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내년에 아기를 보낼지도 모르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음악회와 영화상영회를 한다길래 가봤다. 가난한 동네 주민센터 마당에서 과일과 떡을 나눠먹으며 보는 음악회와 영화제. 조촐하고 투박했지만 주최자들끼리 히히덕 낄낄대는 행사 특유의 재미가 느껴져서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대학 때 많이 해봤던 짓들. 진지하게 준비해서 정성껏 진행했지만 결국은 우리끼리 재밌자고 했던 시간들. 그런 것들을 내가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새삼 알게 됐달까. 맑은 가을날 해는 지고, 아기는 내 곁에서 오물오물 과일과 떡을 먹고, 딩가딩가 음악까지 나오니 참 좋더라. 아무도 기죽지 않는 소박한 행사. 이런 걸 그리워하고 있었구나, 싶기도 하고. 루시드폴의 음악을 요즘 자주 듣는다. 그래봤자 씨디도 아니고 파일도 아니고 유튜..
아기를 낳고 나서, 주말에 뭘할까, 고민하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그 전에도 그랬지만... 육아를 시작하면서는 주말에 그냥 쉬는 것만으로는 충족이 안된달까.아마도 주중에 뭔가를 못하고 억누르고 참고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그런 걸 주말에 풀어야지, 하는 마음. 이번 주말은 좀 기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뭘할까, 고민하면서 욕망이 막 피어오른다.은규 데리고 바닷가에도 가고 싶고, 미술관 같은 데 가서 그림도 보고 싶고,텃밭 가서 풀도 매고 싶고... 시간은 한정돼 있는데 마음은 어디까지 혼자 막 간다.ㅋ근데 시누가 초2 아들 데리고 2박 3일 우리집에 있을 거라는 정보 입수.게다가 초2 꼬맹이를 금요일 종일 위탁할 거라는 요청까지. 마음 속에서 으악- 소리가 나왔지만 Y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다.그리고..
어제 퇴근을 하고 오니, 이번 주 내내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 보이는 나를 위해 양은 나름 선심을 베풀었다.가고싶은 곳에 가고,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어주겠다는 것.일주일 내내 낮시간에 아기를 돌보는 그가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시간 아닐까.그런데 막상 나는 별로 가고싶은 곳도 하고싶은 일도 없었던 것 같다. 금요일 저녁, 집 근처 고깃집에서 밥을 먹고 양과 은규와 주변 아파트 단지를 산책했다.아직 해가 지지 않은 저녁, 은규는 신이 나서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고 나는 가만가만 걸으니 좋더라.간밤에 은규가 엄청 자주 깨서 아침에 머리가 지끈거렸지만,오늘 오전엔 장롱 속 이불들을 정리하고 양이 사다둔 엄청난 양의 마늘을 깠다.은규랑 같이 마늘 까고 씻고 하다보니 오후 3시가..
이번 학기 내내 격주 수요일은 오후에 반차를 썼다. 12시에 귀가해서 강의를 가는 양 대신 오후에 은규를 돌본다. 그래서 격주 수요일 오전은 늘 분주하다. 처리해야할 일 대비 시간이 부족한 요일. 근데 5월에 접어들어 나는 내내 수요일 오전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공고 연구 필드를 나가기 시작하면서, 늘 시간 대비 처리해야할 일이 많아서 심장이 쫄깃한 채로 낮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일과 시간이 끝나고 퇴근하면 은규 저녁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하는 일로 꽉 찬다. 피곤해서 쓰러져 자거나, 뭔가 스트레스를 풀고 싶다는 욕구로 인터넷을 막- 하다가 자거나. 그러고 나면 아침은 늘 피곤하다. 일이 쌓여있는 일터로 나가는 내 몸과 마음은 무겁다. 매일 쉬지 않고 일을 하면서도 일이 늘 밀려있는 기간이 늘어나면..
