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된 동네와 논밭이 있는 동네. 올겨울 새로이 발견한 산책길엔 낡고 오래 된 것들이 많이 있다. 이제는 동물도 사람도 살지 않는 목장, 더이상 누구도 어떤 버스도 오지 않는 버스 정류장, 사람도 차도 다니지 않는 작은 차도... 오래 된 것들에 깃든 낡은 기운에는 쓸쓸함과 함께 나름의 멋이 있다. 나는 그 낡은 멋과 빛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 빛나는 장면들에 눈길을 주며 오래오래 걸었다. 다리는 노곤하게 피로해지고 머릿 속은 개운하게 맑아지는 시간. 이런 산책의 순간들이 참 좋다. 어쩌면 제도 안에 자리잡고 있는 내 삶을 안정이나 안전이라는 키워드로만 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을 하면 이렇게 새롭고 이상한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 신기하게도.
영화 69세의 임선애 감독은 주인공 효정이 사건 해결을 포기하지 않은 건 사랑의 힘이라고 했다. 물론 그 사랑은 동인의 것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연락을 끊은 효정을 찾아와 뭐든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는 그의 마음이 그녀에게 힘을 준건 분명하다. 그런데 결국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효정이 한 걸음 나아갈 때 했던 행동은 동인이 쓴 고발장을 자기 문장으로 다시 써내려가는 것이었다. 동인의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그 사건을 겪은 건 효정이고, 해결또한 자신의 몫임을 이 여자는 명백하게 알고 있다. 이 영화가 가진 수많은 미덕 중에서도 나는 이 부분이 가장 좋았다. 타인의 깊고 충분한 사랑이 나라는 존재를 변화시킬 수는 있지만, 내 삶을 밀고나가는 건 결국 나 자신이다. 누구도 대신 할 수 없고, 대신 한다 해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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