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남자 주인공의 시점에서, 그의 목소리로 서술된다. 한나의 감정과 태도와 눈빛은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잘 드러나지 않는데, ㅇㅊ의 말처럼, 영화 속 윈슬렛은 무서울 정도로 한나를 잘 표현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소설보다 영화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영화에 대해 아쉬운 점은 독일어 영화였으면 하는 것. 미하엘(마이클)이 독일어로 오딧세이를 읽는 장면이 나왔다면, 더 생생했을텐데. 그리고 저자인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44년에 태어났고, 베를린 대학 법학 교수란다, 어쩌면 자전적일 수도 있겠다, 싶다.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읽은 건, 1999년 판, 역자는 같고, 출판사는 다르다. 오늘, 이상하게 피곤해서 일찍 귀가해서, 한달 전쯤 빌려뒀던 이 책을 폈는데, 단숨에 읽었다. 이상하게 몸에 열이 나서..
김혜자씨에게 전율을 느낀 영화, 그런 광기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또 있을까, 싶어서. 그 여자의 얼굴에, 아들을 유괴당하고 망연자실 혼자 집을 지키는 의 전도연이 겹쳐보이기도 하고, 세상의 엄마들이 다 겹쳐졌다가 떠나가기도 하더라. 압권은 맨 처음과 맨 마지막 씬, 엄마의 춤.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건, 도준의 다섯살 적 기억에 대한 엄마의 절규, 그리고 "엄마 없니"하고 오열하는 장면. 읽을 거리도 말할 거리도 많은 영화, 봉준호는 이제서야 겨우, 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듯.
장장 11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을 견디다 못해 선택, 김기덕 각본이라 보기 싫은 마음+호기심이 뒤죽박죽되어서 봤다. 예상 외로 텍스트는 풍부하고 배우들은 제법 괜찮았다, '소간지'는 처연한 분위기를 풍겼고 강지환은 여전히 남자 아이로 남아있는 어른을 잘 보여주었다. 김기덕의 관심은 언제나 남성 자아의 (모성적 혹은 창녀적) 여성 대상을 통한 성숙 과정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 영화에선 두 남자가 서로에게 기대어 성숙해간다. 그래서 영화에 등장하는 여자들의 존재감은 무대장치보다 가볍다. 말할 것도 없이, 두 남자의 성숙 과정은 우스꽝스럽게도 자기중심적이고, 참혹하게도 폭력적, 현실적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이 영화의 어조가 진지함인지 빈정거림인지 헷갈린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두 남자의 우정은 유아적이다. 그러나..
1. 오래된 친구 ㅇㅊ를 만나 를 봤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물론 봤다고, 그러나 여운은 이제 가셨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개인적인 어떤 부분과 공명하는 영화는 몇 년이 가도 여운이 남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는 영화 자체의 작품성과 별개로 그녀에게는 일주일도 채 못가 여운이 사라진다고. 그녀의 이 말은 내게 (그녀가 전혀 의도치 않았던) 이런 질문으로 들렸다. “이 영화의 어떤 면이 너의 삶과 공명하였기에 그렇게 오래 여운을 남기고 있느냐?”라고. 2. 그 화창하던 봄 낮, 혼자 들어간 영화관에서, 그렇게 펑펑 울고 나오면서, 나는 이 영화를 본 다른 ‘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안달이 났다. 일주일인가를 지나서야, ㄹ와 ㅎㅃ과 만났을 때, 나는 참 간만에 흥분하여 영화 이야기를 나누었다...
러닝 타임 내내 히히덕 히죽히죽 낄낄 웃었다, 너무 유쾌했어, 여기 나오는 모든 여자들이 너무 이뻤다! 그래도, 막상 미숙이나 종희 같은 애를 직접 만나게 된다면 난 분명 뒷다마 까면서 따돌렸을 거 같애, 걔네들 모습 속에 내가 들어있어서 그걸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진짜 강하게 올라왔을 것 같거든. 당연히 유리같은 애는 재수없어 했을 것 같고, 오로지 서선생 사모님 같은 분을, 진정 언니라 여기며 추앙하지 않았을까?ㅋ 감독도 스스로 하이라이트라고 불렀던 어학실 장면에서 서선생을 그냥, 마음에서 툭 놓아버릴 때의 양미숙 표정이 참 아름다웠다.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입과 눈은 살짝 미소가 보이는 표정, 마음에서 뭔가 새어나가서 가벼워진. ㄹ의 코멘트 대로, 나도 종희+미숙 커플의 우정(인지 사랑인지^^)이..
