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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엄마 일기

엄마로 사는 것

새빨간꿈 2014. 4. 18. 00:22

은규를 낳은지 21개월이 넘었고, 직장을 다닌지 7개월이 넘었다. 아기가 내 인생에 들어온 후로, 늘 정신없이 살아왔지만, 일터가 생긴 후로는 정말 여유가 없다. 하루가 어찌 지나가는지 모른다,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낸다, 와 같은 문장들이 그동안의 내 생활을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집에서 혼자 아기만 돌볼 때는 얼른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러면 뭔가 여유 같은 걸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아홉시부터 여섯시까지의 시간이 여유로운가 하면 그렇지 못하다. 근무 시간 안에 처리해야할 일들은 늘 쌓이고, 내 마음은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동동동동 달리기를 하는 것 같다. 이게 사는 건가, 싶어 우울해지는 나날도 있고 새삼 감사함에 충만해지는 날도 있다. 혹은 하루에도 이랬다 저랬다 한다.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거겠지, 하면서 많은 부분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래, 시간이 지날 수록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엄마가 훌쩍 떠나가고서 사무치게 알게되었다, 엄마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래서 나는 안다, 은규에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 그래서 때로 내가 없는 낮시간의 은규가 잘 지내는지, 엄마 없이 허전하지 않은지 걱정이 된다. 그리고 은규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해서 늘 아쉽고 아깝다. 혼자서 외롭게 고갈되지 않은 방식의 육아가 가능했다면 나는 일터를 찾지 않았을 거야, 라고 스스로를 납득해보려고 하지만, 결국은 육아가 아니라 직장을 선택한 나를 탓하게 된다. 이 자책감과 죄책감이 은규에게도 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불쑥불쑥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서 마음이 무거워지곤 한다.

 

생애취업여성으로 살아가면서도, 스스로의 모성수행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여자들을 몇 만났다. 그런 모습이 내가 가질 수 있는 해답이라는 걸 알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 무거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끔 생겨나는 억울함이나 남편에 대한 원망, 그래도 내가 엄마 노릇 잘 하고 있지, 라는 자신감은 이 자책감의 다른 면이겠지. 이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본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어쩌면 오랫동안 이 마음으로부터 도망치고싶기만 했던 거 같다.

 

내가 이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정신없는 나날들 사는 동안에도 우리 은규는 쑥쑥 자라고 있다. 왠만한 말은 다 알아듣고, 엄청난 말들을 해내고 있다. 한 단어 혹은 한 음절로 표현하던 시절을 지나서, 이제 두 단어를 붙여서 말하고 (예를 들어, 은규-집, 엄마-꺼) 가끔 주어+동사로 이루어진 문장을 말하기도 한다. "엄마 봐봐" "까품 있어(컴퓨터 있어)" "부 카(불 켜)" 같은 문장들이 요즘 단골 말들. 내가 하는 말을 받아치기도 하고 ("엄마 핸폰 여기 없어" 하면 "아니야, 있어!") 농담이나 장난에 맞장구도 친다. 오늘은 인터넷 쇼핑몰로 주문한 내 옷을 보고는 "죠타, 죠타"를 연발한다. 언제 이런 단어를 배웠는지, 신기하고 재미있다. 매일매일 더 이뻐지는 우리 아기.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은규에게 참 소중한 사람이다. 이 사실은 마음을 참 뿌듯하게 만들어준다. 이 뿌듯한 마음이 나를 가볍게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 엄마로 살아가는 성장의 과정에, 그 길 위에 있다는 걸 잊지만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