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ㅇㅊ가 문득 이렇게 물었다. "너 이모 많지? 어떤 이모가 제일 좋아?" 왜 이런 질문을 하나 싶어 멍했는데... 알고보니 막 조카들이 생기기 시작한 ㅇㅊ가 어떻게 하면 좋은 이모가 될까 고민하던 중이었던 것이다. 난 이제서야 ㅇㅊ의 그 마음을 좀 알겠다. 좋은 고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해볼 만큼, 이쁜 우리 조카, 다은이. 이제 팔개월이 됐다. 기어다니고 사람이랑 눈을 맞추고 웃고 먹고 자고 운다. 다은이 표정 하나에 방귀 소리 하나 똥 오줌 싸는 거에 온 식구가 눈귀를 모으고 같이 꺄르르 웃는다, 어디서 이런 존재가 왔을까 싶다. 혹 내가 꼰대 같은 고모가 되면 어쩌나 슬그머니 겁이 나긴 하지만, 이 녀석이 나중에 깻잎머리에 껌 쫌 씹어도 '나는 니가 이쁘다' 하고 말해줄 자신이 있..
1. 벤쿠버의 늦봄 같았던 날씨 속에 있다가 갑자기 한여름으로 날아왔던 지난 칠월. 한참을 익숙해지지 않는 더위에 헥헥 대며 살았는데, 추석 연휴 지나고 갑자기 찾아온 차가운 가을 날씨에 또 적응 못하고 버벅대고 있다. 어제 오늘은 기온이 뚝 떨어져서, 십년 째 앓고 있는 비염이 더 심해졌고 피부도 건조해져서 꺼끌꺼끌, 컨디션이 바닥이라 종일 피곤해서 빌빌. 어젠 문득 아 왜 이렇게 피곤한 걸까, 무슨 중병에라도 걸린 거 아냐, 하고 의심하다가 피식 웃는다. 몸이 힘들어 더 많이 주워먹어서인가, 체중이 조금 늘어난 것 같고, 등산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아침 일찍 일어나 백팔배도 하고... '체감 체력'이 바닥이라 그렇지 따지고 보면 제법 원기왕성한 시절인 것 같기도.(!) 2. 연구실에 매일 나와 비슷한..
낙성대에서 연주대 방향으로 1시간 15분을 꾸준히 걷고난 다음 쉬었다. 남들처럼 탁 트인 풍경을 마주하지 않고 골짜기 쪽으로 난 바위에 앉아 볕 받으면서 15분간 휴식. 가방 안에서 포도 몇 알 꺼내 먹고 물도 한 모금, 문자 메시지 한 통. 그리곤 왔던 길을 다시 걸어 1시간 15분 하산. 출발점에 다다르니 다리가 후들 거린다, 간만의 등산이었으니깐. 처음 20분은 숨이 가빠서 힘들었고 그 괴로움이 잦아들자 그 다음 20분은 무척 지루해서 혼났다. 그렇지만 그 나머지 시간은 마냥 좋아서 헤헤헤헤. 걷다가 바람이 잘 통하는 포인트에 이르면 모자를 벗고 팔을 벌려 바람샤워를 하고, 잎사귀 사이로 가을볕이 스며드는 숲길에서는 가만 서서 풀벌레 소리와 나무 사이 부는 바람을 느껴보았다. 모든 순간이 완전 좋았..
주말에 학교 오면 공부 진도가 좀 느리다. 직장인도 아니면서 주 5일 근무에 라이프-싸이클을 맞추고 있는 까닭일 거다. 천천히 선행연구를 보고 졸리면 책상에 엎드려 토막잠도 자고 인터넷 서핑도 여기저기 분주하게... 그러다보니 어느새 초저녁이네. 느즈막히 집을 나서서 동네 작은 까페에 들러 토스트와 커피로 점심을 먹고, 마을버스 타고 학교 올라오는 길, 학교 안 결혼식장에 오신 아주머니 두 분과 아저씨 한 분께 식장 위치 안내 서비스를 제공해드렸다.ㅋ 연구실 도착해 문을 여니 퀘퀘한 냄새가 가득하네. 창문을 열고 환기시키면서 청소를 시작, 쓸고 닦고 공용물품 정리하면서, 아 이 사람들 진짜 방 더럽게들 쓰네... 하는 생각이 자꾸 생겨나더라. 착한 마음, 성실한 마음이 발동해서 청소 시작해놓구선 마칠 때..
어제밤 귀가길, 놀이터 근처에서 놀고있던 강아지 한마리를 주웠어요. 이쁘게 생긴 조그마한 강아지라 어디 근처에 주인이 있겠지 하며 둘러봤는데 없더라구요. 그걸 그냥 거기 두고 올 수 없어서 파출소에 신고도 했지만, 보관할 곳이 없다며 우리집에서 며칠 돌봐달라고 하더라구요. 그 조그만 걸 품에 안고 집에 돌아와 씻기고 물먹이고 안방에다 수건 하나 깔고 똥오줌 싸라고 신문지도 하나 깔아두고 재웠어요. 아침에 눈뜨자 마자 강아지 잘 있나 살펴보고, 계란탕 해서 밥 말아 아침밥도 줬답니다. 사료를 먹던 녀석인지 아닌지 잘은 모르지만, 암튼 밥도 잘 먹더라구요. 일단 안방에 두고 왔어요. 혼자 종일 얼마나 심심할까 싶고, 주인은 과연 나타날까 싶고, 주인이 안나타나면 어떻게 해야할까 싶고... 여러가지로 마음이 ..
