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과제를 진행하면서 여러가지 종류의 일을 한다. 거기엔 소위 '행정업무'라는 일이 있다. 결재서류 만들고 복사하고 행정적인 절차를 진행하기 위한 연락하고 음료 준비하고 과자 세팅하고 책상 닦고 문구류 준비하는 등등의 일들. 이 일들은 일의 가짓수가 많은데 비해서 잘 쌓이지 않고 무엇보다 업적이나 실적으로 가시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노동을 보이지 않는 노동(invisible labor)이라고 한다. 연구원에서 이 노동은 박사학위가 없거나, 연구조원으로 고용되었거나, 사무처 등의 행정직원들이 한다. 이 일은 연구 과정에서 필수적이지만, 실적과 관련성이 낮고 비교적 학력이 낮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가치가 낮은 것으로 여겨진다(혹은 가치가 낮은 일로 여겨지기 때문에 직급이나 학력이 낮은 사람에..
사무실 한 층 위는 옥상이다. 에어컨 실외기들이 있고 시멘트 바닥에 볼품없는 그냥 건물 옥상. 그래도 이렇게 날이 맑은 낮에는 그 옥상도 빛이 난다. 오늘 출근길에 생각했다. 한시간에 한번쯤은 옥상에 올라가서 볕도 쬐고 스트레칭도 하자. 좀전에 올라가 오징어처럼 몸을 말렸다. 과연 좋구나, 선물같은 날씨, 선물같은 시간들. --- 출근길에서부터, 아니면 그 전부터, 마음이 늘 종종거린다. 그걸 최근에서야 알겠다. 처음엔 많이 긴장해있었고, 점점 바빠지다가, 요즘엔 바쁘다는 사실을 까먹을 정도로 바쁘다. 하루에 처리해야할 일의 가짓수가 많다. 연구과제를 진행하며 행정적인 절차를 이렇게 많이 거쳐야하는구나. 서식에 내용을 채워넣고, 크고작은 동의절차를 밟고, 전화로 메일로 연락을 하고, 쪽지로 날아드는 작은..
지난 여름 어느날, 간만에 백팔배를 하면서 마음 먹었다. 그래, 두려워하지 말고, 지원서를 써보자, 하고. 근데 그 때 스스로와 약속했던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영혼을 파는 지원서를 쓰지 않을 것. 또 하나는 만약 취직이 된다면 매일 일기를 쓸 것. 토론토에서 안되는 영어와 낮은 자존감으로 진짜 고통스러웠을 때, 그 때 나를 매일 살렸던 것 중 하나는 일기쓰기,였다. 매일 기록을 해보자, 하고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 200여개의 기록이 되었다. 일기를 쓰면서, 다시 내일을 살 수 있겠다, 힘을 냈던 거 같고, 지금 다시 보면서 그 때의 생각들, 마음들을 되짚을 수 있어서 좋다. 취직한지 46일이 지났구나. 근데 일기는 하루도 쓰지 못했다. 매일 집에서 아기랑만 있다가, 많은 사람들, 많은 자극들 속에서..
월요일 출근길엔 마음이 언제나 바쁘다.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내려서 또 걸어야하는 긴 출근길, 마음이 내 생각보다 훨씬 동동거린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겠다. 버스에서 내려 일터까지 오는 십분 정도의 시간, 이건 오롯이 내 것인데도 생각은 과거와 미래를 오간다. 반야심경을 하며, 관세음보살을 외며, 겨우 지금 발끝과 내 호흡에 의식을 가져와본다. 사무실에 헐레벌떡 도착하니 부서 사람들은 아침 티타임을 갖고 있다. (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늘 일찍 출근해서 차 한 잔 같이 마시고 하루를 시작하는 이 부서의 문화. 아, 알겠다. 이 문화에 동참해야지, 하는 압박이 내게 있었구나. 그래야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직장생활도 잘하는 거야, 라는 생각이 있었구나. 그치만 오늘도 동참은 실패.ㅋ 어색하게 긴 연휴 다녀..
원래는 두 군데 연구소에 지원서를 내려고 하다가, 도중에 한 군데는 포기, 한 군데만 겨우겨우 작성해서 마감날 접수.서류전형에 합격해서 오늘 면접을 다녀왔다.대중교통으로 가면 두시간 남짓한데 자동차로 가면 한시간도 안걸리는 곳이라아기랑 아기아빠랑 셋이서 이 더운 날 한낮의 여행. 오후 늦게 면접을 앞두고 삼십분쯤 마지막 준비를 하는데,엄청 떨리더라. 잘하고 싶어하는구나, 마음을 알아도 긴장되는 마음은 여전.직전까지 떨리는 마음이었지만 막상 면접장으로 들어가니 좀 편해졌다. '영혼을 팔지 않고' 면접을 끝냈다는 생각에 좀 들떠있었는데,나도 모르게 면접장에서의 내 말들, 면접관들의 표정과 질문들을 복기하게 된다.뭘 잘못한 것은 아닐까. 이러저러한 모습이 나쁘게 보였던 것은 아닐까. 초중등 교육정책을 연구하는..
