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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소정방 폭포의 말, 2012]

 

 

어젠, 아름다운 계절에 태어난 기념으로 사석원 그림 보러 갔다왔다. 난 이상하게 사석원의 그림에 등장하는 동물 중 말이 좋다. 빙그레,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그 동물들 중 말이 으뜸이라고 할까?ㅋ 엉뚱한 표정으로 용맹한 척 하는 말의 옆모습을 보면서 헤헤 한참 웃었다. 파랑 노랑 빨강 분홍의 저 유치찬란한 컬러도 좋고, 말처럼 용맹하게 흘러내리는 폭포도, 바람에 흩날리는 억새도 좋고. 이번 전시의 컨셉이 '폭포 소리를 화폭에 담는 것'이라던데, 이 그림에선 폭포 소리뿐만 아니라 제주의 바람도 느껴지더라. 언젠가 소정방 폭포를 마주치면 이 그림 속 바람이 기억날까?

 

폭포가 콸콸대는 경치 앞에 서서, 특정 동물을 떠올리고, 표정과 상황을 그려내는 작가의 상상력이 웃겨서 다른 그림들 앞에서도 많이 웃었다. 아래 그림 제목은 [개벽(開闢) The Dawn of History]. 닭 두마리가 폭포 곁에 서서 새벽을 알리고 있는 모습, 왠지 해학적이지 않은가. 폭포 풍경이 멋있다고 찬탄하지 않고, 동물들을 등장시켜 그 미감을 가벼운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게 재미있다. 사석원의 폭포 시리즈들을 보면 진지함이란 찾아볼 수 없고, 내내 농담만 하다가 웃으며 돌아서는 가볍고 유쾌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유난히 날씨가 덥기도했고, 이제는 걷는 게 좀 힘들어져서,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오니 몸이 천근만근. 그래도, 이렇게 먼 거리의 외출은 출산 전 몇 번 안남은 것 같아, 잘 다녀왔다 싶었음. 오후-저녁 내내 나와 함께 있어준 ㅈㅇ에게 고맙다. 논문 쓰다가 빨간 장미 한송이 들고와 푸짐한 저녁 먹여준 Y에게도 감사. 이렇게 서른 여섯해를 꽉 채운, 초여름, 조용히 웃으며 지나가는 생일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