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알렉스네 집은 반지하에요. 그래서 아침 볕이 잘 안들어옵니다. 맑은 날에도 그렇고, 오늘처럼 흐린 날엔 더욱 그렇고요. 어젠 피곤한 몸으로 자정 쯤 잠자리에 누웠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오전 열시가 훌쩍 넘었어요. 간만에 열시간을 내리 자고 일어나니 조금 가뿐합니다. 반지하 방에서만 가능한 숙면을 간밤에 누릴 수 있었네요, 기분이 좋아요. 알렉스와 함께 사는 네이튼은 종일 집에서 일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네이튼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피콩을 갈아서 메이커에 넣고 커피를 내리는 거예요. 신선한 커피향이 부엌과 거실에 퍼지고 있을 즈음, 네이튼이 "커피 한 잔 마실래?"라고 수줍으면서도 친절한 대사를 한 마디 합니다. 지금 바로 그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어요. 음, 커피..
아무데서나 똥을 잘 못싼다. 내가 늘 쓰던 몇 개의 익숙한 화장실이 아니면. 낯선 사람과 함께 있거나 불편한 상황에 있을 땐 더욱 그렇고. 토론토 집을 떠난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베를린-남독일-캐내디언 록키-벤쿠버...까지. 그 동안 변비가 계속 됐다. 낯선 화장실에 익숙해질 즈음 다시 짐싸고 떠나는 걸 반복하면서. 어제 도착한 벤쿠버는 바닷가 작은 도시 답게 참 예쁘다. 그런데 오늘은 흐리다. 화장실 사용이 익숙해질 때까지 여기 머물지도 모르겠다. 봉천동 집 화장실이 무척 그립다. ㅅㅌ이 내어준 안방에서 자고 일어나 창밖을 보니, 반지하 침실 바로 옆에 잔디밭이 있고, 거기 청초한 도라지 꽃들이 피어있다. 긴 여행을 일삼아 다니는 여행자들이 들으면 웃겠지만, 도라지 꽃 몇 송이가 길 위에서 서성이는..
학교 다닐 때, 사범대 노래패 이름이 '길'이었다. 나는 인문대 노래패 소속이었지만, 우리가 노래도 잘하고 공연도 더 잘했지만, 나는 그 이름이 늘 부러웠다, 길. 뭔가 주장하거나 소리지르지 않고도, 그 과정만으로 아름다울 것 같았던 이름이라 여겼던 걸까. 대학을 졸업하고는 늘, 여행을 가고싶어 안달이었다. 일상의 막막함, 답답함, 숨막힘, 뭔가 아닌 것 같은 그 느낌을 벗어나는 좋은 방법, 그것은 일상을 떠나는 것, 그러나 안전하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방식으로 떠나는 것, 여행이었다. 그 바람 덕분에 여기저기 많이도 다녔다. 적은 돈으로 훌쩍 다녀올 좋은 기회가 종종 생기기도 했고, 시간만 나면 떠나고 싶어서 들썩거리다 보면 기회들이 나를 찾아오기도 했다. 여행을 떠난지 어느새 육개월이 훌쩍 넘었고,..
나의 '토론토 일기'는 마지막 날 이야기가 안 쓰여진 채로, 마무리되었다. 중간중간에 쓰다말다 펼쳐지지 못한 책장처럼 못다한 이야기들도 있고, 다른 곳에 메모해둔 일기의 조각들도 있지만, 우선은 그냥 여기서 마무리. 다시 들춰보게 될 어느 때에, 이야기들이 다시 시작될 수도, 혹은 그제서야 마무리될 수도 있겠지. 베를린에 온지 일주일쯤 됐다. 코밑에 헤르페스가 생길 만큼 피곤했던 날들이 지나고, 시차도 적응되고, 베를린이라는 도시에 조금 호기심도 생기고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어제 봤던 프리다 칼로 전시였는데, 좀 시간을 두고 느낌과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만큼, 강렬하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가끔, 지금 내가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이 조만간 갖기 어려운 나만의 '방학'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마음과 ..
