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획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 냇다. 조금밖에 없는 식량도 걱정이 안됐다. 다닥다닥 붙은 빈 집들이 식량으로 보였다. 집집마다 설마 밀가루 몇 줌, 보리쌀 한 두 됫박쯤 없을라구. 나는 벌써 빈 집을 털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구멍이 ..
토론토 생활 사십이일째 _ 2009년 12월 30일 수요일 살다보면 어제와 다름없던 오늘의 풍경 속에서 문득,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자기의 긍정적 실체와 조우하는 경험이 주는 벼락같은 인식의 전환과 힘은 비할 바가 없습니다. 자신의 불완전성을 명료하게 의식하면서도 자기 존재의 긍정성을 홀대하지 않고 토닥일 수 있다면 그 또한 능력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렇게 지나온 시간을 갈무리하는 시점에서는 ‘내가 두 개라면 이럴 때 하나의 내가 다른 하나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을 것 같다’는 소설의 한 구절이 꽂히듯 마음에 와 닿습니다 - 정혜신의 그림 에세이, '오늘 알았다' 중에서 돌이켜보면, 아주 꼬마였을 때도, 누구나 그랬겠지만, 어른들에게 야단맞는 게 너무 싫었다. 다 자..
토론토 생활 사십일일째 _ 2009년 12월 29일 화요일 오늘은, 토론토의 추위를 실감케 하는 날씨! 낮 최고기온이 영하 8도, 최저기온은 영하 16도. 그나마 바람이 안불어서 걸어다니는 게 고통스럽진 않았지만, 거리에서 잠시 마스크 없이 숨을 쉬니깐 목이랑 코가 막 아프다. 그리고 지금은, 북향인 방에 앉아있으니 엉덩이가 시렵다...ㅎㄷㄷ 여전히 도서관엔 사람이 없다. 텅 빈 도서관에 앉아 오늘도 책 읽었다. 크리스마스-연말-연초, 해서 짧은 방학이라 학교가 썰렁하다. 나는 2009년 마지막 날과 2010년 첫날을 제외하곤 매일 학교 갈 예정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남들 놀 때 공부하는 맛이 쏠쏠하다.ㅋ 우연히, 비슷한 사이트 두 개를 발견했다. http://userstorybook.net/ http..
토론토 생활 사십일째 _ 2009년 12월 28일 월요일 날씨가 추워지려는지 창 밖 바람 소리가 우우- 며칠 놀다가 오늘 간만에 열공해서 그런지, 열시도 안됐는데 좀 피곤하다. 그리고 이런 피곤함이 조금 좋다. 어렸을 때, 밤에 자려고 누워서, 얼른 아침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순간들이 기억난다. 가능하다면, 잠을 자지 않고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고 싶어서 이불 속에서 안달이 났던 순간들. 반대로, 자라고 나선, 피곤에 찌들어, 얼른 따뜻한 내 방에 가서 씻고 잤으면 좋겠다 생각한 적이 많았다. 잠이 어렴풋이 깼는데도, 일어나서 시작할 일상이 버거워서 계속 뒤척이곤 했던 많은 아침들. 오늘은 이렇게 조금 더 깨어있어도 좋고, 얼른 자도 좋겠다. 내일 아침도 뒤척이지 말고 싹, 하고 일어났으면 좋겠고...
토론토 생활 삼십구일째 _ 2009년 12월 27일 일요일 여기서도 일요일 하루는 금새 지나간다, 서울에서 처럼. 오전엔 청소하고 오후엔 좀 놀다가 저녁 나절엔 장보러 다녀왔다. 저녁 먹고 티비 좀 보다가 시계보니 열시가 다돼가네. 해가 일찍 지는 토론토에서 오후 열시는 한밤중인 것 같다. 아침 나절에 '10 아시아'에서 배우 윤여정의 인터뷰 기사를 봤다. 길을 걸으며,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고 절망도 했지만, 지금도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보면, 힘이 난다. 그 덕분인지 종일 마음이 한결 풍성하다. 기분을 좋게 만드는 그녀의 사진 한 장. 그 한결 풍성해진 마음으로 근 오년만에 ㄱㅈ 선생님께 편지를 한 통 썼다. 메일 주소가 맞는지, 잘 전해질지, 답장이 올지, 미지수지만, 그냥 ..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089§ion=sc6 ‘92학번 남성’이 IMF세대를 대표하는가 MBC PD수첩 "IMF세대, 10년을 말하다" 편을 보고 정안나 12월 15일자로 방송된 MBC PD수첩은 “IMF세대, 10년을 말하다” 편에서, IMF때 첫 직장을 구해야 했던 대졸자들의 고생담을 들어보고 10년 후 현재 삶이 어떠한지를 보도했다. 그런데 PD수첩에서 ‘IMF세대’의 표본집단으로 삼은 것은 모 대학교 경영학과 92학번 남성들이었으며, 그들의 아내들도 간간히 등장했다. PD수첩을 보는 내내 맘이 언짢았다. PD수첩의 관점대로라면 1997년 구직난을 겪은 남자대학생 92학번이 ‘IMF세대’의 중심이자 대표 세대인 셈인데, 과연 그러한가? 그 시기에 첫..
