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몇 주 전이었던가. 연구실 문을 열어두고 일하고 있는데 원장님이 깜짝 방문. (연구실이 있는) 4층에 올라왔다가 음악 소리가 들려서 왔다며 (다른 연구실에 방해가 될지모 모르니) 문을 닫으라고 하셨다. 알겠다,고 문을 닫으려는데, "아직도 음악 들으며 공부해요? 나는 학교 다닐 땐 그랬는데, 연구원 다니면서는 음악 들으면서는 일이 안돼요"라고 말씀 하셨다. 그 땐, 아 그런가요, 하고 지나쳤다. 오늘은 정성하의 기타연주를 들으며 일을 한다. 아직 스무살이 안된 이 어린 기타리스트의 음악이 마음의 어떤 부분을 살살 건드리는 것 같다. 비오고 흐린 오늘 같은 날씨엔 기타가 피아노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것도 같고.

 

수많은 행정서류를 기입하고 영수증을 첨부해 회의록을 제출하고 기안을 하고 회의 일정을 잡고 연구 계획을 정리하고 공문을 보내고 전화를 해서 면담 교사를 섭외하는 일, 일, 일. 이런 일들이 적당하게 있을 때는 단순업무가 주는 묘한 쾌감에 그럭저럭 재미났다. 그런데 과제수가 늘고 이런 일들이 늘어나면서는, 참 지친다. 일정이 빠듯하고 시간이 부족해지니 더 그렇다. 나도 모르게 자판을 두들기는 손가락이 바빠지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다리가 빨라진다. 우당탕탕 뛰어다니고 연구실 안에서도 서둘러 왔다갔다 하면서 나는 매일 지쳐가는 것 같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들여다보고, 멍때리며 이런저런 상상을 하고, 노트에 뭔가 끄적거리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연구 아이디어를 나누고, 걸으며 하늘을 보며 내 인생에 이 연구는 무슨 의미일까 곱씹어 보는 일. 이런 일들이 그립다. 무엇보다, 연구원 밖에서도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밥먹고 아기 돌보고 잠자고 운동하는 일상이 그립다. 무엇 때문에 나는 평화로운 일상으로부터 쫓겨나서 동동거리며 매일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이런 일상 속에서, 연구실에 틀어놓는 음악은 그나마의 위안이다. 건조해지고 짜증나고 우울해지는 내 마음에, 작은 위안. 음악 말고도 위안이 될만한 게 있을까. 어떤 지혜를 내면 나는, 내 동료는 평화롭게 연구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