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생활 백오십일이래 _ 2010년 4월 18일 일요일 이른 아침엔 구름 가득한 하늘이 어두웠는데, 아홉시 반쯤 늦잠 자고 일어나 창밖을 보니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유독 예쁜, 청명한 봄날. 바람은 좀 차도 이런 날은 햇볕 받으며 걷는 게 좋다. 선련사 오후 법회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비록 법회 땐 좀 졸기도 했지만 끝나고 나니 마음도 가볍고. 오늘, 내 생일이니 한국인 신도들 다 모여라, 하는 스님의 가벼운 회합 공지로 법당 가까이 있는 베지테리언 중국 식당에 몰려갔다. 고작해야 오개월 전에 처음 만났던 사람들인데, 음식과 이야기, 웃음을 나누는 게 어색하지 않다. 어느새 조금씩 친해지고 있구나. 여기서 만난 사람들, 왠지, 한국에서보다 더 깊은 인연으로 마주쳤을 것만 같은 사람들. 태어나고 ..
토론토 생활 백사십팔일째 _ 2010년 4월 15일 목요일 오늘 CWSE 점심 회식에서 만난 Angela. 서울에서 삼년을 살았던 그녀가 문득, "너 서울의 벚꽃 그립지? High Park 가면 지금 벚꽃이 만개했을 거야~" 하는 거다. 아닌게 아니라 토론토의 봄은 서울만큼 예쁘지 않다. 그냥 좀 민숭맨숭 하달까. 그래서 요즘 부쩍 서울의 봄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거다... : 수줍은 듯 맨 먼저 피는 산수유, 지천에 피어있는 개나리, 진달래, 그리고 완연한 봄에서야 그 모습을 드러내는, 정말 흐드러지게 펴서 마음을 달뜨게 만드는 벚꽃! 절묘한 타이밍의 Angela 말에 혹해서, 오후에 휘리릭 High Park로 갔다. 근데 막상 가보니 벚꽃은 사나흘 있어야 만개할 듯. (쩝) 그래도 공원은 좋았다. 뉴욕..
토론토 생활 백사십칠일째 _ 2010년 4월 14일 수요일 continuing education이 운영되는 OISE의 4층에서는 일년 내내 ESL 과정을 듣는 학생들로 붐빈다. 하루 4시간 12주 과정의 등록금은 4700불 정도. 적지 않은 돈이지만 소위 '좋은 대학'에서 운영하는 거라 좀 더 나은 교육 과정을 제공한다는 믿음을 주는 것 같다. 한국으로 치면 겨울 방학 기간인 1~2월에 보니, 이 과정을 듣는 한국 학생도 적지 않았다. 점심 시간에 OISE 1층 로비에 가보면 한국말로 떠드는, 대학생인 듯 보이는 애들이 제법 있다. OISE 뿐만 아니라, 토론토는 ESL의 도시라 할 수 있을 만큼, 대학에서 운영하는 영어 교육 과정들은 물론, 사설 영어 학원들도 많다. 오늘 들었던 CWSE 세미나에서 발..
토론토 생활 백사십육일째 _ 2010년 4월 13일 화요일 1. 결단, 새벽 5시 종강 이후, 조금씩- 조금씩- 잠자는 시간은 늘고 도서관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던 중, 어젠 급기야 아홉시간을 넘게 자고 정오 넘어 등교...ㅎ 논문 진도가 느려 매일 조바심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던 차, 어제 저녁에 결단!을 내렸다. 아침 5시 기상,을 시도해보자!!! 그래서 오늘 아침엔 진짜로 5시에 일어났다. 덕분에 하루가 아주 길어지더군. 근데 종일 졸려서 멍. 소리도 잘 안들리고 말도 잘 못하겠고, 무엇보다 머리가 안돌아가...ㅜ 인터뷰 녹취 하는데 귀로 듣는 거랑 전혀 다르게 타이핑 하고 있는 나를 반복해서 발견. 다섯시쯤, 아직도 해는 중천에 있는데 집에 와선 저녁 밥 후다닥 차려먹고 일찌감치 씻고 침대에 ..
토론토 생활 백사십오일째 _ 2010년 4월 12일 월요일 낯선 곳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것들도 많지만, 그것이 나에게 익숙한 것이 되어가면서 보이는 것들도 있다. 낯선 것이든 익숙한 것이든,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건 언제나 그 눈이 '어떤 입장에' 있느냐에 달려있긴 하지만. 요즘 들어, 내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면, 그건 토론토 사회의 '인종'을 둘러싼 구체적인 사실들이다. 허름하고 싼 가게 주인은 비 서유럽/비 북미 출신일 확률이 높다. 가격이 싼 음식점의 점원들은 대부분 동남아, 남미 출신의 여성들이다. 반대로 깨끗하고 인테리어가 괜찮고 가격은 비싼 음식점의 주인은 백인일 확률이 높고, 그런 음식점 점원들은 백인 여성인 경우가 많다. 뭔가 진보적이고 대안적인 담론(유기농 음식, 지역 운동, ..
