移徙
내일 아침이면 이 집을 떠난다. 2년 반을 거의 꽉 채워 살았다, 봄에 와서 가을에 떠나는. 이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바로 부엌. 요리 시간을 즐겨서라기보다는 식탁 의자에 앉아서 보는 뷰가 꽤 괜찮았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식탁에 혼자 앉아 책을 보거나 밥을 먹거나 음악을 듣거나 차를 마시는 시간도 좋았고, 특히 비오는 날엔 부옇게 습기가 찬 베란다 창 너머로 녹색이 보여서 좋았다. 이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오후 늦게 창을 열어두고 가만히 바깥의 소음을 듣고 있던 네 다섯시 즈음의 시각들. 서향인 큰 방 안으로 해가 길게 들어오고, 방은 밝은 기운으로 가득한데 양 쪽으로 열어둔 창으로는 오후의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곤 했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이 담뿍 든 이 집, 이 동네, 이..
그물에걸리지않는/황홀한일상
2009. 9. 29.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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