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불린 미역과 국거리로 잘게 썰은 쇠고기를 냄비에 넣고 국간장과 참기름 조금씩 부어 달달달달 볶으면 미역국 만들기의 반은 끝난다. 미역과 고기가 반쯤 익었을 때 조금 넉넉히 물을 부어주고 팔팔 끓이다 간을 보고나면 미역국은 완성된다. 어제 잠을 잘 못자 오전 내내 피곤했는데. 점심으로 보글보글 끓여 국물이 잘 우러나온 미역국 한 그릇에 밥 말아 김치랑 먹고 나니 땀이 훅 나면서 배가 든든해지고 마음에도 배짱이 생긴 것 같다. 그러고보니 며칠만에 제대로 먹었다는 느낌. 대단하고 놀라운 미역국 한 그릇의 효용.
아무래도 오늘밤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기차표를 끊고 택시를 불러 역으로 향할 때만 해도 눈물이 나오진 않았던 것 같다. 기차역에 도착해 동생이랑 한 번 더 통화를 하고 플랫폼에 서서 기차를 기다리면서 참을 수 없이 울음이 터져 엉엉 울었다.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아마 있었다 해도 주저하지 않았을 거다. 그 밤 플랫폼에 서서 한참 흐느끼며 울었던 나는 두려웠던 것 같다. 아버지의 생명이 점점 꺼져가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가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무서웠다.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그에게 의지하며 살았던 적도, 그를 좋아했던 적도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도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스러져 사라진다는 것이 두려웠다. 마흔 일곱살에서 갑자기 일곱살 아이가 된 것처럼 그 상황이..
몸도 마음도 지쳐 떠난 여행. 그래도 위로받고 힘을 얻은 순간들이 있었다. 먹고 놀기만 한 이박삼일 동안에도 너무 피곤해서 힘들었는데.. 일정 끝무렵엔 신기하게도 내내 떠나지 않던 두통이 사라져있었다. 내 어린 시절을 공유하는 유일한 사람. 내가 경험한 아픔과 고통을 가장 유사하게 겪었을 인간. 그러면서도 나와 너무 다르고 완전히 별개인 존재. 동생이 잘 살아주어서 고맙고 앞으로도 내내 이렇게 잘 지내주길 기도하는 마음. 이렇게 멋진 곳으로 나와 함께 가주고 좋은 시간 함께 보내준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 간밤 잠들기 전, 지금 이대로 좋습니다, 하고 소리내어 기도했는데. 지금 이대로의 나를 온전히 안아주며 또 하루 시작.
내 상태가 별로 안좋다. 자주 우울하고 대부분의 일에 의욕이 없다. 해야할 일이 적지않은데 그 일들이 가벼이 되지 않는다. 쉬고 놀고 가만히 있고 싶은 시간들. 그제는 가까운 계곡에 가서 가재를 잡고 개구리를 구경했다. 밭에 가서 풀 뽑고 호박을 땄다. 그 때 신이 나고 웃음이 나왔다.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둥둥 뜨는 그 기분. 어젠 수영장 가서 6바퀴 반 헤엄쳤다. 물 속 깊이 들어갔다 표면으로 떠올랐다가 발장구 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팔을 허우적 대며 물에 떠있었다. 그 때 몸에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개운해졌다. 웃음도 슬쩍. 나에겐 좋은 바람이 불고 있다,는 문장을 자주 쓰던 사람이 있었는데. 오늘은 이 문장을 나도 빌려쓰고싶다. 하루하루 힘든 이 날들에도 사실은 나에게 좋은 바람이 불고 있다고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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