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생활 백구일째 _ 2010년 3월 7일 일요일 돌아왔다. 이박삼일 예정으로 떠나선 칠박팔일만에 돌아왔다. 밤새 달려온 버스가 버팔로에 정차했을 때, 선잠을 자다가 문득 생각했다. 아, 이제 집에 다왔네... 그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영상은 남부순환도로 낙성대 사거리 근처. 새벽녘의 그 거리는 차고 한적했다. 저 길을 따라 가면 봉천동 내 집에 다다른다, 뜨끈하게 보일러 켜 놓고 한 숨 더 자야지, 하다가 정신이 번뜩 들었다. 지금 귀가 중인 '집'은 토론토의 내 방이구나, 하고. 열시간만에 버스는 토론토에 도착, 아침 9시부터 다니는 지하철 첫차를 기다리느라 다운타운의 브런치 식당에 가서 아침 식사. 사람 버글 거리는 대도시 뉴욕에서 여기 돌아오니 한산하고 조용하고 작고 익숙하다. 여기도 집이구..
토론토 생활 구십칠일째 _ 2010년 2월 23일 화요일 종일 피곤했고, 공부도 잘 안되고, 마음도 복잡했던 하루. 케빈이랑 짧게 몇 마디 나누다가, 우연히, 복잡한 내 마음의 실마리를 봐'버렸다.' 여기 와서 내가 너그러워진 부분과 내가 포기한 부분에 대해서. 그동안은 너그러워진 부분만 봐온 듯. 포기와 관용은 한 끗 차이지만, 분명히 다르다. 간단히만 쓰자면, 뭔가를 포기했다는 게 조금 괴롭다. 긴장하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것의 한 극단엔 냉소하고 포기하는 태도가 있는 듯. 그 중간 어디 즈음엔 스스로에게 너그러우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있을텐데. 어떻든 여기 토론토에서의 나는 being minority 의 경험을 고되게 하는 중. 이 고됨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자고. 오늘은..
토론토 생활 구십육일째 _ 2010년 2월 22일 월요일 어제, 봄날처럼 따뜻하더니, 오늘은 낮부터 눈이 펑펑 온다. 점심 때 운동하고 창이 큰 거스타인(Gerstein)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는데 책상 옆 창이 마치 영화관의 큰 스크린 같다, 영화 속에선 줄곧 눈이 내리고. 논문 작업은 내가 만든 미로 속에 내가 갖힌 기분이 드는 국면. 좀 꼬이고 너무 복잡해져 버린 생각의 지도 속에서 종일 헤맸다. 한 숨 자고 내일 아침이 되면 길이 좀 보이려나. 길찾기 훈련삼아, 당분간은 좁은 지도 속을 맴돌아도 괜찮을 것도 같고. 남동생의 아가(딸)이 오늘 나오기로 한 날인데, 아직 안나오고 있단다. 나랑 반대로, 마음이 무지 무던한 올케는 나올 때 되면 나오겠지 하고 편한 듯. 내가 이렇게 떨리고 두근대는데 동..
토론토 생활 구십오일째 _ 2010년 2월 21일 일요일 오늘은, 토론토 와서 가장 봄같은 날씨.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차지 않고, 게다가 일요일. 선련사 삼우스님과 산하법사님 초대로 점심 식사와 커피 한 잔까지 여유로운 낮시간 보냈다. 켄싱턴 마켓 근처의 채식 중국음식점 가서 점심 먹고 히피 분위기 까페 가서 커피 마시면서, 스님 이야기도 듣고 법사님 이야기도 듣고. 햇볕 기분좋게 쬐면서 간만에 일요일 기분 냈다. 스님 출가하신 이야기 듣다가 코끝이 좀 찡했고 (스님의 개인사가 마음 아파서) 40대 초반쯤 됐을까 산하법사님에게는 언니처럼 대하며 마음껏 까불었달까, 그 가벼운 마음이 좋았다. 오후엔 토론토 대학에서 제일 좋은 도서관인 거스타인(Gerstein)에 가서 논문 작업 좀 하다가 늦은 저녁에 ..
매일 일기를 쓰다보니 블로그에 일기 외에 다른 글을 잘 안올리게 된다. 일기는 보통 저녁 때 쓰거나 제목만 써놓고 미뤄뒀다가 나중에 쓰곤 하는데 그래서인지 그 때 느낀 그 감정과 생각보다는 좀 정리된 편인 것 같다. 여기 와서 저녁을 조금 많이 먹게 된다, 특히 외식을 하면. 음식 양이 좀 많이 나오는 편인데 보통 저녁 땐 시장한 경우가 많고 비싸니깐 아깝다하는 생각에 거의 다 먹기도 한다. 어제도 조금 많이 먹었나, 밤에 조금 뒤척였다, 그러면서 꿈도 여러편 꾸고. 가끔 그런 밤이 있다, 얼른 아침이 됐으면 좋겠는데, 아직이네, 하는. (반대로 그런 낮도 있지. 얼른 밤이 돼서 쉬었으면 좋겠다, 싶은) 간밤도 그런 밤이었는데, 뒤척이다 눈을 뜨니 아직 일곱시 전인데 환해온다. 해가 길어졌구나, 아직 추..
