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전부터 아프기 시작한 아이는 금요일 밤 정점을 찍었고 그 후론 점점 나아지고 있다. 그날 밤엔 해열제가 안 들어서 다른 성분의 약을 한 번 더 먹이고 물수건으로 오래오래 몸을 닦아줬다. 열 때문에 온몸이 아프다던 아이는 찬 수건이 몸에 닿으니 편안해했다. 그렇게 여러 번 닦아주고 나니 열이 좀 내려 이내 잠이 들었다. 엄마는 나한테 코로나 옮을 수도 있는데 왜 내 옆에 와서 이렇게 나를 닦아주는 거야? 고열 때문에 눈까지 빨개진 아이가 내게 저렇게 물었을 때 내 대답은 당연했다. 니가 아픈데 엄마가 어떻게 안 보살피겠노. 설령 내가 전염된다고 해도 지금은 아픈 아이가 우선인 것. 그게 내 몸에 밴 엄마 노릇이다. 금토일 사흘동안 아홉 끼니를 해 먹이고 빨래 돌려 널고 베란다 화분 정리와 물청소를 했..
유난히 길었던 한 달. 아마 그 시간동안 내가 나를 많이 들여다봐서일 거라고 생각해본다. 엄청 울었고/울고 있고, 어느 때보다 혼자 많이 생각하고 말했던 것 같다. 여행도 다녔고 방학 중이었지만 일도 무진장 했네. 시간의 주름 사이사이로 많은 것들이 쌓이고 지나간 팔월이 끝나고 새로 맞은 구월. 뭔가 새 기운이 휘릭 생겨날 줄 알았는데 오늘 개강 첫주를 잘 마무리하고 집에 오니 아이는 열이 나고 나도 몸이 가라앉네. 역시 인생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과 줄기를 타고 흘러가는 것. 흐흐.
오늘은 아이 학교 개학날. 이번 여름방학을 돌아보니 내겐 참 힘든 계절이었다. 많이 우울했고 더위 때문에 몸이 많이 힘들었고 많이많이 울었던. 그 와중에도 계절수업을 해내고 매일매일 아이 끼니를 열심히 챙겨먹였다. 찬이래 봤자 콩나물 무침이나 미역국, 호박전이나 카레라이스, 김칫국과 쇠고기국, 계란찜과 오이냉채 같은... 흔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었지만 언제나 정성 들여 만들어 먹이려 애썼다. 반찬을 만들고 상을 차리면서 머리로 하는 일에서 해방된 순간을 즐기기도 했고 손끝으로 완성되어 다시 몸으로 들어가는 음식 하고 먹기 과정을 처음으로 신기하다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담주면 나도 새학기를 시작하고 가을 내내 수업과 연구, 다른 과업들로 정신없을 것 같지만. 정성 다해 반찬 만들어 먹이고 소박한 밥..
살짝 불린 미역과 국거리로 잘게 썰은 쇠고기를 냄비에 넣고 국간장과 참기름 조금씩 부어 달달달달 볶으면 미역국 만들기의 반은 끝난다. 미역과 고기가 반쯤 익었을 때 조금 넉넉히 물을 부어주고 팔팔 끓이다 간을 보고나면 미역국은 완성된다. 어제 잠을 잘 못자 오전 내내 피곤했는데. 점심으로 보글보글 끓여 국물이 잘 우러나온 미역국 한 그릇에 밥 말아 김치랑 먹고 나니 땀이 훅 나면서 배가 든든해지고 마음에도 배짱이 생긴 것 같다. 그러고보니 며칠만에 제대로 먹었다는 느낌. 대단하고 놀라운 미역국 한 그릇의 효용.
아무래도 오늘밤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기차표를 끊고 택시를 불러 역으로 향할 때만 해도 눈물이 나오진 않았던 것 같다. 기차역에 도착해 동생이랑 한 번 더 통화를 하고 플랫폼에 서서 기차를 기다리면서 참을 수 없이 울음이 터져 엉엉 울었다.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아마 있었다 해도 주저하지 않았을 거다. 그 밤 플랫폼에 서서 한참 흐느끼며 울었던 나는 두려웠던 것 같다. 아버지의 생명이 점점 꺼져가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가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무서웠다.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그에게 의지하며 살았던 적도, 그를 좋아했던 적도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도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스러져 사라진다는 것이 두려웠다. 마흔 일곱살에서 갑자기 일곱살 아이가 된 것처럼 그 상황이..
내 상태가 별로 안좋다. 자주 우울하고 대부분의 일에 의욕이 없다. 해야할 일이 적지않은데 그 일들이 가벼이 되지 않는다. 쉬고 놀고 가만히 있고 싶은 시간들. 그제는 가까운 계곡에 가서 가재를 잡고 개구리를 구경했다. 밭에 가서 풀 뽑고 호박을 땄다. 그 때 신이 나고 웃음이 나왔다.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둥둥 뜨는 그 기분. 어젠 수영장 가서 6바퀴 반 헤엄쳤다. 물 속 깊이 들어갔다 표면으로 떠올랐다가 발장구 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팔을 허우적 대며 물에 떠있었다. 그 때 몸에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개운해졌다. 웃음도 슬쩍. 나에겐 좋은 바람이 불고 있다,는 문장을 자주 쓰던 사람이 있었는데. 오늘은 이 문장을 나도 빌려쓰고싶다. 하루하루 힘든 이 날들에도 사실은 나에게 좋은 바람이 불고 있다고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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