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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배운다는것

윤건차 선생님 연보 중

새빨간꿈 2011. 11. 17. 14:23

"대학원을 다닌다고는 하지만, 실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무 내용도 없었고 자연히 논문다운 논문도 쓰지 못했을 뿐 아니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도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중략) 앞이 깜깜했던 나는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내고 취직을 하려고 했지만, 그 역시 뜻대로 잘되지 않다가 가까스로 한국과 거래하는 무역회사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중략) 회사에 들어간 지 3년째, 내 나이 이미 서른이 넘었을 때이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언젠가 길이 열릴 것이라고 믿으며, 학위논문을 쓰기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완전히 독학이었다.
회사를 다닌 12년 동안 나는 모교 근처에도 가지 않았거니와 연구자들과 교류도 전혀 없이 고립되어 있었다. (중략) 직장 다니는 틈틈이 회사 근처에 있던 국회도서관 등지를 다니면서 책과 논문을 복사하고 밤을 낮삼아 책을 읽었다. 매일 자료를 작성하는 단조로운 작업이 이어졌지만, 아내가 도와주어서 6년만에 8천장의 자료를 만들 수 있었다. 자료작성이 끝날 무렵이 되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겨서 그때부터 200자 원고지 2400매의 학위논문을 단숨에 써내려갔다. 논문을 쓰기 시작한지 1년 반 만에 탈고한 것이고 논문 준비를 한지 8년만이었다. (중략) 내가 박사논문 [조선근대교육의 사상과 운동]을 가지고 학교에 갔을 때 나와 같이 박사과정을 했던 친구들은 물론이고 교수도 무척 놀라워했다. 아마 10년 동안이나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전혀 알 수 없었던 내가 박사논문을 가지고 나타나니까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 윤건차,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 지식인과 그 사상, 1980~90년대], 당대, pp. 369~371 (지은이 연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