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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내년에 아기를 보낼지도 모르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음악회와 영화상영회를 한다길래 가봤다. 가난한 동네 주민센터 마당에서 과일과 떡을 나눠먹으며 보는 음악회와 영화제. 조촐하고 투박했지만 주최자들끼리 히히덕 낄낄대는 행사 특유의 재미가 느껴져서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대학 때 많이 해봤던 짓들. 진지하게 준비해서 정성껏 진행했지만 결국은 우리끼리 재밌자고 했던 시간들. 그런 것들을 내가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새삼 알게 됐달까. 맑은 가을날 해는 지고, 아기는 내 곁에서 오물오물 과일과 떡을 먹고, 딩가딩가 음악까지 나오니 참 좋더라. 아무도 기죽지 않는 소박한 행사. 이런 걸 그리워하고 있었구나, 싶기도 하고.
루시드폴의 음악을 요즘 자주 듣는다. 그래봤자 씨디도 아니고 파일도 아니고 유튜브로 검색해서 듣는 곡들. 묘하게 마음이 진정된달까. 그의 홈피를 가끔 들어가서 보는데, 제주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책을 읽으며 요리를 하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그는 음악을 한다. 음악하는 사람이 왜 뜬금없이 농사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는 자기 삶의 중심을 잘 잡고 있다. 음악을 중심에 두고, 삶의 다른 부분들을 가볍고 단순하게 하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게는 놓치고 싶지 않은 중심이 무엇일까. 아기를 보살피는 것 그리고 연구를 하는 것. 이 두 가지면 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삶의 어떤 부분들을 쓸데없이 짊어지고 끌어안고 살고 있는 걸까. 또는 어떤 부분을 놓치면서 살고 있는 걸까.
행복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되는 기분이다. 그리고 내가 어떤 곤경에 처해있는지, 어떤 마음과 생각들이 나를 괴롭히는지도 조금씩 더 알겠다. 그렇지만 나는 종종 내가 왜 불안해하는지, 무엇에 두려움을 느끼는지 잘 모르겠다.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한참 웅크리고 있다가 다만 깨닫곤 한다. 불안하고 두렵구나. 이 앎만으로도 다행인 건가.
오늘은 종일 회의와 작업과 행정적인 일 처리로 바빴고, 저녁엔 성남까지 가서 학생 2명을 면담하고 왔다. 그래서 귀갓길, 온몸이 저리도록 피곤했다. 그런데도 아기를 재우고 이렇게 살짝 빠져나와 블로그를 연다. 피곤해도 이야기하고 싶은 밤이 있다. 누군가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줬음 싶은 그런 밤.
개운하지는 않지만 좀 가벼워졌다. 블로그가 없었다면 많이 답답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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