이곳 저곳에 지원서를 쓰기로 했다. 연구원 모집 공고를 몇 번, 그냥 지나치면서 생기는 불안감도 만만치 않구나, 확인하면서. 단, 다짐하길, '영혼을 팔아버리는' 지원서를 쓰지는 않으리라. 막상 책상 앞에 앉아 이력서 빈칸들을 채우는데, 자꾸 영혼을 팔고 싶다. 잘 보이고 싶고, 지금 내가 가진 패가 초라해서 감추고 싶고. 왜 공부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자주 잊어버렸다. 그래서 불안하고 우울했는지도 모를 일. 왜 지원하려고 하는가, 이 질문을 꼭 품고 있어야지 지원서 쓰는 과정이 재미날 것이다. 정말 오랫만에 학교에 나와 앉아있다. 산책이라도 다녀와야 정신이 차려질 것 같은 오후. 더워도 좀 걷자.
비오는 일요일. 종일 이래저래 할 일들을 하다가, 저녁이 되자, 짜증이 났다. 과일과 견과류를 사러 잠깐 나갔는데 비는 오고, 허리는 아프고, 왠지 기분이 막 삐뚤어진 거지. 밖에 있다가 들어온 Y에게 괜히 트집을 잡아서 막막막 짜증을.ㅋ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경인교대와 서울교대 수업일지를 올리고, 오늘 할 일은 이걸로 끄읕, 하는데 짜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가만 보니까 뭔가 불만족스러운 것 같다. 해야할 일, 하고싶은 일, 해야될 것 같은 일들의 리스트가 머릿 속을 왔다갔다 하는데,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 같고, 나는 놀고도 싶고, 뭐 그런 상태랄까. 잘 정리해보면, 이런 상태를 '욕심'이라고 하지. 시간에 비하여 일을 많이 벌려놓고는, 실제로는 게으르기도 하고 놀고싶기도 하고. 7월이 되면 강의든..
이상하게도 정리벽이 발동하는 시기가 있다. 이 시기가 되면, 내 물건들 중에서도 특히 옷과 책을 제대로 정리해야되겠다고 마음 먹게 되는 것 같다. 정리벽 덕분에, 요며칠 옷과 책을 정리하고 있다. 그러면서 물건들에 묻혀있는 과거의 어떤 순간들과 만나고있고, 이 물건들이 가깝고 먼 미래에 어떤 소용이 있으려나 가늠하고 있는 중이다. 옷은 의외로 하루 저녁만에 정리 완료. 요전에 안입는 옷을 추려서 두 박스나 아름다운 가게에 보냈는데, 그제 다시 입지 않을 옷 한 박스가 생겼다. 오랫동안, 언젠가는 입을테다, 라며 붙들고 있었던 옷들이 날개를 달고 다른 시공간으로 가게 되는 걸 생각하면, 정리되는 옷 무게만큼 가벼워지는 것 같다. 그래도 가끔은 그 옷들이 아쉬워지는 순간들이 오겠지만. 책과 서류 정리는 생각..
졸업을 앞두고, 내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가르치는 것,이다. 매 학기, 학생들을 교실에서 만나고, 새로운 실험들을 하면서 지식을 생산하고, 서로 감정을 나누고, 그리고 헤어진 뒤, 다시 만나는 일의 반복. 그 가운데에서 뭔가 생성될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앉아서 글만 쓰는 일보다는, 훨씬 생동감있는 일들을 만들어낼 에너지와 아이디어를 그 교실에서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거울삼아, 괴물같이는 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안정적으로 학생들을 교실에서 만나 수업을 할 수 있는 법은 교수가 되는 것이다. 교수로 임용되면, 별 문제가 없는 한, 65세까지 교실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것을 보장받을 수 있고, 월급도 꼬박꼬박 나오니깐. 그런데 지금 내 '스펙'으론 교수가 되는 길은..
- Total
- Today
- Yesterday
- 일상
- 엄마
- 일기
- 토론토
- 영어
- 교육대학교
- 인터뷰
- CWSE
- 봄비
- 일다
- 켄싱턴 마켓
- Toronto
- 여행
- UofT
- 열등감
- OISE
- Kensington Market
- 교육사회학
- 박완서
- 인도
- 감기
- 봄
- 맥주
- 논문
- 선련사
- 토론토의 겨울
- 기억
- 졸업
- 가을
- 아침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