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라 좋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사람들이 축하를 전해오고 먼 데 살던 벗들이 소식을 전한다. 식구들의 축하는 아랫배를 든든하게 만들어준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 아참, 아이가 오랫만에 등원하는 덕에 휴가 같은 하루이긴 했다. 낮잠도 삼십분 쯤 자고 커피 마시며 인터넷 서핑도 하고. 날도 뜨겁지만은 않아 앞 뒤 베란다 문을 열어두고 그 중간에 앉아있으니 바람이 나를 지나가는 온도가 딱 좋다. 6월은 이렇게 좋은 계절이었지, 기억해본다. 새벽에 일어나 미역국을 끓여놓고 나간 Y. 냄비 뚜껑에 포스트 잇 두개를 이어 붙여 생일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 (비록 어젯밤 쇠고기와 미역 위치를 알려주고 조리법을 가르쳐주긴 했지만;;) 기쁘고 고맙다. 아이에게 오늘 무슨 날이지? 하니 엄마 생일! 한다. 생..
연휴 내내 질질 짰다. 여러 번에 걸쳐 그동안의 외로움과 우울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그 때마다 눈물이 나왔다. 외롭고 우울했던 순간의 나를 연민하는 눈물인지, 그간 울지않고 눌러왔던 것들이 물길을 발견하고 새어나온 건지. 이야기를 하다가 울음이 삐져나와 꺽꺽 질질 우는 나를 두어번 지켜 본 아이는 어쩔 줄 몰라하며 제 손에 있던 장난감을 나한테 막 줬다. 그리고 나를 살핀다. 엄마가 울어대니 아이가 놀라는구나. 엄마는 울보라서 원래 잘 운다고 하니 좀 안심한다. 종종 눈물을 보여줘야겠어.ㅎ 좀 울고 나니 개운하다. 엉엉 운 건 아니라도 몇 번 감정들이 떠밀려나갔나보다. 울 만큼 힘든 일은 없다,가 아니라 울음을 심각하게 여길 만큼 힘든 일이 심각한 건 아니다,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외롭고 우울하고 질질 ..
애초의 계획은 이런 거였다: 커피를 내려 도서관에 가서 반납할 책을 마저 읽고 노트북을 켠 뒤, 앞으로의 5개월 혹은 발등에 떨어진, 해야할 일들을 정리해보자. 그 후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한 가지 정도 해야할 일을 격파. 이렇게 하고 나면 뭔가 심리적인 안정이 올 거 같았다. 그런데 현실은 이러했다: 아침에 아이가 늦게 일어나고, 동영상을 더 보겠다고 땡깡을 부린 후(아침에 일어나면 5분짜리 뽀로로 에피소드 2개를 본다;;) 등원 시간에 늦어 헐레벌떡 버스를 타면서 커피를 내리지 못했고, 아이 기침약도 못 챙겼다. 가방엔 노트북과 도서관에 반납할 책만 들어갔다. 아이 등원 후 잠시 어떡하지, 멈칫했다. 어제 등원 후 파장동을 헤매고 다니다 발견한 (실은 이전부터 거기 있던 걸 알고는 있었던) 까페에..
낮에 민속촌에서 30분 짜리 농악 공연을 봤다. 42년생 할아버지 상모가 이끄는 농악대의 연주와 공연은 짧았지만 화려하고 알찼다. 간만에 실황 공연을 듣고 보는 나는 신이 나서 박수치고 소리지르고 정신없었다.ㅋ 공연 내내 농악대 연주자들의 어깨와 얼굴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태평소 연주를 제외하곤 모두 남자였는데 리듬에 맞춰 들썩이는 그들의 어깨가 인상적이었다. 소위 남성적이라 여겨지는, 강하고 절도 있는 움직임이 아니라 부드럽고 작은 움직임들. 간드러진다고 할까, 섬세하다고 할까. 그 어깨들이 그리는 선의 느낌이 불안하고 비어있어서 매력적이었다. 공연을 하는 그들의 표정도 인상적이었다. 리듬에 젖어있는 듯 하면서도 관객을 의식하고 웃으면서도 괴로운 듯 한 얼굴. 약간은 초연한 듯 먼 곳을 응시하는 눈빛..
1. 요즘은 내가 밥할 때 아이가 혼자서 제법 잘논다.(물론 엄마엄마엄마엄마 백번 넘게 부르긴 하지만;;;) 밥 하다가 돌아보니 저러고 있다. 웃겨서 사진 한 장. 거실 장난감 바구니에 있던 산타 모자를 찾아쓰고, 부엌 옆 베란다에서 쓰레기봉투를 하나 집어 와서는, 거기다 아파트 벼룩시장에서 천오백원 주고 산 장난감 버스를 넣었다. 그리곤 산타 할아버지 선물 배달 중이래.ㅋ 그러고보니 빨노파, 삼원색이네. 지금 이 시절이 아니면 나오기 힘든 장면. 이렇게 나의 일상을 채워주는 작품 같은 장면들.ㅋㅋㅋ 2. 그제밤인가, 잠자리에 둘이 누워서 책을 보려다가, 아이 얼굴에서 문득 우리 엄마 표정이 지나가는 것 같아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버려서 보고 싶어도 보질 못하는데, ..
간밤 잠들기 전 아이가 누운 채로 내 목을 감싸안더니 "오늘 하루도 고마워" 했다. 그건 내가 아이에게 종종 하는 밤인사다. "오늘 하루 잘 놀아줘서 건강하게 지내줘서 고마워." 잠자리에 누워 하루를 생각해보면 아이의 존재 자체로 참 고마워서. 어젯밤엔 그 인사를 까먹고 자려했는데 아이가 해준다. 물론 내 흉내를 낸 거겠지만 아이가 말한 그 문장이 마음을 뜨겁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고마운 존재가 된다는 거 참 감동적인 일이구나. 고마워. 이 말을 많이 많이 해야지. 고마워. 고마워.
다음주 월요일, 아이가 공동육아 어린이집으로 첫 등원을 한다. 날짜가 다가오고 있을 땐 적응 잘할까 싶어 아이 걱정이 많았는데 가까이 닥치니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두렵다. 좀 무모하기도 하고 어떤 일은 별로 떨지 않고 혼자서도 잘하는 편이라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은 아닌 듯. 아이를 돌보며 부딛히는 새로운 일들 앞에서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나를 본다. 아이를 처음으로 아기띠로 안아 동네 까페에 갔던 날, 아이랑 둘이서 기차타고 대구에 갔던 날, 아픈 아이와 병원까지 혼자 갔던 날... 그 처음 순간들에 내가 얼마나 긴장하고 불안해했는지 아마 아이가 가장 잘 알 꺼다. 내게 온전히 의존하는 존재를 데리고 혼자서 낯선 상황에 처하거나 그 존재에게 중요한 어떤 판단을 나 스스로 내려야할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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