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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동네 시장에 갔는데 마침, 진눈깨비 내리고 바람이 세게 분다. 재에 필요한 물건들이랑 과일들을 사고 집으로 돌아와 내일 가져갈 물건들을 챙겨두는데 마음 한구석이 쓸쓸하다. 사십구재를 지내고 나면, 왠지 정말로 영영 이별이라는 생각에 오늘은 종일 가슴이 텅비어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지워지고 흐려질 기억의 장면들이 자꾸 떠올라 다른 일이 손에 잘 안잡힌다. 이렇게 쉽지 않은 이 이별을 견디고 나면 봄이 와있었으면 좋겠다.
상을 치르고 집에 돌아온 다음날, 남은 식구들끼리 모여 크고 작은 것들을 의논하면서 사십구재 이야기를 꺼낸 건 나였다. 엄마가 생전에 절에 자주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남을 위해 빌어주기 좋아하고 먼저 간 귀신들의 안위를 늘 걱정하던 사람이었으니깐, 재를 지내주는 것이 엄마의 삶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가 너무 아파서 그녀를 위해 뭔가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절박함이 컸다. 그런데 아버지는 사십구재를 지내는 일에 반대했다. 매주 재를 지내러 가는 것도 번거롭고 서울에 재를 모시면 아버지가, 대구에 모시면 내가 곤란할 것이니 삼우제로 탈상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아버지 앞에선 그 의견을 존중해드렸고, 서울에 와서 나는 나대로 정토법당에 사십구재를 올렸다. 지난 육 주간 "재 지낼 사람이 없어서 딸이 지내냐?"는 말을 들으면서도, 매주 엄마를 위해 재지내러 가는 시간들이 좋았다. 금강경을 읽고 천도재 글귀를 독송하고 차를 올리고 절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그날만은 마음도 몸도 가벼워서 오랫만에 웃곤 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는 죽음 뒤의 세상이 어딨냐고 콧방귀 꼈었다. 죽으면 그걸로 끝이지 윤회가 어디있고 천당이 어디있냐고 비웃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후의 어떤 세계가 있고 엄마가 그 중 좋은 곳으로 먼저 가서 언젠가는 만날 수 있는 거라고 믿고 있다, 아니 믿고 싶다. 아니면 엄마가 이 세상에 바람으로 새로 나뭇잎으로 다시 와서 내 곁에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이 세상 인연은 이걸로 끝이 났지만 또 다른 세상에서 엄마와 다시 만나면,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너무 큰 사랑을 준 엄마에게 정말로 고마웠다고, 마음 속 깊이 전해지도록 꼭 이야기해주었으면 좋겠다.
지난 주 내꿈에 나온 엄마는 생전보다 살이 좀 쪘고 평소보다 담담하고 가벼운 표정이었다. 내 손을 꼭 잡고 여기저기 다니며 많이 걷고 같이 웃었다. 꿈에서 깨어나, 그렇게 단단하고 가벼운 모습으로, 내 손 잡아준 그 따뜻함으로 엄마를 기억해야지 했다. 잘 가세요, 좋은 데 가서 잘 계세요, 라고 벌써 천번도 넘게 인사했지만, 내일은 울지 않고 웃으면서 엄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싶다. 바람으로 새로 나뭇잎으로 햇살로 늘 내 곁에 있겠지만 또 이 세상에선 다시 못만날 엄마니깐,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가득 담아서 잘 가,라고 인사해줘야지. 그러고나면 나도 내꿈 속의 엄마처럼 더 담담하고 가벼워질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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