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생활 백육십칠일째 _ 2010년 5월 5일 수요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왔고, 어설픈 영어로 발표하는 걸 애정어린(혹은 안절부절한) 눈빛으로 봐주는 친구들이 있었고, 잘 이해되지 않는 질문을 엉성한 답으로 받아치긴 했지만 좋은, 많은 질문들로 충분히 도움 받았다. 지난 몇달간 인터뷰하고 녹취하고 이론서를 보고 논문 주제를 고민했던 시간들이 스물 네장 짜리 ppt 로 정리되었고 나는 '연습한대로' 떨지 않고 이야기했다. 늘, 논문 작업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여긴 시간들이었는데, 발표 하느라 정리해보니, 그리고 Sandra 선생님이 (고맙게도) 지적해준 것처럼, 제법 생각의 발전이 있었던 것 같다. 했다,는 것만으로도 임파워될 것 같았던, 그런데 실상은 어떤 자리에서보다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
토론토 생활 백육십이일째 _ 2010년 4월 29일 목요일 인터뷰 전사 작업 만큼 진도가 느린 일이 있을까. 11인 * 2회 * 평균 90분 = 약 1980분량을 언제 다 풀까 싶다. 서울 돌아가서 2인 정도 더 인터뷰 할 작정인데, 여름이 끝날 때까지 과연 이 작업이 끝날 수 있을까 의문. Sandra 선생님 왈, 인터뷰(및 전사)와 논문 쓰기 사이에는 깊은 강과 같은 간극이 있어 논문 쓰기 작업으로 전환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던데, 난 아직도 인터뷰와 전사 작업도 한창이니... 논문은 언제 다 쓰고, 학위는 언제 받을까, 과연 받을 수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전사 하면서 다시 듣는 인터뷰이들의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것. 이어폰으로 녹음 파일을 들으면서 손가락은 바쁘게 타이핑을 하고, 내 마음..
토론토 생활 구십육일째 _ 2010년 2월 22일 월요일 어제, 봄날처럼 따뜻하더니, 오늘은 낮부터 눈이 펑펑 온다. 점심 때 운동하고 창이 큰 거스타인(Gerstein)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는데 책상 옆 창이 마치 영화관의 큰 스크린 같다, 영화 속에선 줄곧 눈이 내리고. 논문 작업은 내가 만든 미로 속에 내가 갖힌 기분이 드는 국면. 좀 꼬이고 너무 복잡해져 버린 생각의 지도 속에서 종일 헤맸다. 한 숨 자고 내일 아침이 되면 길이 좀 보이려나. 길찾기 훈련삼아, 당분간은 좁은 지도 속을 맴돌아도 괜찮을 것도 같고. 남동생의 아가(딸)이 오늘 나오기로 한 날인데, 아직 안나오고 있단다. 나랑 반대로, 마음이 무지 무던한 올케는 나올 때 되면 나오겠지 하고 편한 듯. 내가 이렇게 떨리고 두근대는데 동..
토론토 생활 구십삼일째 _ 2010년 2월 19일 금요일 _ 이 스킨, 대충 고른 건데, 보면 볼 수록 마음에 든다. 옷이나 신발도 이런 경우가 있다. 며칠 걸려 고른 옷 중엔 잘 안입는 것들이 있기도 하고, 별 기대없이 후딱 사버린 걸 오래오래 마음에 들어하는 경우도 있고. 토론토 와서 사 신은 방한-방수-미끄럼방지 부츠도 십분 만에 구입한 건데 참 편하고 이뻐서 보면 볼 수록 마음에 든다. 의도한대로, 예상한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는 거, 어쩌면 이게 삶의 매력적인 부분인지도. _ 오늘 점심에, 바르셀로나에서 왔다는 Rita 와 두번째 식사를 함께 했다. 지난 번 만났을 때, 한국 음식 먹어봤어? 내가 데리고 갈까? 했는데 그게 오늘 메뉴가 됐다. 크리스티 역 근처 한국음식점 데려가서 조금 매운 순..
토론토 생활 팔십삼일째 _ 2010년 2월 9일 화요일 한국에서 날라온 편지를 받았다, 예상치 못한 선물, 같은 편지. 내겐 너무 친숙한 글씨와 말투(구어와 문어를 거의 일치시킨 문체랄까ㅋ) 덕분에 읽으면서 많이 웃었다. 고마워, ㅇㅊ, 역시! 종일 흐리더니 저녁에는 눈발이 날린다. 일기예보엔 내일부터 눈 내린다고 한다. 서울엔 '가른비', 겨울과 봄을 가르는 비가 내린다는데, 여긴 아직 겨울이 조금 더 남은 모양이다. 그래도 날짜는 어느새 2월 중순에 가까워지고, 점점 시간 지나가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주였나, 학교 근처에서 늦게까지 술마시고 귀가하는데, 취한 기분에 눈 쌓인 길을 걸으니 흥이 막 올라와 깔깔거렸던 순간에 찍은 것. 밤도 늦었고 다음날 할일이 많은데도 마음..
