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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엄마 일기

[ +180~193] 위기의 나날들

새빨간꿈 2013. 1. 19. 18:03

 

멘탈의 위기가 온 것 같다. 매일 징징징징. 그간의 기록들을 다시 읽어본다.

 

 

 

2013/01/05 07:08
[+180] 아기가 간만에 세시간 반 간격으로 자주시네. 어제 지도교수님 댁에서 하는 신년모임에 데려갔다와서 늦게 자더니 피곤했나보다. 나도 너무너무 피곤했는데 길게 자주시는 아가 덕분에 좀 잤다. 한번에 세시간 넘게 자는 게 호사가 되다니, 아기 돌보는 일은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되는 일인 듯. 동거인이 종일 외출할 거라 오늘도 밤까지 아기랑 둘이 있어야한다. 콩나물국 사태를 계기로 아기와 둘이 보내는 시간에 깨어있어보자, 싶은데 오늘 한 번 해보지, 뭐. 두눈 질끈 감은 채 젖먹더니 쌕쌕 잘 자는 아기. 나도 좀더 자둬야겠다.

 

 


2013/01/07 09:28
[+182] 그제 그리고 어제 저녁 또 소화불량. 다행히 잠들기 전에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픈 것 때문인지 저녁즈음부터 울적한 기분이 들어서 오백만년만에 백팔배를 했다. 간만에 했더니 다리가 후들.ㅋ 지금 내 삶에 즐겁지 않아서, 이 삶을 즐겁게 받아들이지 않는 내 모습이 싫어서 화살을 두번씩이나 맞고 있는 나를 본다. 분명한 건, 전반적으로 보면 즐거움이나 재미가 적지만, 사이사이 즐거운 순간들이 있고, 현재에 대한 내 평가또한 늘 변한다는 것이다. 지금 내 마음, 내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 것. 이것말고는 사실 해답을 잘 모르겠다. 아침부터 아기 이유식과 수면교육 관련 책 두권을 주문하고 요가강습을 받기 위해 씻고 준비를 한다. 즐겁지 않으면 즐거운 일을 찾아 일상에 배치해보면 된다. 순간에 즐거움을 찾는 법도 계속 연습하면 되고.
2013/01/08 00:40
낮에 가빈이네 다녀와서 초저녁에 좀 길게 잔 탓인지, 열시 조금 넘어 자는 듯 하더니 젖먹고 깨서는 지금까지 안잔다고 칭얼대다가 이제 잔다. 내 품에서 젖을 먹다가, 어느 순간 툭, 잠이 들어 쌔근대는 아기. 자는 모습이 이뻐서 가만히 손에 입을 맞추니 씨익 웃는다. 아직도 잠과 깨어있음의 중간지대에 있는구나. 이쁜 내아기. 마루에 눕혀놓고 설거지 한다고 싱크대 앞에 붙어서있다가 은규야, 하며 뒤돌아보면 나를 보며 씨익, 웃는다. 아무 뜻도 담지않은 웃음 그 자체. 아기는 이런 웃음을 하루에도 몇번을 보여주는지 모른다. 아무 특별할 것 없는, 부족하기만한 나에게 과분한 아기의 웃음들, 고맙다, 정말로.

 

 


2013/01/10 16:24
[+185] 만 육개월을 꽉 채운 우리 아기. 딱 육개월째 되던 어젠 뭔가 세리모니를 하려고 했는데 기냥 넘어갔네. 다만, 너무 피곤해서 잠자리에 누웠던 난, 가만히 육개월 전의 나와 아기를 떠올렸다. 그날밤 우리들의 만남을. 그리고 일년전의 나를 떠올리기도 했다. 입덧을 하면서 그 추운날들 계절학기 수업을 하러 다녔던 날들. 그 때 내 속에 있던 아기가 지금은 매일 매순간을 나와 함께 하고있다니. :) 이제 아기는 엄마젖말고 다른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매일 새로운 기술들을 익히고 있고 아기라는 존재는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자라잡아가고 있다./ 요즘, 아기가 더 잘 잠들고 밤에 길게 자도록 하기 위해 공부 중이다. 지난 육개월동안 긴 잠을 자본 적 없는 내 몸이 너무 약해져가고 있는 게 첫번째 이유고, 아기에게도 잘 자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할 것: 지금 이대로 우리 아기는 잘 자라고 있고 나도 참 행복하다는 것. 너무 힘들고 잠시 누군가에게 아기 맡겨두고 나만의 시간을 갖고싶다, 간절하게 바랄 때도 있지만, 이렇게 가는 시간들이 애틋하기도 하다.

