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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그 계절들을 어떻게 살아냈는지 가물가물하다.
그 때 끄적여놓은 일기들을 보면 나름 뭔가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던 거 같은데,
그 애씀도 실은 괴로움의 연장선상에 있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논문 프로포잘도 하고, 정토회에서 봉사도 하고, EWB 일도 제법 했다.
다음 해 봄에 요세미티에 다녀왔고, 그 여름엔 부르키나파소를 갔다.
파리를 경유했던 열흘 간의 일정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여름 낮이었다.
바닥난 체력과 정신력으로 현지 타당성 조사,라는 임무를 맡고 낯선 땅에 다녀왔으니
그 열흘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힘겨움도 이제야 알겠다.ㅎ
속이 완전히 다 뒤집어져서 먹는 것마다 다 내어놓았던 며칠을 지나 집에 도착했는데,
부엌에서 양은 김칫국을 데워줬다. (그 때 우린 김칫국을 자주 해먹었다.)
김치를 설설 씻은 다음 아무 양념없이 국간장 조금 넣어 팔팔 끓인 그 국에
밥을 말아서 후루룩 단숨에 먹었다.
물도 가려먹던 몸상태였는데, 그렇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한 그릇 먹고 단잠을 잤다.
배탈은 그렇게 나았다.
김칫국에 밥 말아 먹었던 그 기숙사 부엌은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공간이었다.
작은 식탁에 앉아 책도 읽고 글도 쓰곤 했는데.
베란다 넘어 창으로 큰 목력 나무가 있어서, 4월이면 황홀한 목련꽃이 그림처럼 폈다.
엄마가 그 집에 놀러왔을 땐 3월 이어서 아직 목련이 없었다.
목련 자랑을 했더니 엄마는 자랑 좀 그만하라,고 나를 꾸짖었던가.ㅋ
그 기숙사에서도 이사를 하고, 이사 해서 살던 그 집에서도 이사를 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가물가물 까마득하다.
근데 그 김칫국 맛은 이상하게 생생하다. 내일 아침엔 김칫국 끓여먹을까봐.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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