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은 시작됐으나 보고서는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떠났던 여행. 첫 이틀동안은 새벽에 혼자 일어나 두어시간씩 일을 했다. 이부자리 옆에 있던 화장대에 노트북 켜놓고 앉아 있으면 오른쪽 옆 통창으로 날이 밝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부옇게 하늘이 밝아올 때, 커튼을 열고 따뜻한 바닥에 반듯이 누워 나무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배롱나무 가지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처음 알았다. 두번째 날엔 비도 오셔서, 더 운치있었던 나만의 새벽 시간. 숙소 예약을 늦게서야 했기 때문에 별 선택지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너무 모던하거나 리조트 형식의 숙소는 가고싶지 않았다. 조금 비싸다 싶은 숙박비였지만, 통창으로 연못을 끼고 있다는 설명에 그냥 결정했다. 그리고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고요한 새벽시간도 좋았고, 정성들여 차..
2011년 11월, 아기가 뱃속에 있는지도 모르고 내리 사흘을 걸었던 제주 여행.만 삼년만에 다시 와보니 익숙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길면 석달, 짧으면 3-4주 잠을 잘 못자고 보고서에 매달리다 왔으니 몸이 피곤한 건 당연한 일이다.더구나 떠나기 전날 4시에 잠들어 7시에 일어났으니 병이 날만도 했는데 이렇게 버텨주니 다행이다. 제일 좋았던 건 그제 어제 묵었던 숙소.마음에 제일 깊이 남는 건 오늘 갔던 강정 미사와 인간띠잇기. 잊지 않기 위해 일정을 기록하자면, 첫날 제주공항 도착해서 렌트카, 카시트 빌려서 출발 준비 하니 오후 4시 - 동문시장 오메기떡, 외도 땅콩 - 연북정 일몰 - 조천 촌촌해녀촌 회국수와 고등어구이로 저녁 - 밤길을 달려 청재설헌 도착하니 8시 - 욕조 물받아 목욕하고 티비보..
한밤에 둘이서 몰래 캄캄한 노천 욕탕에 들어갔다.울창한 숲의 향이 낮보다 한층 짙게 풍겼다.세찬 강물 소리가 어둠을 헤치고 흐르고 있었다.삼나무와 대나무 숲을, 뽀얀 달이 비추고 있었다.뜨거운 탕에서 피어오르는 김에, 모든 것이 환상적으로 번져 있었다.우리는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맥주를 마셨다.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몸이 불어 쭈글쭈글 해졌을 즈음, 어둠에 눈이 익어 별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되었을 즈음.눈앞 대나무 숲에서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렸다.가늘고, 하얗게, 이쪽을 보고 있다.그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이었던가."나는 보이지 않아. 하지만 느껴. 저 네번째 키 큰 대나무 언저리에."하치가 말했다.".......다."나는 말했다."그렇군. 배웅하러 온거야. 하코네에서 죽었으니까.""아직 이승에..
이천팔년 사월 @ 남원 광한루 문득 예전 내 모습이 어땠나, 궁금해져서 오래된 온라인 커뮤니티 사진첩을 막 뒤졌다. 이천팔년 사월, 지도교수님이랑 전공 친구들이랑 남원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의 모습이다. 전날 산에 오르고, 술도 마시고, 늦게 잠들어 무지 피곤했던 광한루 산책길. 아마 커피 마시며 벤치에서 헤롱대고 있을 때였던 거 같으네. 썬글래스로 눈을 가리고 좀 멀리서 찍으니 당시의 몸상태와는 별개로 제법 우수어린 느낌?ㅋ 어느새 사년 전이라는 게 언빌리버블. 시간은 어김없이 지나가고, 몸과 마음은 변하고, 어느 순간을 잡아두었던 사진 속 모습만 왠지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 같다.
가끔, 뜬금없이 어떤 여행에서의 어떤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오늘은 이천구년 이월, 토론토에서 몬트리올로 이박삼일 떠났던 그 여행, 낯선 도시의 낯선 식당에서 프렌치 토스트를 먹었던 그 아침이 생각났다. 날은 여전히 겨울이었고, 전날 밤 늦게 도착해 맥주 마시고 자서 몸은 피곤했고, 다음주 수업 준비를 안해서 마음은 무거웠고, 그래도 햇살이 좋아서 조금 들떴던. 유스호스텔의 프런트 직원에게 '근처에 죽여주는 브런치 식당' 없냐고 물어봤더니 무심한 표정으로 알려준 Eggspectation. 별 기대없이 먹은 프렌치 토스트는, 투 썸즈 업. @.@ 천장이 높고 벽돌이 드러난 벽, 나무 의자들, 큰 창고 같은 느낌의 식당. 햇볕이 잘 드는 창가 자리에서 우선 커피 한 잔. 음식이 나왔을 땐 모양만 보고 별 감..
이 여자는 누구냐, 콸라룸푸르 공항 화장실에서 셀카를 찍고 있는. 사진 속 저 '게스' 손목 시계는 뭄바이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멈췄다. 이렇게 혼잡한 도시는 처음 본다며 짜증 폭탄을 늘 품고 있었던 그 곳에서의 한 열흘간, 시계도 없이 지금이 몇시쯤인가 몽롱했던 거 같다. 저 '디카'는 당시 직장을 다니고 있던, 내 주변에 몇 안되는 디카 소유주였던 ㅉ에게서 빌린 거고, 입고 있는 저 옷들은 인제 낡아서 못(안) 입는 것들이 되어버렸다. 저 헤어스타일을 하고서 인도 여행을 하고, 바로 학교에 돌아와 석사논문을 썼다. 그 몇달동안 미용실에 한 번도 안갔는데, 초고를 다 쓰고서야 머리카락을 싹 잘라버렸다. 이천사년 초, 뭄바이 가던 길. 시계와 디카와 옷과 헤어스타일에 얽힌 사연들은 기억나는데, 칠년 전..
- Total
- Today
- Yesterday
- 감기
- 논문
- 인도
- Toronto
- OISE
- 일다
- 봄비
- 여행
- 엄마
- 열등감
- 가을
- Kensington Market
- 일기
- 일상
- 교육대학교
- UofT
- CWSE
- 선련사
- 박완서
- 맥주
- 봄
- 아침
- 졸업
- 켄싱턴 마켓
- 교육사회학
- 영어
- 토론토
- 인터뷰
- 기억
- 토론토의 겨울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