 

 


2013/01/11 22:28
[+186] 영유아검진과 내 건강상태에 대한 진료를 같이 받았다, 살림의원에서. 좋다, ㅁㅇ같은 친구가 있어서. 아기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단다. 반면 나는 체중이 너무 많이 감소했으니 이런저런 검사를 해보잔다. 다음주에 검사받기로 약속하고 돌아오는 길, 뷔페에 가서 엄청 먹었다. 마치 건강하기를 먹는 것으로 기원하는 듯.ㅋ 요며칠 밤잠을 설치고 낮잠도 부실해서 더 피곤하다. 내일과 모레는 은규 할머니 할아버지 방문하신다니 편안한 주말은 아니겠고나. 이유식 준비해두고 어른 밥도 준비해두고 아기 재우고 나니 머리도 복잡, 왠지 할말도 많은 것 같은 밤. 그래도 몸이 너무너무 피곤하니 일단은 잡니다. 병원 행차에 피곤하신지 포옥 잠든 아기랑 같이. :)
2013/01/11 22:29
지난 월욜엔 ㅈㅇ가 와서 가빈이네 놀러가고, 그저껜 ㅇㅊ가 족발과 함께 깜짝 방문을 해주시고, 오늘은 ㅁㅇ까지 만나고오니, 나 부자된 것 같다. 내 아기에게 이렇게 멋지고 좋은 이모들이 많다는 게 새삼 좋으네, 참 고맙고.

 

 


2013/01/14 22:58
[+189] 금토일 낮잠을 거의 못자고, 평균 한시간 반 간격으로 밤에 일어나는 아기에게 젖 주느라 오늘 낮 내 몸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늦은 오후엔 열이 조금 날 정도. 그래도 아기랑 놀아주고 빨래 불려놓고 시금치 다듬어 무쳐놓고 낮엔 장보러도 다녀오고. 아참, 오전엔 요가도 하고. 그렇게 하루가 가고 저녁이 되자, 또 눈물 폭발. 마음 편하게 징징대고 몇시간이라도 아기 맡겨놓고 푹 쉴 곳이 없는 게 서글펐다. 동거인은 남원에 가서 좀 있다 오라고 말하지만 거기선 맘이 편할 거 같지 않고. 엄마가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니 눈물이 퐁퐁퐁. 실컷 울고 나니 좀 나아지네. 설거지하고 이유식 준비해두고 청소하고 아기 눕혀 노래불러주고 달래서 재우고나니 이 시간이네. 돌이켜보면 지금 내 상황이 너무 절망적으로 느껴진 것 같아, 그럴 것 없는데. 몸이 피곤하니 마음이 몸보다 앞서나가 부정적인 생각의 극단을 걷는다. 좀 자고 나면 나을까. 우선은 잠이 제일 필요한 것 같으네.


 

 