1. 연구실을 옮겼다. 이제 논문 집필만 하면되는, 학위 과정의 끄트머리에 있는 사람들이 공부하는 방으로. 이 방 이름이 원지재(遠志齋)다, 큰 뜻을 가진 사람들이 머물러 공부하는 곳. 이름 덕인지 분위기가 학구적인데다 남향이라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밝아서 좋다. 2. 번개불에 콩 볶아먹듯 열아홉페이지 짜리 글 하나를 뚝딱! 썼다, 지난 나흘간. 생짜로 한 편을 다 쓴 건 아니고, 여기저기 써두었던 단상들과 독서 노트를 정리해서. 마음 바쁘게 원고 쓰면서 느낀 건, 역시 글이라는 건 평소 사유의 깊이와 넓이만큼만 담아내는구나. 매일매일의 읽기와 생각하기와 쓰기와 기록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덕분에 뼈저리게 깨달음. 3. 인터넷으로 주문한 슈즈가 안와서 맨발로 두시간 스트레이트 첫 발레 수업에 참여. 다음..
촌스럽고 혼란스런(?) '기념촬영' 08132010 @ 한강 시민공원 반포지구 십삼일의 금요일밤, 간만에 대학 동창들, 그것도 같은 과-같은 학회 친구들이 모였다. 처음엔 장난 반 재미 반으로 시작해 여차저차 모임이 만들어졌는데, 결과적으론 10명이나 모여서 시끌벅적 한여름밤 잘 놀았다. 반포 근처 한강공원 (물을 머금은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수박 잘라먹고 맥주 마시고 게임도 하고 옛 연애사도 들춰보고.ㅋ 많이 깔깔대서 그런지 목감기가 더 심해진 것 같지만, 그래도, 좋더라. 모여놓고 보니, '우리'가 얼마나 동질적인 집단인지! 느꼈음. 일상의 세계가 딱 그만큼이었던 그 시절엔 정말 이해하지 못할 차이들도 지금보니 엇비슷한 인간들끼리의 갈등이었구나, 알게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 눈에 걸리는 ..
나는 지각대장이었다. 중삼 때 담임이었던 할머니 가사 선생님은 지각하면 일교시 시작 전까지 교실 뒷문 옆에다 벌서기를 시켰는데 거의 매번 그 자리를 지켰던 기억이 있다.ㅋ 대학교 때도, 단체 일 할 때도, 대학원 다닐 때도 지각을 자주 했다. 친구들이랑 만날 땐 말할 것도 없고,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 만날 때도 잘 늦었고, 가끔이긴 히지만 강의 시각에 늦어서 땀 뻘뻘 흘렸던 적도 몇 번 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 아차 늦었구나 싶을 때의 마음은 참 괴롭다. 내가 늦어 상대방이 화가 나면 어쩌나 두렵기도 하고 약속이 깨지거나 모임 자체가 소용없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토론토에서 지냈던 몇 개월 간은 거의 지각을 안했다. 가장 큰 이유는 낯선 동네에서 길눈도 어두운 내가 자칫 잘못하면 엄청..
다리가 엄청 많은 지네가 다리를 엇갈리지 않고 잘 걸어다닐 수 있는 건, '어. 이번이 몇 번째 다리를 움직일 차례더라?' 하고 자문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수영장에서, '어, 팔 한 번에 다리 몇 번 물장구 치고 있는거지?'하고 질문하는 순간 몸이 기우뚱, 숨쉬기가 자연스러워지지 않는 거랑 비슷한 거겠지. 아침에 눈을 뜰 때, '어, 오늘이 몇일이야? 내 논문 진도는 지금 잘 나가고 있는 건가?' 하고 묻는 날은 거지반 초조한 마음이 하루를 지배하곤 한다. 순간에 깨어있다는 건, 멀리 내다보면서도 지금 이 순간의 리듬에 마음과 몸을 맡긴다는 의미일 거다. 돌아보면 오랜 기간동안 긴장 빡, 들어간 채로 살아왔던 거 같다. 긴장해서 후다닥 일을 처리하고 짧은 순간 방만하게 살다가 다시 긴장 빡,의 순환. 불..
주말, 진안 마이산에 피서 다녀왔다. 전날 술+돼지고기 과음,과식하고 골골거리는 상태로 갔다가 가던 날 저녁부터 간지럽고 부어오르던 얼굴과 목이 이틀이 지나도 안났는 거다. 날은 덥고 얼굴이랑 목은 간지럽고... 집에 돌아오자 마자 가장 가까운 피부과를 찾아갔다. 요즘은 단순, 순진한 피부과는 찾아보기 힘든 건지... 피부과 간판에 '**얼굴 성형외과 피부과' 이렇게 쓰여져있고 인테리어도 강남의 무슨 까페 같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간호사들이 웃으면서 내 얼굴 보고 말하더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잡티 제거 하러 오셨나봐요? ^^"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과 목, 불편스러운 내 표정은 보이지 않고, 젊은 여자 한 명이 들어가니까 '잡티'만 눈에 확 띠었나보다. 아마도 그 병원엔 나 같은 '환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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