토론토 생활 팔십이일째 _ 2010년 2월 8일 월요일 서울은 비가 내린다는데, 여긴 며칠째 날이 맑다. 사실 맑은 날이 더 춥지만, 그래도 이렇게 맑은 날씨가, 투명해서, 좋다. 김동춘 선생님이 '국제학 센터'에서 '진실과 화해위원회'에 관한 발표를 한다길래 찾아가서 듣고, OISE로 돌아오는 길, 맑고 추운 교정을 걷는데 그 짱짱한 날씨가 좋아서 혼자 좀 웃었다.ㅎ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여기선 설 명절에 할 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내 마음이 바쁘다. 그리고 종종, 논문 작업의 속도를 생각하면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진다. 시간에 유난히 인색한 나. 조급함이 불안과 함께 찾아오면 늘 쩔쩔매곤 한다. 한번엔 한 걸음밖에 못걷는 것처럼 지금 누릴 수 있는 ..
토론토 생활 팔십일일째 _ 2010년 2월 7일 일요일 켄싱턴 마켓의 브런치 식당에서 발견한 빨간 목도리 아저씨. 여기선, 가끔 사십대 이상의 사람들에게서 깜짝 놀랄 감각을 엿보곤 한다.ㅎ 일요일 낮 햇살 안에, 하얀 머리와 빨간 목도리, 소라색 풀오버가 서로 참 잘 어울린다. 표정까지 살아있어서 도촬의 보람을 느끼게 해준 센스쟁이 아저씨. 다음주 몬트리올 여행을 이 식당에서 의논했다, 케빈이랑 양이랑. 케빈이랑은 의도치않게 토론토 절친 되겠다, 꽤 자주 만나고 어울리게 되네. 아침에 법회 갔다가 이렇게 점심을 길게 먹고 도서관에 갔더니 피로와 졸음이.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앉으니 좀 낫다. 머릿속은 논문 생각으로 뒤죽박죽이지만 마음은 가볍고 단순하다. 잘 안되면 될 때까지 하고, 하다 지치면 쉬었다 하..
토론토 생활 칠십구일째 _ 2010년 2월 5일 금요일 _ 금요일 오후 운동 끝나고 씻고 나오면 체력이 완전 바닥난 기분이 든다. 일주일간의 피로가 어딘가 잠복해있다가 그 순간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은. _ 영어를 잘 못하는 나를 볼 때마다, 내가 한국어에 얼마나 능한지 알겠다. 한국어로 표현할 수 있는 그 세세한 감정들과 의미의 깊이들. 태어나서 지금까지 갈고 닦은 그 한국어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살기 위해서라도, 내 삶에 이민 같은 건 없을 듯.ㅎ _ 영법 중에는 물의 표면에 떠서 발장구 치고 손과 발로 물을 끌어당겨 얼른 앞으로 전진하는 방법들도 있지만, 물 속에 가만히 가라앉았다가 떠올랐다가를 반복하는, 몸의 긴장을 빼고 물에 나를 맡기는 잠영도 있다. 그러다가 깨닫기도 한다, 내 몸의 어느..
토론토 생활 육십칠일째 _ 2010년 1월 24일 일요일 _ 몸이 안좋아 종일 집에 있었다. 일요일, 날씨는 흐리고, 양은 책 읽으러 도서관 가고,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좋더라. ㄴ선생님 인터뷰 전사하고 미뤄뒀던 '토론토 일기' 쓰고, 낮잠도 자고, 아보카도랑 쵸쿄바도 먹고 레몬차도 한 잔 했다. 느리게 혹은 빠르게 시간이 지나가고 지금은 일요일밤. _ 일월 초 운동을 시작해서 이틀에 한 번 요가와 필라테스 수업을 들었는데, 그 덕분인지 심하던 생리통이 나아졌다. 오십분 정도 수업 듣고 샤워하고 사우나 하는 게 전부인데,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몸의 순환과 균형을 도와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금방 눈에 띄는 변화가 없어도 꾸준히 해서 뭔가 얻는 것, 이런 게 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인 듯. _..
토론토 생활 육십이일째 _ 2010년 1월 19일 화요일 요즘 토론토 날씨가 별로 안춥다. 영상의 날씨였다가 오늘 살짝 추워져서 영하 이도 정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서 내려서 지상으로 나오니 눈발이 히끗히끗 날린다. 가로등에 비치는 눈송이가 반짝 반짝 빛나는 게 예쁘다. 밤사이 요 눈송이들이 땅에 얼어붙어 내일 아침 등교길엔 미끈거리겠다 싶지만, 지금 이 순간은 좋다. 논문 작업 진도가 느려서, 거기다 청강하는 수업 준비까지 하느라 조바심이 났던 며칠 후로, 이젠 그냥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요즘은 인터뷰해 온 내용 들으며 전사(transcription) 중인데, 인터뷰 하면서 그리고 녹음된 것으로도 몇 번 들었던 이야긴데도, 나도 모르게 어떤 부분에선 가슴 졸이고 어떨 땐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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