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사실 무미건조하다. 흰색 종이에 검정색 잉크를 일정한 모양으로 입혀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상상력이 필요했다. 숫자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는 일이다. 4명의 기자들은 "오직 증인으로서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WHO 보고서에 언급된 나라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곳에서 죽어가는 이들과 독자들의 '눈맞춤(eye contact)'을 주선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이 쓴 기사에는 출산 과정이나 사소한 질병으로도 숨져가는 캄보디아, 말라위, 러시아, 과테말라, 잠비아 등지의 여성과 어린이들이 그려진다. 허름한 병원, 도착하자마자 숨진 에이즈 환자들의 주검과 배우자들을 잃은 남녀들의 울부짖음으로 가득한 병원의 모습이 그려진다. 기자가 현지 병원에서 만났던 어린이가 끝내 숨졌다는 소식은 보스턴에..
내일 오후 1시에 짧은 글 하나를 발표해야하는데, 자료만 정리해놓고 아직 시작도 안하고 있다. 이번 주에 아이디어가 좀 발전하긴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들은 혼자서 그 모양을 바꾸고, 글을 쓰기 전에 예상했던 결론은 비껴나가기 마련이다. 요는, 글을 써봐야지 어느 방향으로 굴러 어디에 다다를지 알게된다는 것, 고로 글을 막상 쓰는 과정이 본격적인 작업이라는 것. 발표 전까지 16시간이 남았다. 저녁 약속에 차까지 한 잔 마시고 이 늦은 시각에 학교에 '기어올라온' 것은 이런 절박한 사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연구실에 왔더니, 같은 연구실 쓰는 한 선생님이 연구실 안에서 전화를 받고 있다. 전화기 저편의 사람은 이 선생님의 선배인 듯 한데, 이 사람이 쓰고 논문에 대해 세세히 ..
공부하기 좋아하는 쌍둥이자리는 논리적이긴 하지만 통찰적이지 못하다. 어릴 때 이런 저런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아오곤 하던 내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는 것은 (나와 나의 지인들에게) 꽤 당연하게 느껴졌다. 돈만 생기면 시내 서점에 가서 한두시간 고르고 골라 소설책을 사다보았던, 가난한 아버지가 고물상에서 헐값에 사오신 세로로 된 세계명작소설을 읽고 또 읽던 내가 문학도가 된다는 건 정해진 수순 같았다. 그런데 막상 대학와서 (운동권 선배들이 권유해서) 읽은 사회과학 서적들은 너무 매력적이었다. 논리적이고 논리적인 그 세계. 국어국문학과를 '겨우' 졸업하고 교육학과에 진학하던 날, 엄마는 내가 문학도이기를 포기한다는 것이 못내 아쉬우면서도 교육학이 여자에겐 어울리는 학문이라 여기며 진학을 축하해주셨던 ..
그럴려고 했던 건 아닌데, 돌아보니 논문에 손을 뗀 지 어언 서너달이 흘렀더라. 논문작업 다시 해야지, 해야지 생각만 하다가, 3월도 중순에 접어든 어제 오후가 되어서야, 간만에, 논문 폴더를 열고 파일을 이것저것 열어둔 다음, 몇 달 전 내가 썼던 글들, 메모들을 들여다보았다. 하하, 익숙하면서도 낯선 문장들. 간밤엔 잠을 설치고, 오전에도 일이 있어서,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니 잠이 쏟아졌다. 버스타면 오분 안에 도착하는 집에 가서 낮잠 담요를 덮고 폭, 한 숨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냥 연구실 책상 앞에 앉았다. 노트북도 켜고 커피도 한잔 끓여 놓고, 딱, 앉았다. 그런데 잠이 쏟아진다, 나도 모르게 책상에 엎드려 삼십분을 내리잤다. 그러고 보니, 간만에 논문을 들여다봤을 뿐 아..
잘 다녀왔다, 이 주간 한번도 안 아팠고, 백번쯤 환하게 웃었던 것 같다, 좋은 친구들도 사귀었고, 먹는 건 뭐든 꿀맛이었고, 밤이 되면 피곤에 쩔어 곯아떨어질 수 있는 날들이었다, 좋았다. 그래도, 내내 나를 괴롭히던 건, 끔찍하게도, 엄마의 부재였다, 그 먼 곳에서 문득문득 떠오르던 그 현실 감각은, 나를 갑자기 우울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했고, 까닭없이 눈물이 쏟아져나오게도 했다. 아프긴해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라면, 좋은 연습을 했다 쳐본다. 여행을 다녀오면서, 내 마음 속에 한 가지 그림이 생겼는데, 한 오년 뒤, 조금 자란 딸을 데리고 그곳으로 다시 가는 그런. 힌디를 배우고 불가촉천민 여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아줌마가 된 나. 학위 논문 쯤은 먼지 가득 쌓인 책장 어디쯤 꽂아두고, 온통 ..
감기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음에도, 저녁 약속에 나갔다, 이번 학기 수강생들과의 수업 뒷풀이. 나 때문에 이리저리 날을 피해 잡은 약속이라 와병 중이라고 안나가는 건 너무 미안한 일이 될 것 같아서. 그리고 무엇보다 학생들이 보고싶었다, 이번 학기 학생들에겐 이상하게 애착이 간다. 오늘은 왠일인지 술이 홀짝홀짝 잘도 넘어가고 안주도 맛났다. 대화의 주제가 여기저기로 넘어가면서... 수다를 한참 떨었더니 자정이 넘은 시각이 되었다. 술값을 치르고 지하 술집에서 거리로 나오니 온통 눈에 덮힌 거리, 가로등에 반짝이는 함박눈이 막 날린다. 히히, 눈오니 좋다, 했더니, 선생님 아직 어리시군요!...하는 학생들. 눈 한번 흘겨주고, 안녕~ 했다.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눈 위를 구르는 자동차 바퀴의 조심스러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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