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생활 구십칠일째 _ 2010년 2월 23일 화요일 종일 피곤했고, 공부도 잘 안되고, 마음도 복잡했던 하루. 케빈이랑 짧게 몇 마디 나누다가, 우연히, 복잡한 내 마음의 실마리를 봐'버렸다.' 여기 와서 내가 너그러워진 부분과 내가 포기한 부분에 대해서. 그동안은 너그러워진 부분만 봐온 듯. 포기와 관용은 한 끗 차이지만, 분명히 다르다. 간단히만 쓰자면, 뭔가를 포기했다는 게 조금 괴롭다. 긴장하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것의 한 극단엔 냉소하고 포기하는 태도가 있는 듯. 그 중간 어디 즈음엔 스스로에게 너그러우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있을텐데. 어떻든 여기 토론토에서의 나는 being minority 의 경험을 고되게 하는 중. 이 고됨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자고. 오늘은..
토론토 생활 구십육일째 _ 2010년 2월 22일 월요일 어제, 봄날처럼 따뜻하더니, 오늘은 낮부터 눈이 펑펑 온다. 점심 때 운동하고 창이 큰 거스타인(Gerstein)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는데 책상 옆 창이 마치 영화관의 큰 스크린 같다, 영화 속에선 줄곧 눈이 내리고. 논문 작업은 내가 만든 미로 속에 내가 갖힌 기분이 드는 국면. 좀 꼬이고 너무 복잡해져 버린 생각의 지도 속에서 종일 헤맸다. 한 숨 자고 내일 아침이 되면 길이 좀 보이려나. 길찾기 훈련삼아, 당분간은 좁은 지도 속을 맴돌아도 괜찮을 것도 같고. 남동생의 아가(딸)이 오늘 나오기로 한 날인데, 아직 안나오고 있단다. 나랑 반대로, 마음이 무지 무던한 올케는 나올 때 되면 나오겠지 하고 편한 듯. 내가 이렇게 떨리고 두근대는데 동..
토론토 생활 구십오일째 _ 2010년 2월 21일 일요일 오늘은, 토론토 와서 가장 봄같은 날씨.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차지 않고, 게다가 일요일. 선련사 삼우스님과 산하법사님 초대로 점심 식사와 커피 한 잔까지 여유로운 낮시간 보냈다. 켄싱턴 마켓 근처의 채식 중국음식점 가서 점심 먹고 히피 분위기 까페 가서 커피 마시면서, 스님 이야기도 듣고 법사님 이야기도 듣고. 햇볕 기분좋게 쬐면서 간만에 일요일 기분 냈다. 스님 출가하신 이야기 듣다가 코끝이 좀 찡했고 (스님의 개인사가 마음 아파서) 40대 초반쯤 됐을까 산하법사님에게는 언니처럼 대하며 마음껏 까불었달까, 그 가벼운 마음이 좋았다. 오후엔 토론토 대학에서 제일 좋은 도서관인 거스타인(Gerstein)에 가서 논문 작업 좀 하다가 늦은 저녁에 ..
토론토 생활 구십시일째 _ 2010년 2월 20일 토요일 OISE에 와서 알게된 한국인 대학원생이 자기 친구 Christine을 소개하겠다고 메일로 얘기한 적이 있다. Christine도 OISE 대학원생이고, 여성주의와 성인교육 관련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는 거다. 아, 같은 페미니스트 교육연구자를 만나는구나, 싶어서 좋다고 대답하고 나서, 정작 그녀를 만났을 때, 나는 아- 하고 나 자신에게 놀랐다. 'Christine'이라는 이름, '여성주의', '대학원생'과 같은 말들의 조합으로 내가 떠올렸던 그녀의 이미지는, 백인-젊은-이쁜-비혼녀,의 이미지였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Christine은 백인이었지만 젊지 않았고 이쁘기보단 자애로운 분위기의 여자였다. 여자=젊은 여자, 외국인=백인 이라는 등..
토론토 생활 구십삼일째 _ 2010년 2월 19일 금요일 _ 이 스킨, 대충 고른 건데, 보면 볼 수록 마음에 든다. 옷이나 신발도 이런 경우가 있다. 며칠 걸려 고른 옷 중엔 잘 안입는 것들이 있기도 하고, 별 기대없이 후딱 사버린 걸 오래오래 마음에 들어하는 경우도 있고. 토론토 와서 사 신은 방한-방수-미끄럼방지 부츠도 십분 만에 구입한 건데 참 편하고 이뻐서 보면 볼 수록 마음에 든다. 의도한대로, 예상한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는 거, 어쩌면 이게 삶의 매력적인 부분인지도. _ 오늘 점심에, 바르셀로나에서 왔다는 Rita 와 두번째 식사를 함께 했다. 지난 번 만났을 때, 한국 음식 먹어봤어? 내가 데리고 갈까? 했는데 그게 오늘 메뉴가 됐다. 크리스티 역 근처 한국음식점 데려가서 조금 매운 순..
