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2-, 박사 일기

졸업을 앞두고,

새빨간꿈 2012. 2. 4. 09:12



졸업을 앞두고,
내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가르치는 것,이다.
매 학기, 학생들을 교실에서 만나고,
새로운 실험들을 하면서 지식을 생산하고,
서로 감정을 나누고, 그리고 헤어진 뒤,
다시 만나는 일의 반복.
그 가운데에서 뭔가 생성될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앉아서 글만 쓰는 일보다는, 훨씬 생동감있는 일들을 만들어낼
에너지와 아이디어를 그 교실에서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거울삼아, 괴물같이는 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안정적으로 학생들을 교실에서 만나 수업을 할 수 있는 법은
교수가 되는 것이다.
교수로 임용되면, 별 문제가 없는 한,
65세까지 교실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것을 보장받을 수 있고,
월급도 꼬박꼬박 나오니깐.
그런데 지금 내 '스펙'으론 교수가 되는 길은 요원하다.
영어와 통계 그리고 적당한 현실적응 기술이 필요한데, 지금 갖추기에는,
너무 늦었다.ㅋ
그리고 교수가 되기 위해서 해야할 일들을
- 예컨대 선배연구자와의 네트웤을 강화하고 아티클을 써대고 영어강의를 준비하고 등등 -
꾸역꾸역 할 자신이 별로 없다.
가능성도 낮고 하고싶지도 않은 일.

그래도, 앞으로 한 십년은 시간 강사로 살 수 있으니 진짜 다행.
물론 매 번 다음 학기 강의를 할 수 있을까, 불안정하고
이 학교 저 학교 옮겨 다녀야 하고
내 연구실이 없으니 학생들과 교실 이외에서 만나는 일이 불편하고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고민스럽겠지만
그래도 어떻든 교실에서 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지니 얼마나 다행인지.
다음 학기엔 교육대학의 네 클래스를 맡는다.
초등교사가 될 사람들과 한국교육에 관해 이야기하고
뭔가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낼 테다.
다음 학기에 하고싶은 것들, 읽고싶은 것들도
조금씩 생각하고 있다.
가장 하고싶은 일을 바로 할 수 있는 이 행운.

졸업하면 이제 무슨 계획이 있냐?
고 다들 묻는다.
이 질문이 좀 싫을 때도, 두려울 때도 있는데,
뭐 구체적인 계획이 없으니 좀 더 설레고 좋으네.
실은 '졸업 후 뭘 하고 싶냐?"는 질문에 답하고 싶다.
(이제까지 그 질문을 한 사람은 단 한 사람.ㅎ)
학생들과 교실에서 만나는 일.
이거 하나는 확실하니깐, 다음 학기는 여기에 집중.
불안할 이유도 막막할 이유도
실은 없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