해보고 싶은 것들 1. ontario 호수 근처 beach와 toronto island 소풍. 2. ROM(royal museum of ontario) 방문: 화요일 오후엔 학생 공짜. 3. toronto 지역 ochestra concert. 4. UT Robart library 여성학 코너 샅샅이 뒤지기 5. Kensington market 노천까페에서 coffee+cigarette. 6. st. Lawrance market 싱싱한 야채와 햄, 치즈 새벽 장보기. 7. yonge street riding tracking: St.Clair->College, Lawrence->York Mill clear! 8. st. Claire 근처 공동묘지 공원 소풍. 날씨가 좋아지니깐 마음이 근질거린다. 벌써부터 반..
'무엇을 해도 불안한 마음'에 지쳐서, 훌쩍, 관악산에 다녀왔어요. 꼬마 김밥 5개, 포도 반송이, 감자 2개, 삶은 달걀 2개를 배낭에 넣고, 등산화도 안신고 운동화 차림으로 가볍게 떠났다가, 계획하지 않았던 연주대까지 가느라 고생 좀 했지요.ㅋ 오랫만에 산을 오르니, 최근 들어 유산소 운동을 안했던 몸이 막 괴롭다고 아우성을 치더군요. 숨도 차고 다리도 아프고 열도 막 나고요. 그런데 그 괴로움도 모른 척 계속 올라가니 잠잠해졌습니다. 그런데 이젠 마음이 막 불안해지는 거였어요. 날씨가 흐려지면서 사위는 어둑해지고 시간은 점점 늦은 오후로 가고 산을 내려가려면 정상까진 가야하는데 가는 길은 험하고(밧줄 잡고 바위들 사이를 막 기어올라가는 코스..ㅋ) 체력은 떨어지고... 불안과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
이천 육년 이월, 어느 추운 날. 그 때 나는 씨스터들로부터 뭔가 에너지를 얻고 싶었던 거 같다. 주변의 몇몇 여자들에게 '떠나자' 제안했더니 딱 두명이 낚였다. 그래서 그 여자들이랑 히히덕 거리면서 떠났다, 돈 몇 푼이랑 바다를 보고싶다는 마음, 그리고 목적지에 대한 알량한 정보 내지는 환상 같은 걸 가지고서. 서울에서 동해가는 버스를 타고 강릉에 도착 - 예약해둔 렌트카를 몰고 바람부는 동해 바다와 경포대 구경을 하고, 차를 달려 묵호항에 도착 - 저녁이 내리는 항구에서 오징어, 쥐포 등등 사고, 회도 한 접시 먹은 후 추암으로 이동 - 화장실도 없는, 미닫이 문을 열면 바로 바다가 보이는 민박집에서 파도소리 밤새 들으며 수다 떨다 자는 듯 마는 듯 밤을 보내고, 아침에 망상으로 이동 - 망상 바닷가..
훌쩍, 다섯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해남에 가서 하룻밤 자고 휙, 돌아왓던 지난 이월의 어느날. 일요일 아침 동네 작은 교회에 가서 몇 분의 촌부와 예배를 보았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흙으로 지은 아담한 예배당 온돌방에 앉아 소박한 나무 십자가 아래에서 찬송가를 부르니 좋았다. 천국에 가야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이곳이 바로 행복의 장소요 시간이라는, 젊은 목사님의 설교도 좋았다. 돌이켜보면, 잠도 잘 못자고 밥도 잘 못먹고 눈을 떠도 감아도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리던 지난 겨울이었다. 겨울만 지나면 봄날만 오면 나아질거야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던 계절. 그 땐 절대 예상하지 못했겠지, 지금 제법 나아진 내 모습을 말야. 그러니, 언젠간, 돌아보고 그리워하는 일이 괴로움만은 아닐 수 있겠구나.
부르키나 파소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완전히 지친 몸을 실었던 빠리행 비행기에서 가장 흥분하며 기대했던 장소는 몽마르뜨 언덕이었다. 빠리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작은 언덕, 바람은 가만히 불고 하늘은 푸르고, 그 잔디밭이나 계단에 앉아서 잠시 땀을 식혀도 좋을 것 같았다. 그 런데 내 상상 속 몽마르뜨는 지하철역에서 나오면서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언덕에 오르는 길은 싸구려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했고, 아이스크림이며 크레뻬 가게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였다. 특히 여기저기서 들리는 한국말, 어딜 돌아봐도 보이는 한국인들. 언덕길을 올라가니 몽마르뜨 언덕 잔디밭과 계단에는 더위에 지쳐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거리 공연을 하는 팀 몇이 엠프 볼륨을 가득 올리고 있었고 관광객 대상의 잡상인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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