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은 날이 풀렸고 맑았고 게다가 미세먼지도 없었다. M선생님과 동네 까페에 가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점심 시간 그렇게 여유있게 밥 먹고 걸을 수 있는 게 오랫만이라 참 좋았다. 일터로 돌아오기 직전 나무가 많은 집 마당에서 새들이 엄청 울어댔는데 그 소리를 좇아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던 그 낮의 시간이 포근했다. 통통한 참새들이 어딘가 한 방향을 향해 앉아서 지독히도 울었는데 소리가 경쾌해서 심각하지 않고 웃겨보였다. 덕분에 내 마음도 가벼워지고. 아이가 매일 자란다. 표정이 다양해지고 말도 너무 잘 한다. 많이 까불고 마음도 깊어졌다.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엄마를 제일 필요로 하고 좋아하는 아이.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주고 싶다. 그게 나의 평화인 것 같다.
간밤 꿈에 엄마가 나왔는데 엄마집이었고 말끔한 정장에 세수를 하고 블라우스를 입고계셨다. 이밤에 어딜 가는 거 같은 차림새. 엄마한테 뭔소리냐고 하룻밤 주무시고 가라하니까 그러겠단다. 이모가 엄마 장농에서 이불 한채 꺼내주셔서 그걸 침대가 아니라 바닥에 엄마랑 둘이 잘 요량으로 깔고 있다가 잠에서 깼다. 엄마. 보고싶네. 같이 이불 깔고 하룻밤 잘 수 있었는데 아쉽네. 그러고보니 엄마- 나 요즘 이렇게 살고 있소~ 하고 이야기한지 오래 됐다. 사는 거에 바쁘고 지쳐서 어찌 살아가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살고있네. 연구소 취직해서 보고서 만들고 아이 키우느라 종일 시간에 쫓겨서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뭘하며 사는지 거리를 두고 바라본지 오래 되었네. 날이 춥다. 어느새 한 해의 끝. 나는 어디에서 무얼 ..
1. 어젯밤, 퇴근하고 강의듣고 늦게 집에 들어갔더니 아이는 다 씻고 머리카락을 말리는 중이었다. 나를 보면서 아이 눈이 반달 모양이 돼서 웃는다. 머리 감고 이제 말리는 중이야, 밥은 다 먹었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아이의 얼굴에 피로감과 안도감이 맺힌다. 잠자리에 누워 아이가 나에게 말한다. 엄마가 오니깐 좋아. 응, 엄마도 너 보니깐 좋다. 히히히히. 둘이 어둠 속에서 눈 맞추고 웃는다. 원고 마감에 쫓겨 종일 불안하고 초조했는데, 그 와중에도 아이 생각이 많이 났다. 아이에게 내가 필요한 때인데, 바빠서 그 필요를 못 채워주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 그런데 밤에 아이와 눈 맞추며 웃고 아이 몸을 쓰다듬으면서 알았다.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한 게 아니라, 내가 아이를 필요로 했다는 걸. 나는 아이..
새롭게 시작하는 연구의 계획서 작성을 마무리하고 버스로 두 정거장쯤 떨어진 건물에 있는 안과에 다녀왔다.늦은 오후지만 여전히 더운 날 차도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오는 길,오직 그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걸었다. 점심시간에 잠시 수다를 떨다가 N은 나에게 "희생하지 마세요" 했다.그녀의 눈에는 연구도 육아도 (너무) 열심히 하는 듯 보이는 내가 안쓰러웠던 거 같다.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겠어요, 하고 웃었는데. 그 말이 마음에 남았나보다.그 더운 길 위를 걷다가 문득, 그럼 열심히 하지 않아야겠다, 마음 먹는 순간두려워졌다. 엄마에게,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나는 "잘하는 사람",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재미있는 사람, 예쁜 사람, 마음이 따뜻한 사람, 유쾌한 사람이 아니라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
엄마를 기리는 일을 제대로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동생이나 나나 아이 키우며 먹고 사느라, 그리고 떨어져 살고 있으니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매년 기일은 꼭 챙기기. 그리고 엄마 생신 즈음에 산소에 찾아가기. 요거 두 가지는 동생과 내가 만들어 지키고 있는 규칙이다. 올해 엄마 생신은 지난 금요일(3/18)이었다. 그래서 주말엔 동생네와 이모를 만나 엄마 산소에 갔다. 아침부터 기차타고 수원역에서 황간역까지 가서 동생과 이모를 만나 엄마를 만나고 다같이 대구 동생네 가서 하룻밤 같이 지내다 어제 낮에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뼛가루가 담긴 항아리는 찾아갈 때마다 그 자리에 있다. 그 앞에서 우리는 과일과 오징어, 술을 간소하게 차린 후 절을 한다. 이모는 여전히 엄마 앞에서 절을 할 때마다 어깨..
