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랑 당근을 씻고 다듬어, 작은 냄비에 물 조금 붓고 감자를 찌는 동안, 당근을 착착착착 채썬다. 감자 찌는 냄비의 물이 보글보글 끓으면 소금을 조금 넣는다. 채 썬 당근 위로 소금을 솔솔 뿌려놓고, 어묵과 새송이 버섯과 양파를 어슷어슷 썰어둔다. 감자에 젓가락을 찔러 푹 들어가면 불을 끄고 냄비 뚜껑을 덮어 남은 열로 조금 더 뭉근히 익을 수 있게 두고 냉장고에 있던 삶은 달걀과 마요네즈를 꺼내 섞고 으깨기 좋은 그릇에 넣고 감자도 넣어서 서로 잘 섞으며 막막 으깬다. 슬쩍 집어먹어보니 감자 삶을 때 넣은 소금 덕분에 따로 간 하지 않아도 맛이 딱, 감자샐러드 완성. 후라이펜에 기름 좀 넉넉히 두르고 불을 켜서 약간 달구며 마늘다진 것 충분히 넣어 슬슬슬 볶으며 마늘맛 가득한 기름을 만들고 거기다 썰..
엄마가 태어난 날은 매해 이렇게 처음 날이 따뜻해지는 즈음이다. 두꺼운 외투가 번거로워지고 자꾸 목이 마르고 가지 끝, 발 끝에 새 잎이 돋아난 건 아닐까 살피게 되는 첫봄의 날들 중 하루, 엄마 생신이다. 매해 오늘, 동생네랑 이모랑 만나 엄마 납골당에 술을 올리고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헤어지는 리츄얼을 만들어둔 건, 참 잘 한 일이다. 봄소풍 삼아 모여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우리에게 엄마라는 뿌리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서로를 도닥일 수 있다. 엄마를 만나고 동생과 이모를 만나고 나를 만난다. 오래오래 이별의 슬픔과 고통을 안고 살아온, 그래서 더 씩씩한 나에게 잘 살고 있네, 하고 도닥여주는 시간. 마침 봄이 오는 길목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뭔가가 시작되는 타이밍이라 마냥 쓸쓸해하지 않아도 되는 ..
해가 떨어졌지만 하늘은 여전히 옅은 하늘색인 초저녁, 아이랑 손 잡고 장보러 갔다. 집에서 10분쯤 걸어가면 있는 생협 매장에 가서 버섯과 과자, 야채와 과일, 고기를 조금 사왔다. 피곤할 때 마시면 힘 나는 쥬스도 작은 걸로 샀다. 이제 열 한 살이 된 아이는 여전히 나에게 종알종알 이야기를 하고, 장바구니가 적당히 무거워 걸어 가는 길이 그리 멀지 않게 느껴져서 그 순간들이 좋았다. 별나게 좋을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지금 마음의 힘을 내어 담담히 살아내는 내가 좀 마음에 들었던 그런 순간. 어제 외출했다가 늦게 들어와 엄청 피곤했고 며칠 째 소화가 안되고 머리가 아팠지만 아이 세 끼를 챙겨주고 자잘한 일들도 두어개 처리하고 밀린 연락들도 했다. 아직도 마음은 바닥 어느쯤 머물러있지만 그냥 이렇게 살아..
엄마가 오랫만에 꿈에 오셨다. 출근길, 양말과 스타킹을 이상하게 신은 나를 데리고 짐을 많이 들고서 그것들 새로 사서 신을 수 있게 하려고 인천 어딘가 쇼핑몰에 가셨다. 지하철로 가는 길이 나로서는 초행길이었는데 엄마는 환승 지점도 잘 알고 짐 맡겨두는 곳도 잘 알고계셨다. 엄마에게 조금쯤은 화가 난 듯 뾰루퉁한 나를 데리고 간 허름한 쇼핑몰에서 엄마는 양말과 스타킹 파는 코너를 못찾았지만 낙심하지 않았다. 생전의 약간 무심하고 카리스마 있던 그런 태도의 엄마. 지금 이 어려움은 크게 보면 사소한 것이라는 걸 잘 알고계시는 그런 자세. 그러나 늘 그렇듯 나를 위한 애씀과 노동을 전혀 아깝다 생각치 않는 모습. 그렇게 엄마랑 다니다 잠을 깼다. 꿈에서 엄마 손을 잡고있었나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가 나를 끌어..
폐암 말기 진단을 받으신지 1년. 어쩌면 꽤 괜찮은 컨디션으로 견뎌왔던 건지도 모른다. 지난주부터 상태가 안좋아지셔서 내내 슬펐는데, 오늘은 덜컥 겁이 난다. 설명절이라 안부 인사를 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안받으시길래 무슨 일인가 두려웠고, 위급해지신 건 아닌가 생각이 미치니 몸이 아플 정도로 겁이 났다. 다행히 곧 통화는 되었는데 초저녁에 다녀온 동생 말에 의하면 병색이 완연하단다. 겁이 난다. 아버지의 죽음을 닥칠 준비가 나에겐 안되어있는데. 아마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대구로 내려가 엄마의 죽음을 알고 바닥에 쓰러져 호흡이 잘 안되어 헐떡였던 그 순간부터의 고통이 다시 몸으로 기억되는 것인지도.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흘러도 고통은 지겹게도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어젯밤 나는 고통도 지나가면 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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