토론토 생활 구십이일째 _ 2010년 2월 18일 목요일 지난 여름, 넓디 넓은 오르세 미술관을 슬렁슬렁 걸어다니다, 이 그림 앞에서 딱, 얼어붙었다. 불어 까막눈이라 제목 봐도 무슨 의민지 전혀 모르겠는데,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한참 서있었다. 사람들은 벌거벗은 채로 죽어있고 하늘엔 벌건 구름이 떠다니고 멀리 산너머도 화염에 휩싸여있는데 날으는 말을 타고 있는 저 여자는 손에 칼을 쥐고 횃불을 높이 든 채로 일말의 두려움이나 연민의 감정없이 전진하고 있었다. 아. 나중에 찾아보니 저 그림의 제목은 (앙리 루소). 이 그림 속 여자의 이미지는, 전쟁 중 여자는 극악한 폭력의 피해자로 시체들 사이에 누워있거나, 백의의 천사가 되어 사람들 보살피는 일에 헌신한다,는 내 고정관념이랑 너무 다르다. 머리를 한 ..
토론토 생활 구십일일째 _ 2010년 2월 17일 수요일 아침에, 아직 여독이 안풀린 몸으로, 늦잠 자고 일어나니, 마음이 편하다. 그냥 편한 게 아니라, 편안하다. 집에 왔다,는 기분. 아침 지어 먹고 학교 갔다 귀가하니 다시 시작하는 일상의 싸이클이 반갑다. 이제 겨우 구십여일 지났는데, 어느새 여기가 '집'이 되었구나, 싶다. 학교에 앉아있는데 피곤해서인지 몸에서 열이 막 났다. 후딱 집에 들어와 쉬고 싶었는데, 그래도 견뎠다, 그러다보니 보려고 했던 아티클 한 편 다보고, 저녁도 먹고 장도 봐서 집에 오니 조금 멀쩡해졌다. 불교에선 집을 갖지 말고 유행(遊行)하라,고 한다. 내가 해석하기론 목숨이나 음식, 잠, 관계에 대한 욕망 만큼이나 질기고 강한 게 내가 사는 '집'에 대한 욕망인 것 같다. ..
토론토 생활 팔십팔일째 _ 2010년 2월 14일 일요일 6시간 반쯤 버스를 타고 왔다, 몬트리올. 흩날리는 눈송이가 나를 반긴다, 나도 반가워! 토론토에도 여행 와있으면서, 짐싸고 집을 나서는데, 여행 간다는 생각에 조금, 들뜬다.ㅎ 여긴 토론토랑 분위기 완전 다르다. 무엇보다, 수퍼에 가면 맥주를 살 수 있다! 건물도 집도 지하철역도 파리를 닮았다. 사람들은 모두 불어만 쓴다. 재밌다! YWCA 호스텔에 왔는데 숙소도 괜찮구먼. 내일은 구 몬트리올 지역을 슬슬 돌아다녀볼 예정. 월요일은 박물관이 모두 휴관이라 시내 구경만 해야겠다. 버스 안에선 논문이며 수업 준비며 걱정걱정 했는데 막상 도착하니 휴가 모드 발동, 히히 좋고나. 오늘도 아침기도만.
토론토 생활 팔십칠일째 _ 2010년 2월 13일 토요일 여긴 그냥 평범한 토요일 저녁인데, 한국은 까치까치 설날이 밝아왔다. 어렸을 때, 나는 명절날 아침이 그렇게 싫었다. 전 날, 종일 차례 지낼 음식 만드는 엄마 도와주느라 부엌에 있다가 피곤하게 잠들었는데, 명절 당일날 아침도 새벽같이 일어나 세수하고 세배하고 또 차례 지낼 상 차리느라 종종 거리는 엄마 도와줘야하고... 게다가 설날은 늘 추워서 따신 이불 속에 계속 머물고 싶어서 끙끙댔었다. 그 아침들이 너무 싫어서인지, 명절날 제일 한가롭고 좋았던 순간은, 차례 지내고 손님들도 다 돌아가고 아버지와 남동생은 친척 어른들께 세배하러 집을 나서고 나면, 차례 지내고 남은 음식들로 엄마와 둘이 큰 상에 앉아 밥을 먹던 그 시간이었다. 오전 내내 종종..
토론토 생활 팔십사일째 _ 2010년 2월 10일 수요일 대학 후배 중에 별명이 왕피곤,이라는 친구가 있다. 토론토 오기 한달 전쯤이었나, 자전거를 타고 학교 후문 근처를 지나가다가 왕피곤,을 우연히 마주쳤다. 학교 졸업하고 몇년만이었을까. 연락도 만남도 없이 지내다가 우연히 마주친 거라 나는 좀 서먹했는데, 그는 예의 그 큰 목소리로 "누나-" 하고 외친다. 타고 가던 자전거를 세우고 몇 마디 나누는데, 왕피곤의 표정엔 '반가움'만 가득 하다. 너 뭐하고 지내냐, 하니 뭐 그냥 아직 단체 활동 하고 있죠, 라고 대답하는데, 조금 민망한 표정인 것 같다. 나도 포함되었던, 대학 시절 학생운동 했던 사람 중에 왕피곤처럼 아직도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기도 벅차다. 그런데, 그는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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