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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동거인이 풀무학교와 홍동면을 다녀왔다.
농사를 가르치는 학교에서 농사를 배운 아이들이 그 마을에서 농사 지으며 사는 것.
어찌 보면 간단한 일인데, 한국사회에서 이 일은 간단치만은 않다.
근데 이런 일이 50여년 동안 풀무학교와 홍동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마을은 생산-교육-생활의 자급을 이루고 산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기반이 된, 삶에 필요한 것을 스스로 생산하며 사는, 흙에 가까운 삶.
나는 동거인이 전해주는 풀무학교와 홍동면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한 이념, 정교한 전략, 정치세력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냥, 내 삶을 변화시키고, 그 삶을 통해 주변 사람들을 동참시키면서, 그렇게 살면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
오늘 아침, 사무실에 나오니 마침 남한산초등학교를 변화시킨 ㅎㅇㄷ샘이 놀러왔길래
이 이야기를 꺼냈다. 이념이 아니라 삶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구나, 했다고.
그 샘이 이야기해준 몇 가지 것들이 나를 띵- 하고 흔든다.
이야기 하나.
사람(아이)은 선하기도 악하기도 하다.
똑같은 아이도 경쟁적인 분위기의 교실에서는 자기 시험지 안보여주려고 웅크리고 가리며 뭔가를 쓰고,
협력적인 분위기의 교실에서는 어, 너 이거 잘 모르겠어? 내 꺼 보여줄까? 한다.
이것이 학교 개혁의 키워드이다.
이야기 둘.
학교 개혁을 도모할 때, 동료 교사들에게 절-대, 이 책(교육 혁신과 관련된 그럴듯한 책들) 읽어봐, 라고 권유하지 않았다.
책이나 글을 통해서가 아니라, 교사들 각자의 마음을 보라고 했다.
그리고 용기를 갖자고. 마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그것대로 행동하는 것이 더 필요하니까.
이야기 셋.
남한산초등학교에서 월요일 조회를 없앴을 때,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조회가 없으니 너무 좋다. 그런데 뭔가 불안하다.
그 불안의 근원은 그동안 내 몸에 배인 습관이었다. 월요일마다 하던 조회가 내 몸에 배여있었던 거지.
의식이나 이념이 아니라 오래된 관행.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어렵고 더 중요하다.
강박사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이념이라는 것이 의식의 세계만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무의식의 호불호, 마음이 끌고 가는 그 무엇에도 이념이라는 것은 스며있다(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그런데 의식과 무의식 중 더 힘이 센 것은 무의식이지(이건 법륜스님의 지론: 까르마를 이기는 법).
머리로는 되지만 몸이 안되는 수많은 것들이 그 증거다.
새로운 세계는 새로운 몸이 아니면 안되는 지도 모른다.
내 몸을 새 몸으로 만들 것.
그리고 그 몸을 통해 이야기 할 것.
어제 동거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렇게 대안적인 움직임은 좋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공교육의 문제들은 어쩌나, 고민했는데
ㅎㅇㄷ샘 이야기에 뭔가 디딩- 한다. 공교육의 변화는 정책의 변화가 아니라
실은 교사들의 몸이 변화하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당연히도 정책연구 보고서로는 아주 작은 부분만을 변화시킬 수 있겠지.
이 사실을 잊지말자. 히히.
오늘이 여기 출근한지 석달 째 되는 날이다.
의미심장한 날 아침, 좋은 거 깨달았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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