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마른 기저귀를 하나씩 갤 때, 아기를 재우려고 자장자장 낮게 흥얼대며 창밖을 불 때, 피곤한 몸으로 아기 옆에 누울 때, 어떤 순간들이 떠오른다. 의식의 차원에선, 어, 갑자기 이 기억이 왜 나는 거지? 하지만, 무의식에선 이 순간과 저 순간을 이어주는 끈들이 있는 거겠지. 요며칠은 영화 를 다시 보았던 그 겨울날들이 자꾸 떠오른다. 케이트 윈슬렛의 표정들, 마지막 몇 장면에서의 그 먹먹함, 누군가의 감상평 같은 것들. 몸무게가 바닥을 치던 날들, 많이 외롭고 또 충만했던 계절, 불안하고 막막했던 시간들. 지나고보니 참 따뜻했다, 싶기도 하고.
[서귀포 소정방 폭포의 말, 2012] 어젠, 아름다운 계절에 태어난 기념으로 사석원 그림 보러 갔다왔다. 난 이상하게 사석원의 그림에 등장하는 동물 중 말이 좋다. 빙그레,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그 동물들 중 말이 으뜸이라고 할까?ㅋ 엉뚱한 표정으로 용맹한 척 하는 말의 옆모습을 보면서 헤헤 한참 웃었다. 파랑 노랑 빨강 분홍의 저 유치찬란한 컬러도 좋고, 말처럼 용맹하게 흘러내리는 폭포도, 바람에 흩날리는 억새도 좋고. 이번 전시의 컨셉이 '폭포 소리를 화폭에 담는 것'이라던데, 이 그림에선 폭포 소리뿐만 아니라 제주의 바람도 느껴지더라. 언젠가 소정방 폭포를 마주치면 이 그림 속 바람이 기억날까? 폭포가 콸콸대는 경치 앞에 서서, 특정 동물을 떠올리고, 표정과 상황을 그려내는 작가의 상상력이 웃겨서..
남동생은 어릴 때 통통했고, 사춘기 이후엔 좀 말랐고, 서른이 넘으면서는 살이 무진 쪘다. 스무살 즈음, 내가 서울로 진학하면서 집을 떠나와 그 때부터 동생과 떨어져 살았으니 내게 익숙한 건 마른 몸의 내동생. 그래서 내 머릿 속 동생의 몸 이미지는 골격이 좀 큰, 그러나 마른 남자이다. 어느날, Y가 뚱뚱한 삼십대 남자를 가리키며, 내동생이랑 닮았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깜짝 놀랐다. 상상 속 이미지는 현실과 이렇게 다르구나. 가끔, 거울 속 내 몸을 보고 놀라곤 한다. 특히 샤워할 때 정면을 응시하면서, 아 맞다, 그렇지, 한다. 아주 느린 속도로, 지난 수개월동안 천천히 불어난 배와 허리와 엉덩이와 허벅지. 아직 내 머릿 속 내 몸의 이미지는 허리와 배 부분이 얇은, 키가 작은 어떤 여자의 모습인데, ..
어떤 시간은 참 더디가는데, 또 어떤 시간은 참 빠르다. 4월이 어느새 반이나 흘러가버렸나, 오늘 문득 망연자실. 어제 오후엔 동네를 좀 걸었다. 요가를 하지 않는 요일엔 산책을! 벚꽃이 핀 길을 걸어 약국에 가서 철분제 한 통 사고, 건너편 빵집에서 바게트 한 개를 산 후, 제법 떨어져있는 동네 화원까지 가서 흙을 한 봉지 샀다. 늦은 오후, 바람이 조금 차가워졌지만 마루 창을 열어두고 신문지를 넓게 깐 다음, 한 시간 남짓 분갈이를 했다. 좁은 화분에 뿌리가 엉킨 채 겨우 살아있었던 스타티필룸을 두 개의 화분에 옮겨심고, 얼마 전 ㅈㅇ가 선물한 작은 꽃화분을 좀더 넓은 화분에 옮겼다. 겨우내 잘 자라지 않던 군자란에 흙을 좀 더 덮어주고 나니, 8리터 짜리 흙 한 봉지가 바닥 났다. 다음 봄엔 이 식..
어젯밤 문득, 2010년 봄, 이십여일쯤, 벤쿠버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시장에 가서 연어와 아스파라거스, 새우를 사와서 오븐에 굽고, 싼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먹었던 소박한 저녁 시간. 저녁을 먹고 나면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하다가 한 두 편씩 보던 영화들. 늦은 아침을 먹고 천천히 시작하던 하루하루들. 때로 하릴 없이 보내던 오후 시간 그리고 종종 거닐었던 그 한가롭던 길들. 나름 바빴던 7개월의 토론토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돌아가기 전, 막간과도 같았던 벤쿠버에서의 시간은, 지금 서울에서 보내고 있는 이 시간들과는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구나. 기억해보니, 그 때의 나는 어디에서 살든 내가 원하는 속도로, 원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동안 논문과..
하이킥3 마지막 편을 봤다. 왠지 이 이야기가 김병욱 월드의 마지막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석과 하선은 다시 만나고, 지원은 학교를 나가고, 종석은 철이 들어버린다. 아마 계상이와 진희는 새로 시작된 삶을 잘 살아가겠지. 나머지 인물들도 서울 노량진 어느 평범한 집에서 변치 않는 그러나 늘 변하는 어떤 일상을 지내고 있을 듯. 그리고 이야기는 여기서 끝. 여운도 없이 끝나버린 이야기의 끝에 서서 마음이 조금, 허전하달까 황망하달까. 이야기의 힘을 주술처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출처: www.yelp.ca) 파란만장했던 토론토 시절(으힉 어느새 이년 전이고나). 그 때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사진 속 식당에서 먹었던 싸고 담백했던 중국음식들이다. (첫번째 사진은 식당 간판과 전경, 두번째 사진은 야채 볶음) 선련사(http://zenbuddhisttemple.org/)의 삼우스님 따라 한 번 간 이후, 저녁이나 점심 먹으러 몇 번 더 찾아갔었다. 휴일에도 부러 가서 먹은 적도, 문을 닫는 날이라 허탕친 적도 있었던 듯. 식당 이름은 Buddha's Vegetarian Foods. 주소는: 666 Dundas St W Toronto, ON M5T 1H9. 내가 제일 좋아했던 메뉴는 이푸 누들 어쩌구 였는데, 부드러운 면과 청경채, 버섯 등의 채소를 듬뿍..
_ 피곤해서 잠시 눈 붙이려고 누웠다가 이런 저런 생각들에 일어나 앉는다. 블로그를 열고 몇 자 써볼까, 간만에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 _ 점심 때 ㅅㄴ을 만나 오니기리와 나가사키 짬뽕을 나눠먹었다. 초가을 쯤 만나고 첨인가, 조금 더 고즈넉해진 느낌의 ㅅㄴ. 한 시간 남짓, 별 이야기 나눈 것 없는데, 헤어지고 생각해보니, 조금 위로를 받았다. 몰랐는데, 나도 외로웠던 걸까. 공감하고 자극을 주고받는 대화. 진짜 오랫만이라 뇌와 심장이 조금 새롭게 작동하고 있는 것 같은. _ 보통, 이렇게 묻는다: 나(우리)는 그녀(들)를 대변/번역할 수 있는가? 혹은 그녀(들)은 목소리를 가질 수 있는가? 오늘 문득 이 질문이 얼마나 (여성학)연구자중심적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노동자, 비정규직, 비혼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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