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의 주제는 외로움인가. 이 주제를 겪고 고민하고 묵혀야지만 이 겨울을 날 건가.) 간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어떤 한 장면이 떠올라서 또 사무치게 외로워 혼자 징징 울다가, 한강의 단편 [에우로파]를 읽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하필 가장 센 한파가 몰아친 날 만났던 그녀들은 모두 외롭다,고 했다. 나는 별로 외롭지 않다고 했었는데, 그 말을 하고 돌아온 밤, 나는 외로움에 깊이 빠져들어 혼자 징징 울었던 거다.근데 신기한 건, 그렇게 울다가, 소설을 읽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는데, 잠은 또 가뿐하게 잘 잤다.ㅎ 아이는 오늘 마음이 좀 허전한지, 출근한 나에게 (동거인 전화기를 통해) 두 번이나 전화를 걸어왔다.아이에게 오늘도 많이 웃고 즐겁자, 하고 말을 건내려다가 또 울음이 훅 나올 것 ..
나는 가끔 외롭다. 어릴 때부터 그랬던 거 같다. 내 옆에 아무도 없을 거 같고,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 거 같은 느낌. 허허벌판에 혼자 서서 엉엉 울며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돌이켜보면, 엄마의 주된 정서도 외로움이었다. 그 외로움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나도 그 감정을 내 몸에 익숙하게 만든 거겠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실은 내가 외로울 일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나를 미친듯이 좋아하는 엄마가 늘 옆에 있었으니까. 그러나, 모든 감정이 그렇지만, 외로움도 나의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고찰 후에 얻어지는 게 아니라서, 그냥 혼자 그렇게 느꼈던 거 같다. 깨달음 후에도, 가끔 외롭다. 이 감정은 예상치 못했던 시간에 나를 훅 치고 들어와서 어느 정도의 쓸쓸함..
휴직 기간이 끝나갈 때쯤, 나는 우울했다. 그 긴 시간동안 별로 한 게 없는 것 같아서. 집안 정리도 하고, 아티클도 몇 개 쓰고, 뭔가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남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없어서.게다가 몸은 아파서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컨디션은 난조. 엉엉. 이런 게 어디있어, 내 휴직 물려줘- 이런 심정으로 매일 우울했다.그런데, 핸폰 사진 정리를 간만에 하고 보니, 지난 늦여름부터의 시간들이 되짚어진다.매일 아이 등원 시키고, 강의하러 서울에 왔다갔다 하고, 어린이집 각종 일들 쫓아다니고, 연구 면담도 다니고.흐아, 나 열심히 살았구나, 이제야 알겠다. 매일매일 정해진 일들, 재미있겠다 생각했던 일들을 꾸준히 열심히 하며 살았구나.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이제야 읽는다. 어제와 오늘에 걸쳐 머..
새벽 세시가 넘어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아침 여덟시 반쯤.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일어나 나갈 준비 중이었다. 입고 자던 옷에 양말 신고 코트만 걸친 채 밖으로 나갔다. 전날 종일 흐리고 추웠는데, 간밤에 하늘이 맑아졌는지, 아주 밝고 찬 아침이었다. 아직 나뭇잎에 서리가 내려앉아 있는 아침. 아무도 없는 숲을 혼자 걸었다. 바람이 잠잠해 나무들은 가만히 서있고 작은 새들이 제각각의 소리를 내며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니고 앉아있고. 잎을 다 떨어트리고 벗은 채로 서있는 나무들도 울창하다 느껴질 정도로 키가 크은 나무들. 아침 산책 하길 잘했다, 너무너무 좋다, 이런 게 충만한 즐거움이지, 싶었던 시간. 지난 밤, 사람들과 섞여 앉아 술을 나눠마시고 열을 다해 나누었던 이야기들 속에 있었던 나는..
간밤에 잠자리에 누워 '이야기(잠들기 전에 반드시 해줘야 하는)'를 해달라는 아이에게 루시드폴의 동화 '푸른 연꽃'의 일부를 이야기해줬다. 버섯을 따러 깊은 숲에 간 아이가 길을 잃고, 올무에 다리를 다친 너구리를 구해준 후, 너구리의 도움으로 귀가한 이야기. 결말을 듣고 아이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나도 아이따라 잠들었다. 사실 '푸른 연꽃'의 결말은 반대다.아이는 길을 잃고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어스름 해가 질 무렵, 그 결말을 읽고서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아이가 겪은 모험은 실은 하늘나라로 가는 길에 이루어진 것들이었다.나는 왠일인지 아이가 당연히 집으로 살아돌아갈 줄 알았다.당연히 일어나야할 일이 일어나지 않은 황망함. 이 세상을 떠난 모든 사람들이 별이나 꽃이 되듯, 아이는 집 마당 우..
