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를 생각하면, 시장에서 신선한 것으로 사와서 생으로 먹었던 미더덕과 미역, 밭에서 따다가 쓱쓱 닦아 뚝 분질러 먹었던 가지, 할매네 마루에 있던, 크고 작은, 참 잘자라던 화초들, 늘 입고 계시던 알록달록 꽃무늬 몸뻬, 뽀글뽀글하고 얇았던 할매 머리카락, 손수 만들어주신 상 보자기, 드르륵 드르륵 발로 굴려서 돌리던 재봉틀,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서른 셋에 과부돼서 딸 다섯을 혼자 기른 여자. 그 할매가 나에게 남긴 기억들은 먹는 것, 기르는 것, 입던 것, 만들어 주셧던 것들. 이런 오밀조밀 마음 꽉차게 그득한 것들 뿐이다.
2009 summer @ sky over Paris taken from Moncmarte 덥다, 내가 기억하는 여름은 늘 더웠던 것 같은데, 언제나 새삼스럽다. 어제 저녁엔 이열치열이다, 하면서 저녁에 한 시간쯤, 동네 공원과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탔다. 골목길마다 더운 집안을 견디다 못해 탈출한 사람들로 바글거리는데, 골목길 조차도 바람 한 점 없더라. 방보단 마루가 시원할 것 같아서 잠자리를 옮겼는데도 밤중에 두어번 깨서 타이머 다 돌아간 선풍기를 다시 켜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라디오에선 '지금 온도가 벌써 27돕니다" 한다. 하루의 더위를 다 겪은 듯, 아침부터 지친다. 어제 한낮의 뙤약볕을 내리받으며 연구실에서 학교 식당까지 왕복했다가 일사병 걸릴 뻔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오늘은 아침 먹고 남은 ..
일주일 하고 이틀이 흘렀네요, 쏜살같이, 시간이 지나갑니다. 까먹고 있었던 것들이 막막 기억나고 깨달아지는 순간들입니다. 거기서 내가 기억하곤 했던 서울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하면서요. 기억은 언제나 선택적인 것이라 거기선 애써 부정적인 것들은 기억해내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덕분에 소음, 습한 날씨, 붐비는 지하철과 버스와 거리, 오염된 공기 같은 것들이 새삼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인간 관계들과 예의 차리며 연락해야하는 몇 어른들, 마주쳐도 반갑지 않은 몇 사람들의 리스트가 좌라락 새로 새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가장 낯설게 느껴지는 건, 사실 나 자신입니다. 내가 이런 걸 싫어했지, 내가 이런 걸 못견뎌하곤 했지, 내가 이런 상황에선 도망치려고 했지, 내가 이런 것에 ..
가끔 학교 연구실에 평소보다 이르게 도착할 때가 있었다. 문은 잠겨있고 복도는 조용하다.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가 내 자리로 걸어가는 동안, 간밤에 쌓인 책냄새가 훅, 내 폐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가방을 내 책상에 두고, 창문을 차례대로 열고, 문까지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며 자리에 앉으면, 커피 생각이 간절하다. 조용히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만 같았던, 아침 커피. 오늘도 아침 커피를 마신다, 학교 연구실에서 멀리 떨어진 이 곳에서. 커피콩을 갈아서 메이커에 넣고 내린 신선하고 따뜻한 커피. 그 따끈한 온도가 나를 달랜다, 서두르지 말고 하루를 시작해보라고. 바깥 날씨는 개었다 흐렸다를 반복하고 있고, 나는 간만에 써야할 짧은 글이 하나 생겨서 버벅대고 있다. 하루 해가 길어서 저녁이..
정오즈음, 지하철 역을 나오는데 비가 후두둑 내린다. 어제, 그리고 오늘 아침녘 더웠던 공기에 찬 빗물이 그어진다. 이내 흙과 땅에 빗물이 스미는 냄새가 난다, 더운 날,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의 냄새. 그렇구나, 오월이다. 몇 년동안이었을까, 나한테 오월 일일은 늘 '노동자의 날'이다. 거리에 나가 데모꾼들 틈에 앉아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는 날. 서울에 있었다면, 노동절 집회 장소로 서울 광장을 불허했다는 서울시와 정부에 화를 버럭버럭 내면서 어딘가, 집회가 열리는 장소로 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시간. 그런데, 우연히 알게되었다, 오늘이 여름의 시작이라는 것. 고대 켈트족에겐 오늘이 이런 의미였단다: 여름이 시작된다는 날, 달에게 빌고, 불 위를 건너 뛰어가 다산과 생명의 풍요로움과 공동체..
