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동생이랑 싸웠거나, 엄마한테 혼나거나, 괜히 외롭고, 또 슬플 때, 나는 종종 일기를 썼다. 뭐라고 뭐라고 뭐라고 실컷 쓰고 나면, 그러면서, 좀 울고 나면, 마음이 왠지 가벼워져서, 그리고 우느라 힘을 다써서, 일기장을 어딘가 치워놓고, 한잠, 푹 자곤 했다. 자고 일어나면, 다시 세상은 말끔해지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웃었다. 몇 달동안 술을 한방울도 안마셨다. 전혀 마시고 싶은 생각도 안들던 그 몇달. 그런데 이틀째 밤엔, 누구와 같이 있던 자리였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맥주 한 잔을 받아마셨다. 안마시기가 힘들더라. 그날밤 소주도 한잔 마셨다. 그리고 대구에 있던 그 며칠 동안의 밤엔 매일 맥주 다섯잔 정도를 마시고 잤다. 잠이 안오는데 혼자 말똥거리며 또 눕게 될까봐 겁이 나서. ..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여러 번, 당신은 해지는 시간이 싫다고 말하곤 했다. 해지는 시간의 노을과 낮은 해그림자가 서럽고 슬퍼서 싫다고. 그 말을 할 때의 엄마 표정이 너무 처연해서, 나는 엄마가 그런 말을 하는 게 두려웠다. 어느 초저녁, 그 서럽고 슬픈 감정에 이끌려 엄마가 멀리 가버릴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해지는 시간에 엄마랑 같이 있으면 초조한 기분이 들곤 했다. 스무 살 때부터 엄마랑 떨어져 살면서도 해지는 시간이 되면 가끔 엄마의 그 말이 생각났다. 물끄러미 서쪽 하늘을 바라보면서 어린 시절의 그 두려움을 반추하던 시간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해지는 시간을 느긋하게 느끼게 되었다. 해질 무렵의 빛과 바람은 영어 단어 soothe를 떠올리게 한다. 낮동안 치열하게 뛰어 놀다지쳐 이제 ..
지금은 날짜도 가물가물 하지만, 나의 초경은 초여름 즈음이었다. 밤새 몸에 열이 후끈거려 잠을 설치고, 새벽에 잠을 깨 화장실에 갔는데 팬티가 빨갛게 젖어있었다. 아, 이게 생리라는 거구나, 깨닫기도 전에, 덜컥 겁이 났었나, 아님 안도의 느낌이 들었던가. 부엌에서 아침쌀을 씻으려는 엄마에게 가서, 초경을 알리고 면으로 된, 엄마가 미리 사다가 삶아빨아 잘 개켜둔 생리대를 내 손에 받았던 기억. 나는 워낙 불규칙적이어서, 몇 일이면, 딱, 생리 시작한다고 셈을 하는 친구들이 신기했다. 그래서 생리 첫날이 언제 들이닥칠까, 어릴 땐 늘 불안했다. 지금은 이제 그 들쑥날쑥한 날짜도 익숙해져서 몸이 어떻게 변하나 잘 지켜보다 생리 첫날을 미리 예감하고는 한다. 몸이 열이 좀 나고 졸음이 막 쏟아지고 괜스럽게 ..
오전에 밥 지어먹고 산에 잠깐 갔다가 점심 약속이 있어 오래오래 식사를 하고 간만에 동네 목욕탕에 들렀다가... 등교하고보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네. 허허. ------ 나는 대체로 내가 무모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좀처럼 오래 머리 굴리지 않고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봄에 제주도 자전거 하이킹을 했었는데, 그 때 동행했던 친구가 그랬다, 너처럼 자전거도 제대로 못타는 애가 어떻게 그렇게 용감하게 하이킹을 할 작정을 했냐고. 아닌 게 아니라 자전거 라이딩 훈련이 충분하지 않았던 나는 다리가 끊어질 듯하고 똥꼬 부분이 작살날 것 같은 고통에 못이겨 이틀도 못돼서 하이킹을 중단해야 했다.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학부 때 운동권 선배들을 따라다닐 때도, 덜컥 연애를 시작..
누구나 행복해지고자 합니다. 연애하고 결혼하며, 자식을 낳고, 돈을 벌고 명예를 추구하며, 지식을 습득하고, 일을 하는 것도 다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행복하고자 하나 오히려 자신의 삶 속에서 슬픔, 분노, 무기력, 불안, 짜증, 답답함, 애통함 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롭고 힘들어 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삶이 괴로운 이유는 이러한 상황들과 함께 살아야 하며 이것들로부터 도망칠 수 없기 때문이며 더 깊은 이유는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을 근본적으로 모르기 때문이지요. 지식의 있고 없음, 직위의 높고 낮음, 재산의 많고 적음, 성격의 맞음과 맞지 않음 등에 따라 '마음'은 끝없이 희비가 교차합니다. 마음을 나누어 봐도 시원하지 않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나눔의 장은 이와 같은 상대성 ..
늦지 않은 밤, 세미나 뒷풀이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마을 버스를 탔다. 종일 이것저것 하느라 오후부터 피곤해진 몸과 세미나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머릿속, 방금 전까지 세미나 멤버들이랑 나눴던 대화의 파편들이 드문드문 기억나는 귀가 시간. 집으로 돌아가면, 넓지는 않지만 내가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도착해 대충 손을 닦고 티비를 켜면 며칠 전부터 새로 관심이 생긴 드라마가 시작할테다. 검은 밤하늘과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뭇잎들이 가득한 가로수, 그리 밝지 않아 좋은 가로등 불빛. 그 길을 지나 집으로 가는 마을 버스 속에서, 어느 순간, 나는, 그 순간이 문득 낯설어졌다. 내가 기억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예상하는, 그 순간의 시공간이 낯설어진 거다. 그리고 퍼뜩, 인터넷 뉴스로 전해들은,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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