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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엄마 일기

[ +298] 힘든날

새빨간꿈 2013. 5. 3. 15:19

 

 

 

아 진짜 힘들다, 하는 소리가 자꾸 나오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인 것 같아.

 

아기가 이유식 잘 안먹고 먼지구덩이만 찾아다니고

기저귀 가는데 가만 있지 않고 움직이고

자꾸 안아달라고 응응으으- 할 때,

아고 엄마 오늘 힘들다, 하고 여러번 이야기했다.

 

밖은 찬란한 봄인데 나만 구질구질하게 작은 집을 아기랑 맴도는 것 같고

설거지 청소 빨래 아기 이유식 만들어먹이기 기저귀 갈기 씻기고 로션바르기 등등의 일들이 끝없는 반복인 것 같고

몸은 안아픈데가 없고 피로는 언제부터인지 계속 되고 길게 잔 날이 까마득한 것 같고

거울 속 내 얼굴 내 몰골이 엉망이고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생각마저도 찌질한 것 같고

내일이나 다음달 혹은 내년쯤엔 뭔가 좋은 상태일 것이라는 예상도 잘 안되고

무엇보다 당분간 내게 좋은 일 기쁜 일 즐거운 일이 없는 것만 같은

그런 날. 오늘.

 

 

 

아기 사진을 뒤적이다가,

이 아기가 나에게 즐거움을 기쁨을 재미를 주지 않았던 순간은 단 한 순간도 없구나, 알겠다.

작은 몸 여린 눈빛 매순간 성장하는 몸과 마음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좋은 냄새 글로 적을 수 없는 묘한 소리들

나에게만 보여주는 그 웃음들 내게 안겨오는 몸 나를 향하는 그 강렬한? 눈빛들.

이 모든 것때문에 힘든 거라면, 뭐 괜찮다, 싶은.

지금 이 순간은 그렇게 허용적인 기분이 되어버린다.

 

아기는 이런 식으로 오늘을 견디게 하는구나.

아니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보낼 수 있게 해준다.

요상한 존재. 내 삶에서, 누구랑도 비교 안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