http://www.hani.co.kr/section-009049000/2000/009049000200008171827114.html 웹에서 우연히 찾았다. 2000년도 기사. 인터뷰어가 낯익은 사람이라 반갑기도 했고. 기사의 본문 보다도, 사족처럼 붙은 아래 구절이 더 마음에 들었다. "남자들의 권력과 시선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나'가 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으며 또 걸릴 것인가. 교수가 되어 경제력과 사회적 위치가 보장된 후 갖게된 이 개인적 자유는 남성중심체제라는 거대한 권력체계 앞에서 또 얼마나 자유로울 것인가. 남북한 관계를 두고도 여성은 이산가족 상봉 장면에만 등장한다. 여전히 가족이라는 `사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언론사 사장도 거의 모두 남자들, 두 정상도 남자, 보도..
저 달이 걸어오는 밤이 있다 달은 아스피린 같다 꿀꺽 삼키면 속이 다 환해질 것 같다 내 속이 전구알이 달린 크리스마스 무렵의 전나무 같이 환해지고 그 전나무 밑에는 암소 한 마리 나는 암소를 끌고 해변으로 간다 그 해변에 전구를 단 전나무처럼 앉아 다시 달을 보면 오 오, 달은 내 속에 든 통증을 다 삼키고 저 혼자 붉어져 있는데. 통증도 없이 살 수는 없잖아, 다시 그 달을 꿀꺽 삼키면 암소는 달과 함께 내 속으로 들어간다 온 세상을 다 먹일 젖을 생산할 것처럼 통증이 오고 통증은 빛 같다 그 빛은 아스피린 가루 같다 이렇게 기쁜 적이 없었다 - 허수경, -------------------------------------------- ㅇㄴ네 블로그 갔더니 허수경의 시가 있어서, 그 시가 내 마음에 짠..
토론토 생활 삼십팔일째 _ 2009년 12월 26일 토요일 드디어, 오늘이 박싱 데이(boxing day)! 토론토의 온갖 신문과 뉴스, 광고지에서 떠들석하게 예고하던 그 날! 쇼핑몰들은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사람들은 어깨와 어깨가 부딪힐 만큼 몰려들어 쇼핑 전쟁을 한다는 날. 위키피디아 박싱 데이 설명: http://en.wikipedia.org/wiki/Boxing_Day 어젯밤 잠들기 전, 박싱 데이 세일에 아침 일찍부터 가기 위해 자명종을 맞춰놓았다. 근데 쇼핑이 절받하지 않았던 것인지 늦잠을 자고... 점심 때부터는 생리통이 시작돼서... 오후 두시가 돼서야 집을 나섰다. 이렇게 늦게 가면 쇼핑몰의 물건들 다 팔리고 한산하겠다, 그래도 구경이나 하자 하면서. 그러나, 막상 다운타운의 이튼 센터에..
토론토 생활 삼십칠일째 _ 2009년 12월 25일 금요일 늦잠 자고 일어나 창밖을 보니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다. 아점을 해먹고 빨래 돌리며 인터넷 서핑 좀 하다가, 마침 떨어진 커피 믹스도 살 겸, 바람도 쐴 겸 집 가까이 있는 한국 수퍼에 가기로 했다. 집에서 입던 옷에 세수도 않고 점퍼만 걸친 채 우두두 나갔다. 토론토의 크리스마스는 한국의 설이나 추석 명절 같다더니 정말로 거리엔 사람도 없고 상점도 문을 다 닫고 바람만 쌩쌩 분다. 집에서 오분 떨어진 한국 수퍼는 좀 작아서 그런지 가격이 비싼 편이라 한 번 휙 둘러보고 조금 더 떨어진(지하철로 반 정거장?) 큰 수퍼에 가봤다. 세일 가격에 커피 믹스를 사고, 온 김에 간장과 마늘 다진 것, 쌀도 10 파운드쯤 샀다.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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