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간은 참 더디가는데, 또 어떤 시간은 참 빠르다. 4월이 어느새 반이나 흘러가버렸나, 오늘 문득 망연자실. 어제 오후엔 동네를 좀 걸었다. 요가를 하지 않는 요일엔 산책을! 벚꽃이 핀 길을 걸어 약국에 가서 철분제 한 통 사고, 건너편 빵집에서 바게트 한 개를 산 후, 제법 떨어져있는 동네 화원까지 가서 흙을 한 봉지 샀다. 늦은 오후, 바람이 조금 차가워졌지만 마루 창을 열어두고 신문지를 넓게 깐 다음, 한 시간 남짓 분갈이를 했다. 좁은 화분에 뿌리가 엉킨 채 겨우 살아있었던 스타티필룸을 두 개의 화분에 옮겨심고, 얼마 전 ㅈㅇ가 선물한 작은 꽃화분을 좀더 넓은 화분에 옮겼다. 겨우내 잘 자라지 않던 군자란에 흙을 좀 더 덮어주고 나니, 8리터 짜리 흙 한 봉지가 바닥 났다. 다음 봄엔 이 식..
어젯밤 문득, 2010년 봄, 이십여일쯤, 벤쿠버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시장에 가서 연어와 아스파라거스, 새우를 사와서 오븐에 굽고, 싼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먹었던 소박한 저녁 시간. 저녁을 먹고 나면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하다가 한 두 편씩 보던 영화들. 늦은 아침을 먹고 천천히 시작하던 하루하루들. 때로 하릴 없이 보내던 오후 시간 그리고 종종 거닐었던 그 한가롭던 길들. 나름 바빴던 7개월의 토론토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돌아가기 전, 막간과도 같았던 벤쿠버에서의 시간은, 지금 서울에서 보내고 있는 이 시간들과는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구나. 기억해보니, 그 때의 나는 어디에서 살든 내가 원하는 속도로, 원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동안 논문과..
하이킥3 마지막 편을 봤다. 왠지 이 이야기가 김병욱 월드의 마지막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석과 하선은 다시 만나고, 지원은 학교를 나가고, 종석은 철이 들어버린다. 아마 계상이와 진희는 새로 시작된 삶을 잘 살아가겠지. 나머지 인물들도 서울 노량진 어느 평범한 집에서 변치 않는 그러나 늘 변하는 어떤 일상을 지내고 있을 듯. 그리고 이야기는 여기서 끝. 여운도 없이 끝나버린 이야기의 끝에 서서 마음이 조금, 허전하달까 황망하달까. 이야기의 힘을 주술처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출처: www.yelp.ca) 파란만장했던 토론토 시절(으힉 어느새 이년 전이고나). 그 때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사진 속 식당에서 먹었던 싸고 담백했던 중국음식들이다. (첫번째 사진은 식당 간판과 전경, 두번째 사진은 야채 볶음) 선련사(http://zenbuddhisttemple.org/)의 삼우스님 따라 한 번 간 이후, 저녁이나 점심 먹으러 몇 번 더 찾아갔었다. 휴일에도 부러 가서 먹은 적도, 문을 닫는 날이라 허탕친 적도 있었던 듯. 식당 이름은 Buddha's Vegetarian Foods. 주소는: 666 Dundas St W Toronto, ON M5T 1H9. 내가 제일 좋아했던 메뉴는 이푸 누들 어쩌구 였는데, 부드러운 면과 청경채, 버섯 등의 채소를 듬뿍..
_ 피곤해서 잠시 눈 붙이려고 누웠다가 이런 저런 생각들에 일어나 앉는다. 블로그를 열고 몇 자 써볼까, 간만에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 _ 점심 때 ㅅㄴ을 만나 오니기리와 나가사키 짬뽕을 나눠먹었다. 초가을 쯤 만나고 첨인가, 조금 더 고즈넉해진 느낌의 ㅅㄴ. 한 시간 남짓, 별 이야기 나눈 것 없는데, 헤어지고 생각해보니, 조금 위로를 받았다. 몰랐는데, 나도 외로웠던 걸까. 공감하고 자극을 주고받는 대화. 진짜 오랫만이라 뇌와 심장이 조금 새롭게 작동하고 있는 것 같은. _ 보통, 이렇게 묻는다: 나(우리)는 그녀(들)를 대변/번역할 수 있는가? 혹은 그녀(들)은 목소리를 가질 수 있는가? 오늘 문득 이 질문이 얼마나 (여성학)연구자중심적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노동자, 비정규직, 비혼모, ..
가끔, 뜬금없이 어떤 여행에서의 어떤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오늘은 이천구년 이월, 토론토에서 몬트리올로 이박삼일 떠났던 그 여행, 낯선 도시의 낯선 식당에서 프렌치 토스트를 먹었던 그 아침이 생각났다. 날은 여전히 겨울이었고, 전날 밤 늦게 도착해 맥주 마시고 자서 몸은 피곤했고, 다음주 수업 준비를 안해서 마음은 무거웠고, 그래도 햇살이 좋아서 조금 들떴던. 유스호스텔의 프런트 직원에게 '근처에 죽여주는 브런치 식당' 없냐고 물어봤더니 무심한 표정으로 알려준 Eggspectation. 별 기대없이 먹은 프렌치 토스트는, 투 썸즈 업. @.@ 천장이 높고 벽돌이 드러난 벽, 나무 의자들, 큰 창고 같은 느낌의 식당. 햇볕이 잘 드는 창가 자리에서 우선 커피 한 잔. 음식이 나왔을 땐 모양만 보고 별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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