예전에 무슨 특강에선가, 철학 전공하시는 선생님 한 분이 그러셨다 : 무슨 일이 있어도 공부를 '거르지 말라'고. 공부도 습관 같은 거라서 일주일을 안 하면 리듬을 회복하는 데에 딱 일주일이 걸린다며. 이 일주일 학설을 완전 믿는 건 아니지만, 수긍할 만하다. 좀 놀다가 간만에 공부하러 학교 왔더니 몇 가지 증후들이 나타난다. 1. 가방이 너무 무겁다: 늘 들고다니던 건데도 간만에 들면 새삼 무겁다. 놀러다녔던 주말 내내 손가방만 달랑 들고 다녔으니깐. 2. 집중이 안된다: 십분 공부하다가 인터넷 삼매경 삼십분 후딱... 3. 졸린다: 놀 때는 낮잠 생각도 안나는데 도서관에 앉아있으면 한 두 차례 잠의 파도가 몰아친다. 4. 눈이 아프다, 어깨가 결린다...등등 ... 게다가 한 시간 전쯤 옆 자리에 온..
지금보다, 조금만 더 멋지게 살고 싶어질 때가 있다. 남들이 보기에 멋진 삶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좋은 순간들을 더 많이 주고 싶다. 매일의 아침기도 규칙적인 운동 차분하게 읽는 것 열정적으로 쓰는 것 삶과 사람 그리고 나를 만나게 해주는 여행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따뜻한 시간 친구들과 주고받는 말과 글, 작은 선물 내 몸이 편안해지도록 멋스럽게 입는 것 좋은 음악과 미술 작품들을 만나는 것 쓸모있고 예쁜 것들을 직접 만들어 보는 것 낯선 것에 도전하고 배우고 익숙해지는 과정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친해지면서 나누는 시공간 뭔가 함께 하는 일을 모의하고 도모하는 순간 나 자신이 조금 더 자랐다는 걸 느끼는 순간 오래된 내 물건들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 소중한 기억과 추억을 간직하는 것 ... 삶에서 이런 ..
매일 일기를 쓰다보니 블로그에 일기 외에 다른 글을 잘 안올리게 된다. 일기는 보통 저녁 때 쓰거나 제목만 써놓고 미뤄뒀다가 나중에 쓰곤 하는데 그래서인지 그 때 느낀 그 감정과 생각보다는 좀 정리된 편인 것 같다. 여기 와서 저녁을 조금 많이 먹게 된다, 특히 외식을 하면. 음식 양이 좀 많이 나오는 편인데 보통 저녁 땐 시장한 경우가 많고 비싸니깐 아깝다하는 생각에 거의 다 먹기도 한다. 어제도 조금 많이 먹었나, 밤에 조금 뒤척였다, 그러면서 꿈도 여러편 꾸고. 가끔 그런 밤이 있다, 얼른 아침이 됐으면 좋겠는데, 아직이네, 하는. (반대로 그런 낮도 있지. 얼른 밤이 돼서 쉬었으면 좋겠다, 싶은) 간밤도 그런 밤이었는데, 뒤척이다 눈을 뜨니 아직 일곱시 전인데 환해온다. 해가 길어졌구나, 아직 추..
내가 베고 자던 베개와 내 책들이 꽂힌 책장이 있다는 거. 그리고, 집에서 맥주 마시다가도, 아, 맛있는 안주가 먹고싶다, 하면 십오분 내에 도착할 수 있는 다양한 메뉴의 술집들이 밤에도 새벽에도 있다는 거! 저녁 9시부터 지금까지... 캐나다 맥주 한 캔+호가든 작은 거 한 병 반 마신... 나 지금 먹고 싶은 거... 대구 지리, 복 지리... 제법 큰 생선을 미나리 넣고 끓인 맑은 국물. 그거 한 숟가락만 먹을 수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그저 줄 수 있을 것 같아...ㅋ 이참에 먹고 싶는 거 몇 가지만 써보자면, 1. 순대국: 그 진하고 걸죽한 국물에 풋고추 쌈장에 찍어 아작. 2. 복지리: 술을 아무리 심하게 먹어도 복지리 한 그릇만 먹으면 재생 가능. 3. 마켓오 순수감자 프로마즈: 한국과자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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