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해가 조금 나왔고 일몰도 슬쩍 보았고 한동리 바닷가에서 보름달이 바닷물에 비친 윤슬도 봤다. 바다 위로 동그랗게 뜬 달빛이 은은하고 서늘하고 담백하고 고요하게 바닷물 위로 일렁이는 그 장면은 아마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그 때 내 곁에 있던 아이, 오랜 친구인 ㅅㄴ언니. 우리 셋 모두 조용히 그 윤슬만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오늘 아침은 바람소리가 심상치 않다. 어제 옮겨 온 작은 숙소의 부엌창으로 보는 아침 해도 잔뜩 흐린 하늘 가운데 얼굴을 보여줬다 말았다 한다. 멀리 보이는 갈대는 바람에 흔들리고. 주민이었다면 외출을 삼가할 날씨이지만 바람 부는 비자숲과 5일만에 하루 선다는 장터, 이제서야 알게 된, 보말이 그득한 바닷가를 열심히 돌아다닐테다. 아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까페에서 가만히 ..
금요일 오후에 와서 사흘을 잤으니, 오늘은 여행 나흘째. 첫날은 저녁에 도착해서 저녁(생선구이와 미역국, 전복 뚝배기) 먹고 숙소에서 쉬었고, 둘째날은 수영-점심(고기국수와 돼지국밥)-이호테우해변-동문시장-제주국립박물관 순서로 다녔다. 그날 밤, 516 도로를 넘어 서귀포에 가서 두 번째 숙소 봄스테이에서 묵었고, 셋째날 아침 숙소 뮤지엄에서 보았던 작품이 엄청 압도적이어서, 70년만에 온다는 이중섭의 원화 전시를 놓쳤지만 덜 아쉬울 정도. 봄스테이 정원 산책도 좋아서, 이 숙소엔 다음에 다시 오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뮤지엄 전시도 다시 보고싶을 정도로 정말 좋았고. 섶섬 앞 짧은 올레길, 해안도로 작은 식당에서의 점심은 소박하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비오는 쇠소깍에서의 보트타기는 무서웠지만 재미있었고..
창밖 바람 소리가 들린다, 우우. 숙소의 이불과 베개에선 세제 냄새가 나지만 왠지 깨끗하지 않을 거 같아서 아늑한 느낌으로 덥지 못하겠네. 너그럽고 다정한 사람이 나를 지켜줄 거라 믿었던 거 같다. 그게 당연한 상태인 줄 알았다. 그런 부모에게서 자라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결핍이 컴플렉스였고 그 열등감을 벗은 이후에도 그런 사람을 찾아헤매었다. 이제 그런 사람은 없다는 걸 안다. 내 인생 내내 다정하고 너그러운 누군가가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 만약 그런 사람이 등장한다면 그건 그 자체로 선물이라는 것. 감사하며 지내면 된다는 것. 또 하나 더 알게된 건,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면 된다는 것. 그 태도와 언행 때문에 상처받으며 살 필요는 없으니까. 조금 더 단순해지..
1박 2일짜리 캠핑인데도 오랫만이라 그런지 많이 피곤하다. 아이는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지고 난 피곤한 몸 달래며 저녁을 차리고 치우고 빨래를 하고 널고 세탁물 정리를 하고 내일 출근 준비, 내일부터 공부해야할 것들 정리, 아이 가방까지 대충 준비해두고 이제 잠자리에 든다. 몸은 피곤해도 이상하게 에너지가 충전이 된다, 캠핑을 다녀오면. 내일부터의 일상이 살아질 만한 것으로 여겨지고 나쁘지만은 않은 일들이 내 앞에 놓인 것 같다. 비록 금요일날 자른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안들고 얼굴은 볕과 바람에 그을려 따갑고 빨갛지만, 내일 그래도 웃으며 출근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ㅎ 몇 가지 발견들 - 숲속 깊이에도 볕이 들고 내가 훈련해야할 것은 일을 잘하는 게 아니고 일과 거리를 두는 일이라는 것 - 을 까먹지 ..
학회 발표하러 제주도 출장+여행을 다녀왔다. 이박삼일, 짧은 꿈 같은. 혼자 몸으로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고 작고 예쁜 숙소에서 잠을 자고 아침을 먹고 바람 맞으며 멍하니 앉아있고 바다색에 감탄하고 밤의 제주를 즐길 수 있었다. 베스트는 깜깜한 밤 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검은 나무 실루엣과 밤하늘 그리고 밤바람을 실컷 느낀 것. 머리가 지끈거리고 내일부터의 할일이 부담스럽고 엄마엄마 부르는 아이가 있는 이 곳, 일상. 새삼 버겁다. 그래도 내 잠자리에서 달콤하게 일단 잠들자.
작년 초 일본 여행은 여러모로 고됐다. 직접 여행 루트를 짜야했고 낯익으면서도 실은 낯선 직장동료들과 함께 해야했고 일정도 빡빡했다. 급기야 약간의 갈등 때문에 마지막엔 좀 서먹하게 헤어지기까지 했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지나고 나니 그 때의 시간들이 좋았던 느낌으로 되새겨진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의외의 장면들이 있다. 하나는 M선생님과 둘이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 오전의 햇살이 드리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동네 버스정류장에서의 우리 모습이 왠지 그립다. 오늘 아침 떠오른 또 하나의 장면은, 눈덮힌 돗토리현을 다녀오던 길, 고속도로변 휴게소에서 만원 미만의 점심을 먹고 나와 작은 과일 가게에서 귤을 사던 장면. 한 봉지에 몇 천원 안했는데 엄청 맛나서 와 맛있다 했던 그 때. 배는 적당히 부르고 오늘..
엄마를 기리는 일을 제대로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동생이나 나나 아이 키우며 먹고 사느라, 그리고 떨어져 살고 있으니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매년 기일은 꼭 챙기기. 그리고 엄마 생신 즈음에 산소에 찾아가기. 요거 두 가지는 동생과 내가 만들어 지키고 있는 규칙이다. 올해 엄마 생신은 지난 금요일(3/18)이었다. 그래서 주말엔 동생네와 이모를 만나 엄마 산소에 갔다. 아침부터 기차타고 수원역에서 황간역까지 가서 동생과 이모를 만나 엄마를 만나고 다같이 대구 동생네 가서 하룻밤 같이 지내다 어제 낮에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뼛가루가 담긴 항아리는 찾아갈 때마다 그 자리에 있다. 그 앞에서 우리는 과일과 오징어, 술을 간소하게 차린 후 절을 한다. 이모는 여전히 엄마 앞에서 절을 할 때마다 어깨..
새벽 세시가 넘어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아침 여덟시 반쯤.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일어나 나갈 준비 중이었다. 입고 자던 옷에 양말 신고 코트만 걸친 채 밖으로 나갔다. 전날 종일 흐리고 추웠는데, 간밤에 하늘이 맑아졌는지, 아주 밝고 찬 아침이었다. 아직 나뭇잎에 서리가 내려앉아 있는 아침. 아무도 없는 숲을 혼자 걸었다. 바람이 잠잠해 나무들은 가만히 서있고 작은 새들이 제각각의 소리를 내며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니고 앉아있고. 잎을 다 떨어트리고 벗은 채로 서있는 나무들도 울창하다 느껴질 정도로 키가 크은 나무들. 아침 산책 하길 잘했다, 너무너무 좋다, 이런 게 충만한 즐거움이지, 싶었던 시간. 지난 밤, 사람들과 섞여 앉아 술을 나눠마시고 열을 다해 나누었던 이야기들 속에 있었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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