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내내 수요일 저녁에 만나는 친구들이 있어서 좋았다. 그날 저녁이 되면 법당 3층 강당에 모여 서둘러 법문 들을 준비를 하고, 가벼운 주머니 털어 누군가 준비해온 간식을 나눠먹으며 수다를 떨고, 꾸벅꾸벅 졸면서 법문을 듣고, 밤늦을 때까지 마음과 일상을 나누던, 좋은 친구들. 이 친구들이랑 같은 날, 五戒와 佛名을 받고, buddhist로 새로 태어났다.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이 길을 같이 걸어가주어서 고마와. 智自在는 지혜를 자유자재로 쓴다,는 의미란다. 내가 가진 지혜들을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쓰는 사람이 되는 것. 이 새로운 이름이 좋다, 이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싶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서라도 행복해야해,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 후렴구. 요즘 이 노래가 자꾸 입에 맴돈다. 슬픈 노랜데 이상하게 힘을 준다. 일기를 잘 못쓰겠다. 생각해보니 긴 글을 찬찬히 읽어본 것도 까마득하고, 수첩에 to do list를 작성한지도 오래되었다. 마음이, 기쁘지 않은데도 내내 들떠 있었다. 늦잠과 낮잠을 습관처럼 자고 있는데 오늘 저녁엔 코피가 났다! 내가 알지 못하는 동안에도 몸은 피곤한 걸까. 지금 이 시간,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앞에선 최루액을 쏘고 사람들이 연행되고 비가 내리고 함성과 노랫소리와 촛불이 있다. 문득, 지금 여기 내가 누리는 이 고요함이 비현실적이다. 누군가는 자기 삶이 너무 잔잔하다, 하던데, 어쩌면 그 잔잔함은 일렁이는 저 현실들의 이면일 수도. 내일은 ..
네이트 대화명을 때로 바꾸고 있다. 봄 씨리즈. 봄밤을 걷는다, 봄숨을 쉰다, 봄섬에 가고 싶다, 봄날은 간다... 꽃 피고 흩날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논문과 함께 봄이 다 가버린 것 같다. 오늘 내리는 비는 장마철의 후텁지근한 느낌이다, 봄비 같지가 않아. 지난 겨울, 서성이던 마음으로, 너무 까마득해서 봄은 영영 올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어느새, 이 봄이 다가고 다가올 날들은 어떤 빛깔일까 상상하고 있다. 아픔도 기쁨도 슬픔도 그리움도 봄날도 어느새 흘러간다, 흐르지 않는 것은 없다. 내 인생의 벚꽃은 캠퍼스 한 가운데 있는 작은 연못가에 만개한 꽃들이 막 지기 시작할 때의 바로 그 벚꽃. 그런데 올핸 그걸 제대로 못 즐겼다. 벚나무들이 예전만큼 무성하지도 않았고, 몇 번 들렀을 땐 아..
차승원 관련 기사를 읽다가 이 장면이 떠올랐다. 장진 감독 영화에 출연했었구나, 기억을 더듬으니 알겠다. 류덕환이 내겐 너무 강렬해서 그 옆에 차승원이 있는지 몰랐다. 이 두 남자, 좋았다, 이 영화, 특히 이 장면에서. 경계에 서있는 사람들이 매력적이다. 차승원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위태로운 느낌이 들었다. 남자들도 저마다 캐릭터가 있다는 것, 서른이 가까워와서야 알았다.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를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전형적인 남성도 매력이 없다. 내겐 좀 결핍된 남자들과 좀 자뻑인 여자들이 매력있게 느껴진다. 아, 근데 그게 아닐지도. 결핍된 남자들의 찌질함이 싫어서 도망친 적도 있고, 자뻑인 여자보단 자신이 자뻑인 줄 아는 여자가 더 좋았지. 암튼, 어제, 몇 명의 남자 '아이'들과 떠들고 먹고 마셨..
오월의 이즈음, 날씨 참 좋던 주말, 그와 둘이서 경주에 갔다. 하룻밤을 같이 자고 다음 날 아침, 둘이 봄산책을 하는데, 끈만 달린 슬리브리스를 입은 나를, 어머, 하면서도 이쁜 눈으로 쳐다봐주는 그가 있어 좋았다. 이상한 구도이긴 하지만, 카메라 줘봐, 내가 찍어줄께, 하며 나를 사진기에 담아줘서 또 좋았다. 바람이 우우 부는, 양쪽에 나무들이 나래비를 선 길을 멋지게 걸을 줄 아는 그. 언제라도 산책과 담소를 하자면 좋다, 하고 따라나서는 그. 언제나 소녀같은 웃음, 이쁘고 반짝이는 눈을 가진 그. 오늘따라 그립다. 아마 오월 경주를 다시 보러가는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 기억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막내 이모로부터 전화가 왔다. 간만의 통화. 아마 설명절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이모가 뜬금없이, 힘든 일 있으면 언제라도 연락하라고 한다. 왜 갑자기 그런 얘기 하냐니깐, 꿈에 엄마가 나와서 "우리 딸래미 힘들 때 도와주면 참 고맙겠다" 했단다. 이모는, 엄마가 내 걱정이 돼서 이모에게 온 거라고 믿으신다. 네, 이모. 나 힘들 때 이모한테 바로 전화할께요, 하는데 왠지 마음이 울컥한다. 그리고 눈물이 주루룩. 엄마는, 이미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데, 여전히 이모와 나를 잇고 있구나, 하는 생각. 가끔, 둘째 이모는 내 조카 다은이를 보면서, 어디 넘어져도 심하게 안다치는 건, 엄마가 돌봐주기 때문이라 하신다. 다은이가 잘 자라는 것은 동생과 올케의 살뜰한 육아 덕도 있고, 동생네 가까이 사시는 ..
어제, 전공 후배의 와이프를 다른 후배의 결혼식에서 마주쳤는데, 대뜸 이렇게 물었다, 내게.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웃으며) "...애는... 안낳을 꺼야?" 나, 피식 웃으며 자리를 피했다. 그녀의 그 질문, 그 태도가 조금 당황스러웠거든. 그녀는 나의 초등학교 동창이다. 우연히 우리 전공 후배와 결혼을 했고, 가끔 마주칠 때가 있었지만, 뭐 별로 말 섞는 사이는 아니었다. 예전에도 안친했고, 시간이 훌쩍 지나 만난 그녀와도 친해지지 않더라구. 너무 극과 극의 성격, 스타일... 뭐 이런 것들 때문이었을까. 암튼, 별로 관심 없었다, 그녀에게. 그래서 마주쳐도 안녕, 정도의 가벼운 인사가 전부였다. 그러니 " 애는 안낳을 꺼야?"라는 질문은 그녀가 나에게 건낸 가장 길고 가장 구체적인 문장인 셈. 당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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