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프다. 올겨울 들어 두번째 독감. 어떤 할재가 그랬는데. 아이가 아픈 건 전적으로 엄마 잘못이라고. 그 말 들을 땐 이건 무슨 개소린가 싶었는데 아픈 아이를 보면 자책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어린이집에서 다시 유행인 독감은 내 능력 밖 일임에도 불구하고, 더 잘 먹이고 더 잘 쉬게했다면 독감에 안걸렸을까, 하고 만약을 자꾸 생각한다. 자책과 우울이 섞인 마음이 나를 덮친다. 이럴 땐 백팔배를 하거나 산책을 하면 좋은데 내일까지 해야할 일에 쫓기는 y와 아픈 아이는 나를 돌봄과 살림 노동에 딱 붙어있게 만드네. 지금 나에게 거리를 두는 시간이 필요한데. 풍선 속 공기처럼 답답하다..
오늘 출장이 예정보다 세시간쯤 빨리 끝났는데 집에도 회사에도 가지 않고 산책하고 차를 마셨다. 집엔 독감 걸린 아이가 있었고 회사엔 밀린 일이 있었지만 아이는 시어머니가 돌보고계셨고 회사일은 나중으로 미뤄도 큰일 날 것 아니었다. 며칠 계속되던 지독한 미세먼지가 조금 걷혔고 날도 푹했다. 어딜 갈까 잠시 망설였지만 이 도시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으로 발걸음이 움직일 수 있도록 자유를 줬더니 물가를 걸어 근사한 풍경을 지나 맘에 드는 까페에 갈 수 있었다. 해가 질 때까지 딱 세시간, 내 자유시간. 그 시간동안 들이킨 달콤한 자유 덕분에 오늘 저녁은 기분이 좋다. 간만에 내 안에 에너지가 채워진 느낌. 평소보다 많이 걸어서 조금 피곤하지만, 그래도.
일터 심포지엄 섭외가 드디어 끝났고, 오늘은 1박2일로 여행을 떠난 아이가 돌아온다. 그런데 내 몸은 열이 나서 으슬으슬 아프다. 오늘 꼭 해야할 일이 있어 겨우 출근해서 후다닥 할 일들을 처리하고 이제 집에 가려는 중이다. 몸이 다 뻗을 자리를 보고 아픈 거다. 잠시 아파도 될 타이밍. 고통이 극심할 때, 긴장될 때는 오히려 아프지 않더라. 쉴 타이밍이 돼서 몸이 표시를 해준다. 술약속이 있다던 양이 일찍 들어온단다. 일터의 N 샘은 죽과 약을 사다줬다. 집에도 데려다 준단다. 팀 사람들이 얼른 들어가 쉬란다. 일체중생의 은혜 안에서 사는구나. 겸손해지고 작아지는 타이밍.
오줌이 마려워 잠이 깼는데 일어나보니 속이 안좋은 걸 알겠다. 저녁에 집에 들어와 지나치게 피곤했던 것도 점심 저녁 이어서 과식을 했기 때문이었구나 뒤늦게 안다. 나쁘지 않았지만 피곤했던 주말. 그 시간이 몸에 남았구나. @ 남원 요천수 위로 내리는 노을 지난 일주일도 전력질주를 했던 것 같다. 월요일엔 퇴근 후 면담을 했고 화요일엔 아이가 아파서 남편이 휴가를 냈다. 수요일엔 아이 어린이집 방모임이 있었는데 새벽에서야 집에 들어왔고 목요일엔 일터에서의 스트레스가 심해서 금요일 아침까지 우울했다. 토요일 아침 바느질 모임을 하고 남원 1박2일 여행까지 마치니 일요일 밤. 아이 컨디션은 조금 나빠졌고 난 소화불량에 피곤이 더해졌지만, 일주일이 끝나는 이 시점은 그리 나쁘지 않은 느낌. 어제 광한루에서 봤던..
격달에 한 번 만나는 사람들과도 반년 이상 지나니 친분이라는 게 생긴다. 회의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에프터를 하고 그 덕에 이렇게 멋진 풍경을 봤다. 사람들 사이에서 늘 부끄러움과 멋적음 속에 있었던 나에게는 신기하고 유쾌한 순간들. 눈 앞에 펼쳐진 덕수궁 그리고 멀리 인왕산. 따뜻하고 부드러운 까페라떼 한 잔. 슬쩍 물러가던 피로. 사람들과 나누던 아직은 낯설지만 그래도 괜찮은 눈빛들. 불쑥 고개드는 위축감. 잘 못할까봐 두려운 마음. 좋았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오늘도 그냥.
이승욱의 팟캐스트를 처음 들었다. 최신 에피소드는 7개의 질문으로 이루어져있다. 거기서 이렇게 묻는다. 지난 한주 동안 가장 힘들었던 일은? 내가 의지했던 사람은? 내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사람은? 등등 이걸 듣고 있다가 나의 일주일을 떠올려봤다. 오늘 뭘 하며 보냈는지 요며칠 내 삶은 어떤지 돌아보지 않고 사는구나 싶었다. 지난 한주 동안 여주와 서울로 두번 출장을 다녀왔고 내가 무능력한 사람이구나 과로워한 시간들이 있었고 세 차례 회의를 주재했고 새로운 팀 멤버와 조율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 와중에 달팽이 이사회 참석도 하고. 기침과 비염 때문에 밤에 잠을 잘 못잤고 피로 때문에 월요일 저녁엔 쓰러져 잤고 목요일엔 회사에서 낮잠을 잤는데도 계속 멍했다. 아침은 늘 대충 먹었고 점심은 약속과 출장..
정말 오랫만에 여기 들어왔다. 심지어 휴면계정이라 인증 절차도 복잡. 여기저기에 이런저런 기록들을 남겼는데, 그동안 내가 어찌 살았는지 잘 모르겠다. 기록이라는 건, 나중에 나를 돌아보기 위해서,라는 효용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으로서의 역할인 것 같다. 기록할 시간을 갖는다는 건, 잠시 멈춰선다는 의미이니까. 2017년 상반기는 여러가지 의미로 참 고통스러웠는데, 정말 제대로 멈춰서본 적이 없었다. (그놈의) 해야할 일들이 일상의 시간들을 맘대로 채워간 것 같은. 심호흡을 할 수 있는 시간, 잠시 멈출 수 있는 시간, 나를 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간. 기록을 해야겠다, 좀더 부지런히.
나는 이상주의자다. 더 좋은 공동체, 더 좋은 사회를 꿈꾼다.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길, 우리 사이에 감동이 흐르길 바란다. 그런 것들을 부여잡고서라도 나아가고 싶어서. 조합일을 하고 있는 건 그것 때문인 것 같다고 오늘 아침 생각한다. 수없이 이게 내가 바라는 삶이냐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매일 내가 하고 있는 어떤 것들이 나를 만들어간다. 그림 제목은 "Rising Moon." Kazuyuki Ohtsu이라는 일본 작가의 판화다. 달이 뜨고 있는 봄밤 그림을 보니, 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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