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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엄마 일기

[+719] 이야기 해줘.

새빨간꿈 2014. 6. 28. 17:09


어제 저녁에 타요 에피소드 중에 한 개를 봤다. 소방차와 구급차가 위급한 상황에서 역할을 해서 위기를 극복한다는 스토리. 그 스토리를 밤에 잠들기 전에 해줬더니 좋아한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도 타요 한 편을 봤는데, 오늘 것은 중장비의 역할에 관한 거였다. 그 스토리 역시 내가 다시 말로 해줬더니 좋아한다. 그러면서 집게차 이야기, 얼굴없는 포크나인(포크레인) 이야기도 해달란다. 아무렇게나 지어내서  해주는 데도 좋아한다. 진지하게, 손가락으로는 뭔가를 만지작대면서, 장면이 바뀌는 대목마다 나랑 눈을 맞추며 흥민진진하게. 아기를 갓 낳았을 때, ㅈㅇ이가 옛날 이야기 책을 선물해줬었는데, 이제사 그 필요를 알겠다. 은규는 이제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된 것이다.


내가 몇 가지 이야기를 지어내서 해주고 나니, 자기도 얼굴없는 포크나인 이야기를 하겠단다. 뭔데? 하고 들어보니, "옌날에 얼굴없는 포크나인이 살았거등~"하며 첫 문장을 시작한다. "옛날에 ~ 살았거든"은 내가 이야기를 처음 시작하는 문장. 요 녀석이 이제 이런 클리셰도 이용할 줄 아는구나. 가만히 보면 매순간 따라배우고 응용하고 나름 재미를 만들어내고 그러면서 변하고 자라는 것 같다.


그젠가는 나한테 이런 이야기도 한다. 우리 차를 자신이 운전해서 엄마 연구원에 데려다 주겠단다. 아빠는 저기 가라고 하고. 이런 상상을 하고, 나에게 들려준다는 사실이 놀랍다. 오늘은 비행기 타고 두둥실 흰구름 너머로 날고싶단다. 이건 뽀로로 노래 중 "꼭꼭꼭"의 가사다. 이 가사를 외고 있다는 것, 그걸 자신이 상상력으로 만든다는 것. 이야기와 상상력의 세계로 성큼 들어온 은규. 이제 더 많은 이야기들과 상상력들, 기억의 장면들로 우리 사이의 대화가 더 풍요로와지겠다 싶다.



금요일이었던 어제, 나는 간만에 좀 놀고 싶었다. 퇴근길에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양은 성적처리를 아직 안했고, 오늘은 게다가 볼일을 보겠다는 거다. 꼼짝없이 은규와 종일 집에만 있겠다 생각하니 너무 우울해졌다. 간밤엔 잠들기 전에 짜증 내는 녀석 때문에 몸도 마음도 힘들어져서 아기 재우고 나서 혼자 찔끔 울기도 했다. 그런데 몇 시간 아기랑 단둘이 있어보니 알겠다. 녀석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고 즐겁다는 걸. 점심 먹기 전에 둘이서 아파트 단지 안을 산책하는데 참 좋더라. 나중에 다리가 아픈지 엄마 업어줘 해서 아기를 등에 업고 타박타박 집으로 돌아오는데, 가만히 내 등에 기댄 녀석의 머릿결이 바람에 솔솔 날리는 걸 보는 내 마음이 포근해졌다. 아기라는 존재, 아기와의 관계가 내 일상을 풍요롭게 따뜻하게 포근하게 해주고 있다는 걸 또 까먹었구나 싶다.


한편, 은규는 상상력과 이야기의 세계로 들어오면서 동시에 짜증의 세계로 들어오기도 했다. 이유를 잘 모르겠는 짜증 때문에 화를 내고 울고 엇나가는 일들이 잦아진다. 그 때마다 등을 타독이며 안아주며 이야기를 들어주며 마음을 받아주는 일이 쉽지는 않다. 왜냐면 나도 막 짜증이 나니깐. 그래도 아직은 교과서대로 하고 있다. 신기한 건 한 일이분 쯤 마음 받아주며 토닥이면 금새 풀려서 지가 먼저 나한테 애교를 부린다. 이런 패턴이 오래 지속되길. 내가 정신을 잃고 아기에게 화내는 일이 없길. 다만 기도할 뿐.ㅎ


너무 피곤했는데 그래도 기록하고 싶어서 은규 낮잠 자는 사이 얼른 블로그를 열었다. 인제 은규 옆에 누워서 잠시라도 눈 붙여야지. 어, 근데 저녁은 뭘 먹이나. 일단은 잠자러 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