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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은 역시 정의감이 아닐까요. 가정에 묻혀서 모르고 살아도 좋을 것을, 정의감 때문에, 또는 어느 편에 서는 게 양심에 부끄럽지 않다는 생각으로 나서서 글도 쓰고 발언도 하고 그러는 거죠(78).


어머니는 이야기를 아주 잘 하셨죠. 어머니는 시골에서 드물게 글을 읽는 여자였습니다. 필사본 책을 많이 가져다 읽으셨어요. 어린 시절 방학 때 시골에 내려가면, 자다가 깨서 보면 어머니의 얘기가 계속 되고, 또 자다가 깨서 보면 계속 되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풀지 못한 게 한이 되어서 가슴에 무언가가 생겨서 죽었다는 얘기라든가, 맺혔던 말을 풀어놓았을 때 행복해하던 모습 같은 게 잊히지 않습니다. 고향 마을로 시집온 지 얼마 안된 여자들이 어머니에게 편지 대필을 부탁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등잔불 밑에서 붓글씨로 그 여자들의 사연을 받아 적던 어머니 모습이 생각납니다. 물론, 그 여자들이 문장을 완성해서 부르는 건 아니었고, 엄마가 살을 많이 붙여 썼죠. 그런데, 어머니가 편지를 다 받아 적고 나서 마지막으로 읽어주면 그 여자들이 열이면 열 다 우는 거에요. 그걸 보면 엄마가 아주 잘난 것 같더라구요. 그런 모습에서 이야기의 힘을 느꼈습니다(82).


질문: 개성 사람 특유의 '깔끔하고 도도한 주체성(미망)', 그리고 '영원한 문밖 의식(엄마의 말뚝1)'의 영향이랄까 흔적은 어떨까요?

아마도 주류에서 비켜난 위치에서 볼 수 있는 힘 같은 거겠죠. 자기 나름의 위치를 확보하고, 거기서 세상을 본단 말이죠. 문학의 본질이나 태도가 또한 그런 게 아닐까요?(85)


쓰기를 잘했다 싶어요. 그렇죠. 쓰고 싶은 걸 못 쓰는 건 싫지만, 의욕이 과해도 안 좋아요. 체력에 맞게 써야죠. 체력과 비슷하게, 예쁘게 소멸했으면 좋겠어요. 쓰는 게 고통스럽지만 쾌감도 있습니다. 또 그래야죠. 즐길 만큼만 쓰고 싶어요(87).




특히, 마지막 인용 부분을 읽을 때 나도 모르게 떨렸다. 쓰기를 잘했다, 싶은 저 마음. 뭔가 뭉클하다. 나도, 즐길만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