1. 어제 아이가 문득 말했다."물이랑 물고기가 있는 것 빼고는 땅이나 바다나 똑같애!""응, 그러네. 땅에서도 풀이 나듯이 바다에서도 풀이 나지. 그치."이렇게 대답해 주고 난 후, 혼자 웃었다.사물들 간의 비슷함과 다름을 생각해보는 나이가 됐구나. 많이 컸다. 2.아이와 둘이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봤다.간만의 영화, 재미있었다. 스토리와 그림과 음악을 동시에 즐기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라니.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감각 하나가 깨어나는 기분.근데 소피, 너무 진부한 여성 캐릭터 아닌가. 그러면서도 나도 모르게 좀 감동.모성 이데올로기에 잔뜩 물들어있는 요즘의 나.ㅎ 3.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는 참 좋음.소피랑 하울이랑 하늘을 같이 날 때마다 나오던 곡. 제목도 "인생의 회전목마"란다.ㅎ..
엄청 길 거라 생각했던 휴직 기간이 드디어 끝났다. 어젯밤엔 아이를 재우다가 일찍 잠이 들었는데, 11시 반쯤 깨서 1시에 다시 잠들고, 그리고 6시 반에 일어났다.집은 엉망진창이고 밥은 없고 몸도 찌부등. 늦지 않고 출근하느라 아침 시간이 전쟁 같았다. 오랫만에 책상 앞에 앉아있으니 모든 것이 어색하다. (방이 없어서 ㅂ팀장님 방에 당분간 더부살이를 해야하는데, 넓지 않은 방에 둘이 있으니 더 어색하다.)컴퓨터 앞에 이렇게 오래 앉아있어보는 게 얼마만인지. 집에 있을 땐, 엉거주춤이긴 해도, 확실히 일로부터 멀어져 있기는 했던 거 같다. 간만에 일하러 나오니, 일은 없어도 피곤하다.사람들 만나고 일터에 앉아있으니 그것 자체로 긴장하고 있는 거지 뭐.오늘은 하필 날씨도 참 좋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이..
밤과 낮을 쉬지 않고 운항하는 어머니 대지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다른 별에는 없는 온갖 거름을 지닌 부드러운 흙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해를 향하고 서서 빛을 변화시키는 이파리들과 머리카락처럼 섬세한 뿌리를 지닌 식물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들은 비바람 속에 묵묵히 서서 작은 열매들을 매달고 물결처럼 춤을 춥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하늘을 쏘는 칼새와 새벽의 말없는 올빼미의 날개를 지탱해주는 공기에게 고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우리 노래의 호흡이 되어주고 맑은 정신을 가져다주는 바람에게.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우리의 형제 자매인 야생동물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자연의 비밀과 자유와 여러 길들을 보여주고 그들의 젖을 우리에..
오랫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 오늘은 왠일인지 일기가 쓰고 싶어졌다. 마지막으로 블로그에 글을 남긴 게 8월 30일이구나. 여름의 끝.저 때 즈음부터 두드러기가 심각해졌고, 자책과 후회의 나날들이 시작된 거 같다.나는 왜 휴직 기간을 늘 바쁘게 보냈을까, 혹은 휴직 기간동안 나는 대체 뭘 했던 걸까.가만 보면 전혀 다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대며 또 좀 나를 볶아댄 거 같다.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이젠 이 가을도 가려는 계절.위 질문들을 더이상 하지 않는 것만으로, 지금 좋으네. 간만에 이백배를 했다. 원래는 삼백배를 하려고 했는데 다 못했다. 그래도 가볍다. 이번주 화요일에 복직을 하고 병가를 냈다, 한 달.휴직 이후, 아니 아이를 낳은 이후, 처음으로 불안을 느끼는 나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훌쩍 버스를 타고 서울에 왔다. 여름 내 머리카락이 많이 자라서 좀 다듬고 염색도 하고 싶어서. 머리 하러 가기 전에 들른 까페에서 마시는 커피맛 참 좋다. 생각해보니 여긴 ㅇㅊ랑 종종 오던 까페. 이 동네에 커피 마실 곳이 없었던 시절 거의 처음 생긴 곳. 여기서 둘이 담배도 피고(그 땐 까페에서 담배도 폈구나!ㅋ) 생일 선물도 주고받고 수다도 한참 떨곤 했는데. 시간이 훌쩍 어디로 갔나 싶으네. 복직 전에 즐겨야지, 오전 커피의 맛. 꿀같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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