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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퇴근을 하고 오니, 이번 주 내내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 보이는 나를 위해 양은 나름 선심을 베풀었다.

가고싶은 곳에 가고,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어주겠다는 것.

일주일 내내 낮시간에 아기를 돌보는 그가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시간 아닐까.

그런데 막상 나는 별로 가고싶은 곳도 하고싶은 일도 없었던 것 같다.


금요일 저녁, 집 근처 고깃집에서 밥을 먹고 양과 은규와 주변 아파트 단지를 산책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저녁, 은규는 신이 나서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고 나는 가만가만 걸으니 좋더라.

간밤에 은규가 엄청 자주 깨서 아침에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오늘 오전엔 장롱 속 이불들을 정리하고 양이 사다둔 엄청난 양의 마늘을 깠다.

은규랑 같이 마늘 까고 씻고 하다보니 오후 3시가 다됐고, 

졸려하는 아기 재우며 나도 같이 잠들어 둘이 같이 일어나니 초저녁.

방울 토마토랑 아몬드 좀 먹이고 셋이서 밭에 나가 근대, 아욱, 강낭콩, 고추, 상추, 쑥갓 등등을 수확했다.

근대 만큼이나 키가 자라있는 풀들도 좀 정리하고 길을 나섰더니 서쪽 하늘에 해가 지고 있다.

집에서 차로 오분쯤 거리의 국수집에 가서 비빔국수, 잔치국수, 만두로 저녁을 먹고

장안문 근처 팥빙수집 가서 디저트 먹은 후, 성곽길을 조금 걸었다.

북쪽 장안문에서 남쪽으로 난 길을 걷다가 비현실적일 정도로 큰 달을 발견! 셋이서 완전 감탄하고.

수원천 근처까지 왔다가 다시 돌아와 귀가. 아기 씻기고 재우고 나니 밤 11시.

졸리고 피곤한데, 일단 블로그를 연다. 뭔가 기록하고 싶어서.


한계에 도달했다고 느꼈다. 몸은 피곤하고 할 일은 많고 기쁜 일은 내게 생기지 않을 것만 같고.

이 상황이 너무 힘들지만 내 힘으로 그 무엇도 정지시킬 수 없는 것 같다는 느낌.

내 또래의 엄마가 이렇게 살았겠지, 싶었다. 엄청 많은 일을 해내고, 그래서 피곤하지만 다음 날 또 해내야 하고.

그럴 때 엄마는 무엇에 힘을 얻어 매일을 살았을까. 

나에게는 엄마의 그 마음들이 도무지 헤아려지지 않는 세월로 다가온다.

오늘 오전에 인터넷 연결에 이상이 생겨 AS 기사가 왔는데 온몸에 담배 냄새가 무진 났다.

평소 같으면 으익, 싫어라 하며 눈살을 찌푸렸겠지만, 오늘은 왠지 그 기사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도 힘든 일이 있겠지. 담배는 그에게 잠시의 돌파구겠거니 싶었다.

내 짐작이 맞든 안맞든, 지금 이 힘든 시간들이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이해의 계기가 되는구나.

저 사람도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구나. 누구나 힘들지만 벗어나기 힘든 시간이 있겠구나. 

이런 이해의 시간들이 나를 지나가고 있다.


힘든 와중에도 은규는 너무 예쁘다.

오늘 낮에 낮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내 젖을 먹던 은규가 손으로 나를 좀 아프게 했다.

그래서 은규야, 엄마 아야아야해, 했더니 젖 먹다 말고 은규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미안해. 엄마 아야하게 해서 미안해."

깜짝 놀란 내가 아냐, 괜찮아. 은규가 엄마한테 미안해, 하니 엄마가 깜짝 놀랐네 했다.

뭔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젖을 먹던 은규가 또 문득 이런다.

"엄마 지금은 여기 아야 안해?"

응, 안 아파. 괜찮아 은규야, 고마워. 해주니 그제서야 다시 젖을 먹는 은규.

미안해, 라고 말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니, 참 고맙다.

매일 눈을 반짝이며 새로운 말들을 하고, 더 복잡하고 신비로운 표정을 짓는다.

매일매일 쑥쑥 자라면서 나를 감탄하게 만든다. 힘이 들어도 은규를 보면 웃게 된다.

어쩌면 젊은 날의 엄마에게도 나와 동생이 그런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네.

그런 의미에서 삶은 지속되고 또 되풀이 된다. 그 되풀이됨 속에 내가 있다는 게 문득 편안해진다.


밭에서 일하고 나와 봤던 붉은 해, 그리고 화성 성곽길에서 마주친 주황색 큰 달.

마치 여행길에서처럼, 선물처럼 다가온 순간들. 

특히 성곽길 저 멀리 기와 지붕 옆에 떠있던 크고 둥근 달은 

마치 셋트장에 그려서 달아놓은 달처럼 이쁘고 신비로웠다. 

지치고 힘들어 미쳐버리는 순간에도 우주는 자기 질서에 따라 흘러가고 있다.

연구원 안에서만, 우리 집 안에서만 내가 존재하는 것 같지만,

이 큰 우주 안에 나도 그 질서의 일부가 되어 흘러가고 있어.

그 우주의 아름다운 장면들을 마주치면서, 이렇게 시간의 흐름 속에 내가 있다.

이 사실도 왠지 나에게 위로가 된다. 다행이다.


기록이 아니라 위로의 글이네.

이렇게라도 스스로에게 에너지를 불어넣고 싶었나봐.

이 점도 다행이다,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