박완서 작품 나목 1970 세모 1971 어떤 나들이 1971 다이아몬드 1972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1972 부처님 근처 1973 주말농장 1973 - 중산층 여성들의 자모회에서 시골에 야유회. 불안과 불만. 지렁이 울음소리 1973 닮은 방들 1974 - 내 집 마련을 꿈꾸었으나 정작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하자 획일성에 신물이 남. 맏사위 1974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1974 어느 시시한 사내 이야기 1974 연인들 1974 이별의 김포공항 1974 재수굿 1974 겨울 나들이 1975 도둑맞은 가난 1975 도시의 흉년 1975 서글픈 순방 1975 저렇게 많이 1975 카메라와 워커 1975 배반의 여름 1976 어떤 야만 1976 조그만 체험기 1976 포말의 집 1976 휘청거리는 오..
어제밤 SBS 스페셜 제목이다. 끝에서 10분 정도밖에 못봤는데, 한국판 랄까. 문정희가 인터뷰어로 나오는 것 좋더라. 서비스 컷으로 나왔던, 여배우들끼리 부둥켜 안으며, "너무 좋았어, 진작 이렇게 만나 얘기할껄..." 하는 목소리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나의 고통이 나만의 것이라 느껴질 때, 가장 고통스럽다. 그녀의 고통이 엿같은 세상 때문이라 여길 때, 연민과 분노를 느낀다. 그 고통과 연민, 분노가 이야기를 통해 나누어지면, 그래서 각자의 경험이 개인적인 차원의 것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힘이 생긴다고 본다. 그래야지 죽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살면서, 내 옆 다른 여자들의 손을 잡을 수 있으리라 본다. 진작 만나서 가슴 속 이야기들, 생활과 경험들 나눌껄, 하는 아쉬움이 나도 늘 마음 ..
슬픔의 시간이 허용되는 공간 상실을 애도하기, 새로운 신뢰를 형성하기 [여성주의 저널 일다] 최현정 저는 어느 종합병원에서 일을 합니다. 건물의 가 측으로 계단이 나있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여러 병실로 연결되는 입구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계단은 꽤 비좁고 어두컴컴합니다. 마음에 가장 남는 것은 그 차갑고 어둡고 좁은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누군가를 잃은 듯한 슬픔을 왈칵 토해내지도 못한 채 소리 죽여 흐느끼는 사람들입니다. 때로 그 흐느낌은 텅 빈 계단에 울려 퍼지기도 합니다. 돌아선 채 구부러진 등이 괴로움에 들썩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차가운 계단 위에 방석이라도 깔아주고 힘없는 어깨 위로 담요라도 덮어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 등이 너무도 외롭고 슬퍼 보입니다. 그 계단은 어느 정도까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남원, 대구가는 버스, 대구, 서울오는 기차, 서울에서 조금씩 읽었다. 이 소설을 떠올리면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나서야 내 안의 속물 근성을 인정하게 됐다는 고현정의 어느 인터뷰가 생각난다. 박완서 소설의 대부분은 그 여자들 안에 뿌리 박힌 속물 근성, 소시민주의, 그것들에 대한 부끄러움,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인정과 그래서 지속되는 삶... 과 같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이 소설은 더더욱.
어제 오후엔 를 읽었다. 도서관에서 '박완서'를 검색어로 찾은 책이다. 야금야금 그의 소설집을 하나씩 읽는 습관, 한 오년쯤 되었나. 박완서 소설은 나에게 어떤 치료제이다. 깊은 우울 안으로 나를 데려갔다가 정신을 퍼뜩 차리게 한다. 그건 소설들에 등장하는 여자들이 하나같이 '이상하고 불안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들이 세상 욕망의 네트워크 밖에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이 이상하고 불안한 것은 너무나도 세속적인 욕망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세속적인 욕망은 언제나 성취되지 못한다. 박완서는 그 당연한 사실을 건조하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청산유수의 아줌마일 줄 알았다. 는 1971년 9월 [월간문학]에 발표된 단편이다. 초가을, 더이상 가족들에게 돌봄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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