2013/01/15 23:04
[+190] 어젯밤엔 아기가 딱 두번만 깨주셔서 한 열흘만에 좀 잘 잤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종일 룰루랄라.ㅋ 어젠 정말 못해먹겠고 도망치고싶고 세상이 다 원망스러웠는디, 오늘은 이정도면 괜찮네, 하는 변덕. 알음님은 이런 걸 육아조울증이라 하던데, 완전 동감하는 중. 혼자 오래 있고, 아기 돌보는 일은 정신적 육체적 집중을 필요로하는 만큼, 울적해지기 쉬운 것 같다. 그러니 전업으로 아기 돌보는 기간엔,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 있도록 잘 유지하는 것이 더 필요한 듯. 우울한 기운이 세질 때, 나는 엄마 생각을 많이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엄마의 부재가 서럽고 안타깝고 아프고. 물론 이런 감정은 늘 밑에 깔려있는데, 우울할 때 증폭된다. 우울함이 내 마음 밑의 감정을 드러내어주니, 어떻게 보면 마음 진단의 계기가 된다. 며칠간의 우울함을 지나고 나서야 그런 내 밑마음이 보인다. 다행이다. 오늘 몸과 마음이 좀 나아지니 아기가 더 이쁘다. 마음에 아기를 담을 여유가 있어야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거구나. 낮엔 까페 가서 자는 아기 안고서 밀크티도 한 잔 했다. 맛이 좀 별로여서 실망스러웠지만, 차를 앞에 두고 멍하니 앉아있던 시간이 참 좋더만. 오늘도 요렇게 마무리. 쌔근대며 자는 우리 아가랑 나도 자야지. 귿나잇.


 

 

2013/01/17 13:20
[+193] 밥상 위의 물건들 - 주로 반찬통들 - 에 관심을 가져하길래, 밥상 펴고 범보의자를 끌어다 앉힌 뒤 빈 플라스틱 물통과 반찬통 올려뒀더니 한참 잘 가지고 논다. 손에 잡히는 물건은 무조건 입으로만 가져가더니, 며칠 전부턴 흔들어도 보고 바닥 같은 데 쳐보기도 한다. 지금은 물통 뚜껑으로 밥상을 탕탕 치며 노네. 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물건들이 아기에겐 한참동안 탐구하고 실험해볼 만한, 호기심의 대상이라니.ㅎ 울음은 잦지 않은 녀석이지만, 으응 으응 하는 소리는 자주 내는데, 예전엔 기저귀이거나 졸리거나, 같은 신체적인 이유 때문이었다면 요즘은 지겨워, 저 물건 잡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돼, 나 앞으로 가고싶어... 등으로 번역되는 소리를 낸다. 하고싶은 것 만지고싶은 것 입으로 넣고싶은 것들이 늘어나고 그 욕구들을 표현하다니. 인간이 되어가는구나, 니가.ㅋ 이제 슬슬 지겨운지 으응 으응 으응 노래 중이네. 탐구도 집중력도 오분이면 긴 녀석. 아고, 엄마 간다, 지둘려라.ㅋㅋㅋ

 

 


2013/01/18 18:21
[+194] 여기저기서 얻어온 작은 장난감들을 모아둔 바구니를 주니 한참을 논다. 별로 안좋아하던 장난감들도 다시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고 만지고 입으로 가져가고.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나도 왠지 웃으면 안될 것 같아.ㅋ 오전에 살림의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출산도 했는데 위내시경 쯤이야, 라고 애써 긴장을 풀려고 했는데 실제로 해보니 지인짜 아프더라. 윽윽윽. 오분이 오십분 같았음. 그나마 무영 원장님이 해주셔서 고통 속에서도 내 목과 위와 십이지장을 맡겨두고 있었엉.ㅋ 혈액검사와 소변검사 결과는 안나왔지만, 일단은 큰 병은 없단다. 갑상선 염증이 있는데, 이게 체중 감량의 원인인 것 같다고. 이것도 혈액검사 결과가 나와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 아기를 잉태하고 낳고 돌보는 일이 만만치 않구나, 싶다. 몸에 육아의 흔적이 새겨지고있다고 해야하나. 이렇게 늙어가는 거겠지. 큰 병이 없다는 것만으로 일단은 감사. 지금 내가 그리운 건, 엄마가 있는 집 거실 소파에서 한 숨 포옥 자는 것. 그 땐 아무렇지도 않던 그 순간들이 이렇게 그리워지다니. 내아기에게도 나와 함께할 어떤 순간들이 그러하겠지. 엄마가 돼서 다행이다, 그리고 감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