토론토 생활 삼십사일째 _ 2010년 4월 1일 목요일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수업이 마무리됐다. 멋지게 감사의 말 몇 마디 하고 싶었는데, 그냥 넘어갔다.ㅎ 이걸로 (원컨대) (당분간은) 내가 듣는 수업은 (내 인생에서?) 마지막. 후련하고 가볍다, 포기않고 마친 내가 장하다. 공짜로, 그것도 영어도 잘 못하는 이방인이 참여하는 걸 허락해준 수업 구성원들에 대해 뭔가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어서, 망설이다가, 코리언 타운에 가서 호도과자를 좀 사갔다. 작은 접시에 몇 알씩 담아서 골고루 놓아뒀는데, 정작 즐겨 먹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 맛있다! 고마워!' 하며 먹어줘서 고맙더라. 나 말고도 (역시 기혼 여성이 많은 수업 이라 그런지?) 선생님 포함 몇 명이 초콜릿, 치즈, 크래커, 넛, 마실 것 등..
토론토 생활 백삼십삼일째 _ 2010년 3월 31일 수요일 토론토를 떠나는 항공권을 예매했다, 5월 20일 저녁 비행기. 오늘이 3월 마지막 날이니, 두달도 안남은 셈이다. 12주 예정이었던 수업도 내일이면 끝난다. 겨울도, 수업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이 길게 느껴졌는데. 꼽아보면 삼분의 이, 혹은 사분의 삼 정도를 보냈고, 네 조각 중 한 조각 정도가 아직 오롯이 남아있는 건데, 내 마음은 어느새 떠날 즈음의 날들에 가있다. 그래서 분주하고 아쉽고 무겁고 또 조바심이 조금씩 나는구나. 매일 조금씩 하기로 했던 것(운동, 영어공부, 논문작업) 꾸준히 하고, 봄이 완연해지는 토론토를 느끼고, 여기서의 인연들 잘 갈무리하면, 떠나는 바로 그 날도 다른 날들처럼, 일기 쓰면서 마무리할 수 있겠지. 이렇게 마..
토론토 생활 백삼십일일째 _ 2010년 3월 29일 월요일 대학 다닐 때, 봄여름가을겨울, 엠티를 많이 다녔다. 구질구질하고 싼 방을 잡고 버너와 코펠로 삼겹살을 구워 흙을 덜 씻어낸 상추에 싸서 먹었다, 물론 소주를 곁들여서. 술 먹고 노래하고 얘기하다가 울다가 정신 못차리고 어두운 물가에 나가 놀다가 늦게서야 잠이 들면 깨어날 때쯤 그렇게 추울 수가 없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버너와 코펠로 라면을 끓여먹고 서울로 오곤 하던, 그런 쑥쑥한 여행들. 삼학년 때쯤, 엠티에도 이골이 날 때쯤, 어느 아침에 이런 생각 했던 것 같다, 아, 지겹다, 이런 빈한함! 그런데 우습게도, 토론토 와서 제일 그립다 생각되는 장면 중 하나가 저런 엠티다. 그 때 멤버들 다시 모아서 그 때 그 장소로 다시 가보고싶다,..
토론토 생활 백이십구일째 _ 2010년 3월 27일 토요일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은 듯, 요며칠 토론토 날씨는 영하에 머물러 있다. 박스에 집어넣어 버릴까, 했던 전기 히터와 전기 담요를 다시 사용하고 있고, 가방 속에 넣어만 다니던 목도리를 다시 두르고 다닌다, 후아 길다, 겨울. 원래는 팔개월을 계획했다, 토론토 일곱달, 벤쿠버 한달. 그런데 비자를 예정보다 한 달쯤 늦게 받아 출발이 늦어졌고, 지금은 슬슬, 출국일을 앞당겨 볼까, 계획 중이다. 그래서 앞뒤로 짤리면 육개월, 딱. 돌아가는 길, 어디를 들렀다 가면 좋을까 궁리 하면서 항공권 사이트를 뒤진다. '여기 까지 왔는데' 하는 욕심이 마음을 자꾸 충동질한다, 여기도 가보자, 저기도 가보자, 하면서. 아침 나절 읽었던 김창완 인터뷰 기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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