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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뉴[반짝]

공간을 빼앗기고 있다

새빨간꿈 2011. 7. 19. 16:12

 


키큰 나무들이 서있던 저 숲은 이 캠퍼스에서 나의 페이보릿 중 하나였다. 그 숲을 등에 지고 서있던 일층짜리 작은 식당엔 이천원도 안하는 자장면과 라면, 우동이 있었고, 삼천원 쯤 들고가면 밥 한끼에 커피 우유 하나는 거뜬 했다. 특히 수업 시간은 다가오고 주머니는 가벼울 때, 샤샤샥 가서 먹기 좋았던 곳.  그 자리에 이층짜리 통유리 건물을 짓고 해외/글로벌 브랜드 커피샵 파스쿠찌가 들어서다니. 커피 한 잔 값이 가난한 대학생들 식사 한끼보다 훨씬 비싼, 프랜차이즈 커피샵이 저 숲을 전유해버렸다. 소박한 건물들과 공간들이 사라지면서 잃는 것은 추억만이 아니다. 편하게 누리고 안전하게 머물던 공간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 7월 19일 덧붙임

작년에 OISE(Ontario Institute of Study in Education)에 있을 때 어깨 너머로 들은 얘기들 중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이슈는 '대학의 기업화(incorporation)'였다. OISE가 속해있는 토론토 대학은 국립대학이고, 캐나다 국민이면 학비 거의 공짜, 유학생들도 풀타임 학생이면서 센터 조교 등으로 주 20시간 정도 일하면 학비를 내지 않아도 되는 학교이다.그러니 거기서 대학의 기업화와 관련하여 문제 삼는 건 등록금 인상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외부 기업에서 수주를 받아 하는 연구 프로젝트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학교 안에 들어와있는 까페나 식당, 서점, 매점 등의 성격 변화에 관한 것이었다.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사먹고 사입고 사보는 것들의 성격 변화가 대학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UC 버클리와 함께 북미 지역에서 가장 진보적이라고 자부하는 OISE의 5층은 한 층이 온통 라운지였단다. 거기엔 싸고 맛있는 커피와 간식, 간단한 점심 식사를 파는 까페가 있었고(물론 브랜드가 아니라 independent cafe), 널려있는 소파와 테이블 등에 아무나 와서 책보고 토론하고 그러다 보면 때로 즉석 세미나가 열리기도 하고 학교 당국이나 토론토 시 당국에 대한 시위 같은 게 급 조직되기도 했다고. 그런데 수년 전, OISE가 강의실 부족을 이유로 5층을 강의실로 변경, 1층 로비의 일부를 비워 라운지를 만들었는데, 이 때 들어온 게 스타벅스였다.  

스타벅스는 캐나다에서도 꽤 비싼 브랜드 커피샵이다. 커피도 쿠키도 샐러드도 심지어 물도 다른 데 보다 더 비싸다. 그리고 라운지로 만들어둔 곳은 공간도 좁고 주로 식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예전 5층 라운지 분위기와는 판이하다고 했다. 라운지 바로 옆이 도서관 입구이기 때문에 거기서 토론이나 공연, 시위 조직 같은 건 좀처럼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 같았다. 공간이 학생들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그래서 대학이 변했다. 

저 사진 속 파스쿠찌 자리에 있던 깡통 식당 앞에는 '페다고지'라고 불리는 작은 광장과 계단이 있었다. 봄이나 가을에 그 광장에서 노래패 공연이나 학생회 행사가 열릴 때면 식판을 들고 나와 계단에 앉아서 구경하며 떠들며 밥을 먹곤 했다. 이제 그 광장 자리엔 흉물스럽고 커다란 회색 신식 건물이 들어섰고, 계단은 없어졌다. 가을 학기가 시작되면, 글로벌 커피 브랜드 (일회용) 컵을 들고 세련된 표정으로 삼삼오오 이 곳을 지나는 '경쟁력 있어보이는' 학생들이 이 공간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공간이 학생들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그래서 대학을 변화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