토욜 낮에 밭에 나가 일하고 들어오니 온몸이 노골노골. 일사병 걸린 듯 힘이 없더니 저녁 외출까지 마치고 들어와서는 몸살감기 시작. 열이 나서 나는 추운데 은규는 더운지 밤에 자주 깼다. 일욜 아침 눈을 뜨니 몸이 천근만근. 그래도 종일 은규랑 먹고 놀고 노래하고 목욕하고 잘 지냈다. 저녁 나절엔 밭에서 수확해온 열무를 은규랑 같이 씻고 다듬어 김치를 담았다. 과연 맛있을까 두렵긴 하지만 농사 지어 수확한 열무에 직접 담은 김치라니, 왠지 스스로 자랑스러워.ㅋ 게다가 은규랑 둘이 김치통 앞에 무릎 꿇고 앉아 기도도 했다, 맛있게 익어주세요, 하고.ㅋㅋㅋ 아침 나절엔 내게 엄마가 없다는 게 새삼 서러웠다. 근데 은규에게 내가 엄마라는 게 생각나서 가슴이 뿌듯해졌다. 그리고 친정엄마가 없으면 도처에 친정을 ..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계절들을 어떻게 살아냈는지 가물가물하다. 그 때 끄적여놓은 일기들을 보면 나름 뭔가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던 거 같은데, 그 애씀도 실은 괴로움의 연장선상에 있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논문 프로포잘도 하고, 정토회에서 봉사도 하고, EWB 일도 제법 했다. 다음 해 봄에 요세미티에 다녀왔고, 그 여름엔 부르키나파소를 갔다. 파리를 경유했던 열흘 간의 일정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여름 낮이었다. 바닥난 체력과 정신력으로 현지 타당성 조사,라는 임무를 맡고 낯선 땅에 다녀왔으니 그 열흘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힘겨움도 이제야 알겠다.ㅎ 속이 완전히 다 뒤집어져서 먹는 것마다 다 내어놓았던 며칠을 지나 집에 도착했는데, 부엌에서 양은 김칫국을 데워줬다. (그 때 우린 김칫국을 자주 해먹었..
아빠랑 소아과에 갔다가 잠시 까페에 들렀단다. 집 앞 까페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모양이 대견하다. 언제 이렇게 자랐을까. 지도도 없이 스스로 갈 길을 아는 여행자처럼, 아기는 누구보다도 담담하고 씩씩하게 매일 매순간 자라고 있구나, 새삼 알게된다. 요즘은 연구 과제를 제출하고 승인을 기다리며, 새 연구과제의 시작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그 와중에도 다이내믹한 이 일터에는 매일 새로운 일들이 터지고, 어젠 휴가로 집에 있는 동안에도 두 통의 전화를 동료로부터 받았다. 이 곳도 바깥 사회의 권력관계 자장 안에 있다. 누군가를 이렇게 저렇게 대우하면서, 어려서, 학위가 없어서, 여자라서 차별하는 거라고는 스스로는 생각치 못하겠지. 그래서 토론과 공론의 장이 필요한데, 이제는 그마저도 쉽지 않은 분위기이다...
일터에서의 연구과제 때문에 만난 한 선생님께서 업무 메일에 노래를 하나 붙여 보내셨다. "꿈찾기"라는 노랜데, 전주를 듣는 순간 마음이 아득해진다. 이 노래는 대학 때 잠시 활동했던 노래패에서 단짝 친구 ㅇㅊ가 어느 공연에서 불렀던 것. "꿈을 찾아떠나는 설레임 속에~" 이 가사에 이르면 나도 모르게 발장단을 맞추게 되는, 그 시절 ㅇㅊ의 목소리가 생각나는 노래. 아 좋다. 대학 때 천둥벌거숭이처럼 (불법으로 점거해서) 거리를 누비고, 노래패니 학회니 학생회 선거니 하며 그 추운 캠퍼스를 종횡무진하고, 누구든 맞붙어 토론하고 술도 많이 마시고 장난도 엄청 치고 웃기도 많이 했던 덕에 지금의 내가 있구나, 싶은 저녁이다. 추억에 잠시 빠지게 해준 노래에 감사. 그 노래 보내주신 선생님께 감사. 그리고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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