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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엄마 일기

[+728] 이 시간들

새빨간꿈 2014. 7. 7. 00:44



Y가 일박이일로 여행을 가고, 은규와 둘이 보낸 시간들.

처음엔 혼자서 아기 돌보며 시간 보내야 한다 생각하니 마음이 힘들었는데,

막상 둘이 있으니 좋았다. 

밥 먹이고 씻기고 같이 놀다가 잠들고 하는 시간은 참 평범하고 별 거 없는데, 

그냥 그런 시간이 좋았다, 이상하게도.


어제 저녁엔 천도복숭아를 안먹으려고 해서 한번만 먹어봐, 하고 먹였더니 맛있다고 냠냠 먹더라.

이젠 새로운 뭔가에 대한 반감도 크고, 하라는 거 절대 안하는 반항아임.ㅋ

그러면서도 시도해보고 좋아하고 신나하고 그러는 게 이쁘다.


잠들기 전에 집게차 이야기, 얼굴없는 포크레인 이야기 해달라고 한다.

낮잠도 밤잠도 이야기를 들으며 졸리는 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종일 쮸쮸를 많이 찾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본격적으로(?) 먹지는 않는다.

좀 먹다가 흥미로운 게 있으면 그 쪽으로 가곤 한다. 

이제 점점 엄마 품에 있는 것말고 다른 방식으로 나와 관계 맺기를 하려는 거겠지.

이야기를 나누고 일을 같이 하고 뭐 그런 것들?


잠에서 살풋 깬 아기를 안고 가만가만 서서 달래는 시간들. 

내가 흥얼흥얼 노래를 불러주면 그걸 듣고 있는 듯 리듬을 맞춰 쌔근대는 아기.

밭에서 수확한 채소들을 다듬고 요리를 할 때, 은규가 이젠 나한테 "같이 하자-" 라고 한다.

그런 걸 같이 하면서 신나하고 재미있어 하는 아기.

오늘 낮엔 고추 꼭지를 따고 작은 포크로 구멍을 내서 짱아치 담는 걸 도왔다.

아침엔 콩나물 밥 양념장 만들 때 같이 간장을 붓고 하는 걸 같이 했고.

저녁엔 부엌 뒤쪽 베란다에서 같이 근대를 씻고 다듬었다. 

부엌에 가서 큰 그릇 한 개 가져와, 제일 큰 걸로! 했더니 

"제일 큰 거? 제일 큰 거, 제일 큰 거..." 하며 가서는 진짜로 제일 큰 그릇을 가져왔다.

우아, 은규가 진짜 제일 큰 그릇 가져왔네, 했더니 의기양양 기뻐한다.

텃밭 농사도 재미나지만, 그걸 은규랑 같이 하는 게 더 재미있다.

어젠 밭에서 Y가 일하는 동안 은규를 업고 밭 이곳 저곳을 다니고, 

수돗가 대야에 풀꽃과 장미꽃잎 뜯어 물에 띄어놓고 노는 시간이 참 좋더라.

아무도 없는 텃밭 구석에서 살랑살랑 바람 맞으며 은규 젖먹이던 시간도 좋고.


아기가 할 수 있는 게 늘어나고 하고싶은 게 많아지면서

은규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좋아지는 거 같다. 둘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 일들이 많아지면서

아기 돌보며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니라 둘이 같이 있는 시간,이 되어가는 것도 같고.

이 시간들을 더 많이 은규와 보내고 싶은데, 아쉽기도 하다.


재우려고 젖을 먹이고 있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 이불의 아래쪽으로 가서 벌렁 눕는다.

뭐하나 봤더니 긁적긁적 몸을 긁고 있다. 살금 옆으로 가서 등을 만져줬더니 이내 잠이 폭 든다.

엎드려 누워 잠든 은규 옆 얼굴이 너무 이뻐서 만져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 달콤하고 흐뭇하고 잔잔한 시간을 내게 주는 이쁜 아기. 참 고맙다. 내일 만나아.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