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지는 걸 보고싶어서 저녁상 대충 치워놓고 나왔는데 오늘 저녁 하늘은 구름이 가득. 서쪽 하늘이 오렌지 빛으로 조금 물들고 구름이 천천히 흘러간다. 아파트 단지 안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고 스탠드 계단에 앉으니 아직 낮의 열기가 남아있네. 아버지가 가시고 나서 아쉬운 것은 한 번도 그의 마음을 찬찬히 물어본 적이 없다는 거. 둘이 마주 앉아 조용히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그보다 난 두려웠던 것 같다. 그가 이야기할 그의 마음이 나를 아프게 할까봐. 내가 바라던 사랑과 관심이 그의 마음에 한 톨도 없을까봐. 이제 그는 없고 난 영원히 그로부터 상처조차 받을 수 없다. 이젠 나에게 소중한 사람의 마음은 용기 내어 들어보려고 한다. 설사 그게 상처를 줄 말이라 해도 그걸 소화시켜 내 마음에..
오랫동안 내가 너무 보잘 것 없이 여겨져서 타인이 나를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해 줄 때, 혹은 보잘 것 없는 나도 괜찮다고 수용해줄 때, 비로소 안심이 되곤 했다. 나는 연구를 잘 못해도 괜찮은 나인가요. 나는 집안일을 잘 못해도 괜찮은 나인가요. 나는 성격이 모나도 괜찮은 나인가요. 그런데 저 질문에 대한 답이 부정형이 될까봐 두려워서 질문 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완전히 무너질 순간이 되어서야 묻곤 했던 저 문장들에 대해 다행히도 긍정 답을 많이 얻었다. 그게 힘이 되었을까. 이젠 조금은 거울처럼 나를 비춰주는 답이 없어도 많이 불안하지 않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가 아니라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되어서랄까. 그러고보면 나의 저 이상한 질문들에 예스,를 외쳐준 사람들이..
어제까지 앓다가, 오늘은 아침부터 샤워하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쇠고기 넣고 미역국도 끓인다. 베란다 창틀에 핀 채송화 사진도 찍고 써야할 원고의 기초 분석도 시작했다. 실은 오늘도 컨디션이 안좋지만 힘을 내어 회복의 단계로 들어가본다. 회복. 전의 상태로 돌이키거나 되찾는 것. 그렇다면 사실 회복이라는 건 불가능한 것 아닐까. 어떤 경험이 지나간 몸과 마음은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긍정 부정 여부를 떠나서. 그저 회복되었다고 믿을 뿐 실은 변화를 겪은 나는 그 변화 이전으로 못돌아간다. 그게 무엇이든 되찾을 수도 없다. 내가 겪고 지나온 것들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 걸까. 지독하게 앓고 난 내 몸은 더이상 이전의 내가 아닐텐데 그럼 난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걸까. 그런데 나는..
드디어.. 나도 확진이 되어 온몸이 흐물흐물 아프다. 아침 먹고 기력이 없어 한숨 잤는데 꿈에 엄마가 나왔다. 정확히는 엄마랑 통화를 했다. 엄마는 경상도 어디쯤 살고 나는 서울 어딘가 사는 듯 했는데 주말에 엄마랑 대전쯤에서 만나자고 했다. 별 재미없이 산다고 귀찮은 일들 밖엔 없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그게 좋은 거라 이야기했다. 큰 걱정없고 아프지 않은 삶. 크게 반갑게는 아니라도 주말 만남을 기대하는 듯 엄마 목소리가 밝아졌다. 거기 까지 말하고는 잠에서 깼다. 일어나서야 엄마는 돌아가셨지, 알아챈다. 눈물이 후두둑,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보고싶은 엄마.
나흘 전부터 아프기 시작한 아이는 금요일 밤 정점을 찍었고 그 후론 점점 나아지고 있다. 그날 밤엔 해열제가 안 들어서 다른 성분의 약을 한 번 더 먹이고 물수건으로 오래오래 몸을 닦아줬다. 열 때문에 온몸이 아프다던 아이는 찬 수건이 몸에 닿으니 편안해했다. 그렇게 여러 번 닦아주고 나니 열이 좀 내려 이내 잠이 들었다. 엄마는 나한테 코로나 옮을 수도 있는데 왜 내 옆에 와서 이렇게 나를 닦아주는 거야? 고열 때문에 눈까지 빨개진 아이가 내게 저렇게 물었을 때 내 대답은 당연했다. 니가 아픈데 엄마가 어떻게 안 보살피겠노. 설령 내가 전염된다고 해도 지금은 아픈 아이가 우선인 것. 그게 내 몸에 밴 엄마 노릇이다. 금토일 사흘동안 아홉 끼니를 해 먹이고 빨래 돌려 널고 베란다 화분 정리와 물청소를 했..
유난히 길었던 한 달. 아마 그 시간동안 내가 나를 많이 들여다봐서일 거라고 생각해본다. 엄청 울었고/울고 있고, 어느 때보다 혼자 많이 생각하고 말했던 것 같다. 여행도 다녔고 방학 중이었지만 일도 무진장 했네. 시간의 주름 사이사이로 많은 것들이 쌓이고 지나간 팔월이 끝나고 새로 맞은 구월. 뭔가 새 기운이 휘릭 생겨날 줄 알았는데 오늘 개강 첫주를 잘 마무리하고 집에 오니 아이는 열이 나고 나도 몸이 가라앉네. 역시 인생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과 줄기를 타고 흘러가는 것. 흐흐.
20분쯤 요가를 하고 나니 몸이 더워져, 잠깐 나가서 좀 걸었다. 다른 사람들이 잠들었을지도 모르니 최대한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숙소 불빛과 가로등이 있지만 밤의 숲은 어둡다. 서너 종류가 넘는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물이 흘러가는 소리도 제법 크다. 바람이 살랑이는 게 기분 좋아서 입고 나갔던 얇은 점퍼를 벗었다. 몸으로 밤 숲의 기운이 스며드는 것 같은. 가만히 눈 감고 숲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밤 하늘을 본다. 멀리 빛나는 별들. 나무 사이로 보이는, 분간하기 어려운 어두운 형체들. 조금 무섭기도, 조금 편안하기도. 그리고 밤 숲이 나를 안아주는 것 같은 느낌. 점심 먹고 들렀던 산골짜기 까페에서 만났던 여성 노인이 나에게 문득 물었던 그 문장이 생각난다. "여기까지 뭐하러 오셨어요?" 이 ..
오늘은 아이 학교 개학날. 이번 여름방학을 돌아보니 내겐 참 힘든 계절이었다. 많이 우울했고 더위 때문에 몸이 많이 힘들었고 많이많이 울었던. 그 와중에도 계절수업을 해내고 매일매일 아이 끼니를 열심히 챙겨먹였다. 찬이래 봤자 콩나물 무침이나 미역국, 호박전이나 카레라이스, 김칫국과 쇠고기국, 계란찜과 오이냉채 같은... 흔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었지만 언제나 정성 들여 만들어 먹이려 애썼다. 반찬을 만들고 상을 차리면서 머리로 하는 일에서 해방된 순간을 즐기기도 했고 손끝으로 완성되어 다시 몸으로 들어가는 음식 하고 먹기 과정을 처음으로 신기하다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담주면 나도 새학기를 시작하고 가을 내내 수업과 연구, 다른 과업들로 정신없을 것 같지만. 정성 다해 반찬 만들어 먹이고 소박한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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