아침에 일터의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가 나고 답답했다.그가 자신은 옳은데 그것을 왜 믿지 않냐고 물었을 때 나는 여전히 그를 믿지 않았다.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나는 그가 스스로 옳고 정의롭다는 사실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게 싫어서 투덜댔다. 오후에 내 연구실에 들른 그는 손에 딸기 박스 하나를 들고 있었다.손님이 사온 거라며, 오늘 집에 가서 먹으란다.그리고 그냥 웃는다. 나는 그가 스스로 옳음을 주장하며 고집피운다고 생각했는데그는 딸기 박스 하나로 마음을 굽힌다.나는 여전히 그가 고집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엔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꽁꽁 얼려놓고 있었는데. 날이 좋다.요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잠을 자는 것과 나무들 많은 곳에서 쉬는 것.주말에 그걸 좀 하고 돌아와서 나도 곰곰히 내 마음 굽히..
일터 주최 웤샵에 왔다가 아침 온천을 했다. 뜨거운 물 속으로 피곤한 내 몸이 담길 때의 쾌감. 이걸 놓치지 않고 누려서 참 다행이었던 아침. 설악산을 바라보며 뜨거운 온천탕 속에 앉아있자니 저절로 명상이 됐다. 매일 아침 출근 전까지의 쫓기는 시간. 아이 어린이집 A와의 관계. 아버지와 동생을 바라보는 내 시선. 오랫동안 일터나 학교에서의 나의 발랄함은 집에서의 내 우울을 감추는 도구라고 여겨왔다. 그래서 집밖에서의 내 웃음과 기쁨이 뭔가 가식은 아닌가 의심했고. 오늘 문득 생각해보니 나는 밝고 우울하고 발랄하고 침울한 사람이었다. 어떤 장면의 나도 그냥 나. 일터로 돌아가는 버스 안. 별일 없어도 피로가 쌓이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그동안 피로를 장애로 느껴왔는데 오늘은 왠일인지 대범해지는 기분이다. 흣.
(이상하게 루시드 폴의 일기를 보면 나도 일기를 쓰고 싶어진다.) 주말부터 어제까진 완전 봄날씨였는데, 오늘은 흐리고 차다. 그래도 한겨울에 비하면 푹한 날인데, 기대치 때문인지 겨울처럼 춥게 느껴진다.아침부터 두통에 피로에 무기력에... 어, 왜 이렇게 몸이 힘들지, 했는데 어제 저녁에 터전에서 일이 있어 아이랑 저녁 9시가 돼서야 귀가했구나.오늘 아침엔 조금 일찍 일어나 미역 무침도 하고 도루묵 손질도 하고 출근했으니 피곤할 만 하다.왜 피곤한 건지 원인을 모를 땐 괜히 불안했는데, 어제 저녁 일정을 떠올리니 마음이 편해졌다.점심을 먹고 회의를 하나 하고, 여직원 휴게실에 난방을 한껏 하고 30분쯤 누워잤다. 깊은 잠은 아니래도 머리와 어깨가 한결 가벼운 느낌. 말을 줄이고 더 많이 걸어야겠다는 생각..
- Total
- Today
- Yesterday
- 박완서
- 여행
- UofT
- OISE
- 논문
- 봄
- 졸업
- 기억
- Kensington Market
- 영어
- 선련사
- 일상
- 아침
- 인터뷰
- 봄비
- 감기
- 일다
- 맥주
- 토론토의 겨울
- 토론토
- 교육사회학
- 교육대학교
- 열등감
- 인도
- 가을
- 켄싱턴 마켓
- 엄마
- Toronto
- CWSE
- 일기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