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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의 계획은 이런 거였다: 커피를 내려 도서관에 가서 반납할 책을 마저 읽고 노트북을 켠 뒤, 앞으로의 5개월 혹은 발등에 떨어진, 해야할 일들을 정리해보자. 그 후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한 가지 정도 해야할 일을 격파. 이렇게 하고 나면 뭔가 심리적인 안정이 올 거 같았다.
그런데 현실은 이러했다: 아침에 아이가 늦게 일어나고, 동영상을 더 보겠다고 땡깡을 부린 후(아침에 일어나면 5분짜리 뽀로로 에피소드 2개를 본다;;) 등원 시간에 늦어 헐레벌떡 버스를 타면서 커피를 내리지 못했고, 아이 기침약도 못 챙겼다. 가방엔 노트북과 도서관에 반납할 책만 들어갔다.
아이 등원 후 잠시 어떡하지, 멈칫했다. 어제 등원 후 파장동을 헤매고 다니다 발견한 (실은 이전부터 거기 있던 걸 알고는 있었던) 까페에 가서 아이스라떼를 테잌아웃해서 도서관에 가면 되겠다, 하고 나름 계획을 수정. 벌써 더웠다.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햇살은 뜨거웠고 바람과 그늘은 드물었다. 게다가 바닥이 얇은 스니커즈를 신어서 피로감이 금새 왔다. 가방은 노트북과 책들 때문에 무겁고.
십분 넘게 걸어서 도착한 까페는 문이 닫혀 있었다. 잠시 외출중이라는 메모가 문 앞에 붙어있었다. 아, 목말라. 그치만 이왕에 걸어온 거, 언덕 하나만 넘으면 도서관이니 다시 걷기로. 도서관에 도착해 입구 정수기에 있던 물을 엄청 들이키고 자료실에 올라가 박솔뫼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를 마저 읽었다. 그리고 책 두권을 대출하고, 아이 어린이집 다른 엄마를 우연히 마주쳐 잠시 수다도 떨고. (박솔뫼 소설집과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반납했다. 두 권 모두 어찌나 사람을 우울하게 하던지;;; 그리고 집에 관한 책 1권과 황정은 소설집 [파씨 입문기]를 빌렸다. 조금 더 명랑해지고 싶었나 싶다.)
어느 정도 충전된 기분이 들어, 무엇보다 배가 고파서, 상가가 많은 곳으로 또 걷기로. 아이 유산균이 떨어져 그걸 파는 약국에 가야하기도 했다. 15분 정도,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는 길을 걸었다. 약국에서 나와 맥도널드 가서 백만년 만에 햄버거를 점심으로 먹었다. 뭔가 자극적인 걸 먹고 싶었는데, 맥도널드 햄버거와 콜라와 감자 튀김은 과연 자극적. 너무 자극적이라 먹은 게 후회될 정도;;; 그리고 거기서 집까지 또 걸었다, 20분 정도.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2시간 반 정도를 걷고 쉬고 반복했다. 다리가 너무 아프고 피로가 몰려와서 일단 잤다. 자다가 배가 고파서 깼다. 햄버거 어디갔지? 사과 한 알 씻어 먹고 그래도 뭔가 허전해 커피를 내렸다. 그리고 아이 하원 때까지 해야할 일들을 꼽아보는 오후.
- 우엉 조림 만들기
- 쇠고기 볶음 만들 준비
- 쌀 씻어 밥 안치기
- 빨래 널기
- 안방 청소
해야할 일들에 비해 시간이 부족하네. 가만히 있으면 해야할 일들이 많이 떠오른다. 마음은 부산한데, 무얼 먼저 해야할지 잘 몰라서 그리고 하기 싫은 일도 있어서 미루다가 시간이 간다. 막 돌아다니고 싶고 놀고 싶고 쉬고 싶은데, 한편으로는 해야할 일들을 착착 진행해서, 논문 편수도 많아지고 싶고, 운동과 휴식으로 몸은 개운하고 싶고, 집은 깔끔하고 싶고, 매일 양질의 음식을 아이에게 해먹이고 싶다. 써놓고 보니 모순적이네.
돌아보니, 이렇게 시간이 뭉텅, 내 앞으로 온 게 얼마만인가 싶다. 그러니 이렇게 휘청휘청 어영부영 혼란혼란하는 게 당연하다 싶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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