토론토 생활 구십일일째 _ 2010년 2월 17일 수요일 아침에, 아직 여독이 안풀린 몸으로, 늦잠 자고 일어나니, 마음이 편하다. 그냥 편한 게 아니라, 편안하다. 집에 왔다,는 기분. 아침 지어 먹고 학교 갔다 귀가하니 다시 시작하는 일상의 싸이클이 반갑다. 이제 겨우 구십여일 지났는데, 어느새 여기가 '집'이 되었구나, 싶다. 학교에 앉아있는데 피곤해서인지 몸에서 열이 막 났다. 후딱 집에 들어와 쉬고 싶었는데, 그래도 견뎠다, 그러다보니 보려고 했던 아티클 한 편 다보고, 저녁도 먹고 장도 봐서 집에 오니 조금 멀쩡해졌다. 불교에선 집을 갖지 말고 유행(遊行)하라,고 한다. 내가 해석하기론 목숨이나 음식, 잠, 관계에 대한 욕망 만큼이나 질기고 강한 게 내가 사는 '집'에 대한 욕망인 것 같다. ..
내가 베고 자던 베개와 내 책들이 꽂힌 책장이 있다는 거. 그리고, 집에서 맥주 마시다가도, 아, 맛있는 안주가 먹고싶다, 하면 십오분 내에 도착할 수 있는 다양한 메뉴의 술집들이 밤에도 새벽에도 있다는 거! 저녁 9시부터 지금까지... 캐나다 맥주 한 캔+호가든 작은 거 한 병 반 마신... 나 지금 먹고 싶은 거... 대구 지리, 복 지리... 제법 큰 생선을 미나리 넣고 끓인 맑은 국물. 그거 한 숟가락만 먹을 수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그저 줄 수 있을 것 같아...ㅋ 이참에 먹고 싶는 거 몇 가지만 써보자면, 1. 순대국: 그 진하고 걸죽한 국물에 풋고추 쌈장에 찍어 아작. 2. 복지리: 술을 아무리 심하게 먹어도 복지리 한 그릇만 먹으면 재생 가능. 3. 마켓오 순수감자 프로마즈: 한국과자 거..
토론토 생활 팔십삼일째 _ 2010년 2월 9일 화요일 한국에서 날라온 편지를 받았다, 예상치 못한 선물, 같은 편지. 내겐 너무 친숙한 글씨와 말투(구어와 문어를 거의 일치시킨 문체랄까ㅋ) 덕분에 읽으면서 많이 웃었다. 고마워, ㅇㅊ, 역시! 종일 흐리더니 저녁에는 눈발이 날린다. 일기예보엔 내일부터 눈 내린다고 한다. 서울엔 '가른비', 겨울과 봄을 가르는 비가 내린다는데, 여긴 아직 겨울이 조금 더 남은 모양이다. 그래도 날짜는 어느새 2월 중순에 가까워지고, 점점 시간 지나가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주였나, 학교 근처에서 늦게까지 술마시고 귀가하는데, 취한 기분에 눈 쌓인 길을 걸으니 흥이 막 올라와 깔깔거렸던 순간에 찍은 것. 밤도 늦었고 다음날 할일이 많은데도 마음..
토론토 생활 팔십일일째 _ 2010년 2월 7일 일요일 켄싱턴 마켓의 브런치 식당에서 발견한 빨간 목도리 아저씨. 여기선, 가끔 사십대 이상의 사람들에게서 깜짝 놀랄 감각을 엿보곤 한다.ㅎ 일요일 낮 햇살 안에, 하얀 머리와 빨간 목도리, 소라색 풀오버가 서로 참 잘 어울린다. 표정까지 살아있어서 도촬의 보람을 느끼게 해준 센스쟁이 아저씨. 다음주 몬트리올 여행을 이 식당에서 의논했다, 케빈이랑 양이랑. 케빈이랑은 의도치않게 토론토 절친 되겠다, 꽤 자주 만나고 어울리게 되네. 아침에 법회 갔다가 이렇게 점심을 길게 먹고 도서관에 갔더니 피로와 졸음이.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앉으니 좀 낫다. 머릿속은 논문 생각으로 뒤죽박죽이지만 마음은 가볍고 단순하다. 잘 안되면 될 때까지 하고, 하다 지치면 쉬었다 하..
토론토 생활 칠십삼일째 _ 2010년 1월 30일 토요일 결혼 후 간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질문 자주 받았다. "결혼 하고 나니 어때요? 생활이 많이 달라졌죠?"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달라진 게 별로 없는데... 혼자 자취하다가 둘이 자취하는 느낌이랄까?" 한 동네에서 각자 자취하다가 결혼하고는 그냥 그 동네에서 방을 합쳐서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시댁도 멀고 시부모님이 나한테 요구하시는 것도 별로 없고 내가 하던 일도 결혼 후 변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으니, 일상의 변화가 별로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혼자서 자취하면서 가사노동을 최단 시간으로 줄이고 공부나 사회적인 관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노하우를 잘 발달시켜 온 편이었다. 그런 만큼 자취방은 늘 어지럽혀져 있었고 빨래도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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