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전엔 다 끝내야지, 다짐하며 일했는데, 그 끝과 동시에 독감이 왔고, 그걸 앓고 나니 다시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 시무식을 하고 밀린 일을 해내고 지난해 일들을 갈무리 짓고 소화불량이 되고 약을 먹고 쪽잠을 자고 초저녁에 피곤해서 아이를 재촉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고. 변한 것 없는 내 일상. 자다가 깨서 핸폰 들여다보는 것도 다르지 않네. 변하고 싶은지,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 해준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들여다본다. 조금씩 변하고 있네, 어쩌면.
지난 월요일엔 종일 회의하고 저녁까지 일정이 있었고 화요일과 수요일엔 오후에 4시간씩 면담을 했다. 목요일은 분석 작업하며 하루 보냈고 금요일엔 종일 필드에 있다가 꽤 늦은 저녁 귀가. 토요일은 출근했고 일요일은 집에서 아이 돌보다 밤부터 새벽까지 일했다. 월 화 수 모두 오후에 출장이었는데 발표와 포럼 진행, 강의였다. 장소로 따지면 수원, 안산, 성남. 종횡무진의 나날들이네. 그 사이사이에 밥 해먹고 국 끓이고 샐러드 만들고 장을 봐서 아이를 먹이고 아이 발표회에 가고 아이 겨울 내의와 방한복을 샀다. 후어 장하다 나란 존재.
드라마 마더에서 엄마와 엄마의 동거남으로부터 방치와 학대를 당하던 윤복이는 손톱을 제 때 자르지않아 더럽다고 놀림을 당한다. 담임교사인 주인공은 혼자서도 손톱을 잘 잘라야한다고 윤복에게 가르쳐준다. 나는 열살 즈음부터 스스로 손톱을 자르기 시작했던 거 같다. 그 때 내가 외롭다 느꼈었나. 기억이 흐리지만 그랬던 것도.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줄곧 아이의 작은 손톱을 잘라줬다. 아이가 기관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손톱 자르기는 주말 리츄얼이 되었다. 아이도 나도 손톱 발톱을 자르는 그 시간을 좋아한다. 세수도 하지 않은 편한 차림으로 둘이 붙어 앉아 실갱이를 하며 톡톡 손톱을 자른다. 가만히 있어봐, 잘못하면 다친다, 엄마 잠시만, 아아 아파... 이런 대사들을 주고받으며. 주말인데 일하러 나와있으니 자..
아버지가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요일 오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가슴 저 밑까지 따뜻해지는 위로도 받았고, 사막에 혼자 버려진 것 마냥 외로움에 떠는 순간도 겪었다. 걱정과 불안, 혼란 속에 갇혀있는 나를 전혀 알아봐주지 않던 그를 오히려 내가 위로하기도 했고, 내 불행을 자양분 삼고 싶어하는 그 호기심 어린 눈동자와 눈을 맞추기도 했다. 오늘 그녀는 노인들이 이렇게 다쳐서 앓다가 그냥 가기도 한다,는 회괴망측한 문장을 내뱉았고, 나는 어쩐지 화보다는 포기의 마음이 더 빨리 오는 걸 느꼈다. 위로받을 자격이라는 게 있을까. 위로는 잠자코 기다리면 오는 걸까. 공감이 뭔지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사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라는 걸, 서러워 울던 많은 밤을 지나고 나니 ..
회사 근처 시장에 콩나물국밥집이 하나 있다. 언젠가부터 거기 혼자 가서 국밥 한 그릇 먹고 오곤 하는데 갈 때마다 주인 아줌마가 알은 체를 하며 맞아준다. 비오는 날엔 우산도 빌려주고 밥 먹고 나설 땐 혼자 걸어가려면 먼 길이라며 걱정도 해주신다. 오늘은 김밥으로 간단히 점심을 떼우려다가 여차저차 예정에 없는 발걸음을 했는데 국밥도 맛나고 맞아주는 주인 아줌마도 반가워서 기분 좋은 점심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회사에서 누가 나를 환대하나 싶다. 끼리끼리 친할 땐 그 관계 안에서 서로 맞아주고 반가워해주곤 했던 것 같다. 올해 초부터 그 끼리끼리 관계라는 게 얼마나 얄팍했던지 깨닫고 상처받은 마음으로 웅크리며 혼자 있기를 택하고 나서는 내가 출근을 해도 안해도 무관하기만 한 듯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꽤 외..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을 설친다는 걸 알면서도 마시게 되는 날이 있다. 어제가 그랬다. 컨디션이 바닥으로 떨어질 때 그걸 붙잡아주는 게 유일하게 커피인 순간이 있다. 회의 장소에 도착했을 때 내 자리에 놓인 아이스커피를 보고 너무 반가워 미소가 나왔지.ㅎ 대여섯 모금 마셨을 뿐인데도 잠든지 세시간이 지나자 의식의 각성이 시작되었다. 복통 없이 불면만 온 걸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기어이 불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았다. 작업을 조금 하다가... 피로와 졸음이 적당히 몰려오는 것 같아서, 다시 잠자리로 온다.
아침부터 몸은 피곤하고 마음은 무엇인가에 쫓기고 불편했는데, 그래서 먼 길 회의 참석을 위해 가야하는 오후 출장이 달갑지 않았는데, 회의 참석하고 집에 가는 길, 왜인지 마음도 몸도 가벼워졌다. 봄부터 지금까지 매달, 버스와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가야하는 이 회의가 항상 부담스러웠다. 거리도 거리지만,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의견을 내고 논의를 해야하는 게 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렇지만 책임감을 갖고 성실히 임해야겠다고 마음 다잡으며 회의에 다녀갔고 지금은 그런 내가 자랑스러워. 잘했다 애썼다 칭찬해주고 싶다. 오늘 회의가 마지막이라 기념촬영하고 회의장소를 나오는데 안녕- 다음에 또 만나요, 인사하는 서로의 사이에 쌓인 시간들이 어떤 관계를 만들어내었구나 이제사 깨닫는다. 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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