 할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