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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젯밤, 퇴근하고 강의듣고 늦게 집에 들어갔더니 아이는 다 씻고 머리카락을 말리는 중이었다. 나를 보면서 아이 눈이 반달 모양이 돼서 웃는다. 머리 감고 이제 말리는 중이야, 밥은 다 먹었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아이의 얼굴에 피로감과 안도감이 맺힌다. 잠자리에 누워 아이가 나에게 말한다. 엄마가 오니깐 좋아. 응, 엄마도 너 보니깐 좋다. 히히히히. 둘이 어둠 속에서 눈 맞추고 웃는다. 원고 마감에 쫓겨 종일 불안하고 초조했는데, 그 와중에도 아이 생각이 많이 났다. 아이에게 내가 필요한 때인데, 바빠서 그 필요를 못 채워주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 그런데 밤에 아이와 눈 맞추며 웃고 아이 몸을 쓰다듬으면서 알았다.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한 게 아니라, 내가 아이를 필요로 했다는 걸. 나는 아이를 돌볼 책임이 있는 사람이고, 그것 때문에 일상이 피곤하지만, 아이가 나의 마음을 채워주는 부분이 분명 있다. 아이 덕분에 나는 덜 외롭고, 죽기보단 사는 쪽으로 에너지의 방향이 바뀌었다. 아이가 내 삶에서 차지하는 부분들을 똑똑히 인식하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나를 떠나 독립하고 나면 나는 이 부분 때문에 허전함에 고통스러워하겠지. 그 고통을 달게 받기 위해서라도 아이와 많이 치대고 나눠야겠다. 시간을 많이 보내야겠다.
2. 오늘밤까지 써서 내야할 원고의 제목은 "미래사회를 위한 교육제도 혁신"이다. 일터에서 주최하는 심포지엄의 한 꼭지를 발표하게 되어 지난 이십여일 동안 틈틈히 쓴 거다. 4차 산업혁명을 비롯하여 미래사회 변화에 대해 예측하는 글들을 많이 읽었고, 그것을 교육(제도)를 키워드로 읽어내는 일은 재미있었다. 그런데 교육제도와 관련하여 무지한데다 시간이 부족해서 원고 쓰는 내내 괴로웠다. 어떻든 원고를 끝냈고, 부수적인 것들만 수정하고 나면 오늘밤 낼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올해 굵직한 마감 중 한 가지는 완료.ㅎㅎ) 그런데 다시는 이런 원고 쓰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영혼을 담아서,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이 아니면 (억지로) 쓰지 않는 편이 좋다. 물론 이렇게라도 글을 쓰면서 배우는 건 많았지만, 내 청춘을 억지로 쓰는 글로 채우고 싶지는 않다.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더 직접적으로 담아내는 글을 앞으로 더 많이 쓰고 싶다. 써야할 글 말고, 쓰고 싶은 글. 어쩌면 내 인생의 전반적인 방향을 이렇게 바꿔야하는지도 모르겠다.
3. 최근 이주동안, 옛 인연들을 종종 만난다. 길게는 십여년 전, 짧게는 삼사년 전에 만났던 사람들을 우연히 혹은 일부러 마주치게 된다. 그 만남들을 통해서 나를 반추한다. 내가 동경하고 되고싶었던 건 이 사람의 이 모습이었구나. 내가 의도치 않았는데도 나는 이렇게 흘러와서 여기까지 왔구나.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이 사람이 하고 있는 이런 건 아니구나. 인연들을 만나 나를 비춰보는 일이 담담하니 재미있다. 지금-여기의 내 모습에 크게 실망하지도 완전 만족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앞으로는 이런 방향으로 걸어가야지, 대강이라도 알게되어 다행이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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